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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이차 Nov 29. 2020

취업하면 끝이라고 누가 그랬나

대기업 직장인의 고민, 정체되어있다는 위기감

매번 또 속니?

  인생의 전환점을 앞두고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이것만 하면 이제 고생 끝이다’. 수능을 앞둔 고3들에게 하는 담임선생님의 입버릇처럼,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지금 조금만 고생해서 눈 앞의 관문을 통과하면 이제 걱정할 것 없다는 마법의 문장. 과연 그럴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수능을 앞두고 매일 8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있을 때, 선생님의 저 말을 듣고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으로 연결되고, 좋은 직장이 안정적 삶으로 당연스레 연결될 줄 알았다. 어두운 터널 같던 수험 생활을 지나 대학생이 되고 보니 웬걸, ‘취업’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갱신되었다. 게임에서 최종 보스몹을 깨고 나니 히든 던전이 열린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또래들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고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학점 경쟁, 스펙 경쟁으로 치열하게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대학 입시는 수능 점수라는 계량 지표의 싸움이었다면, 취업은 계량과 비계량 지표가 혼합된- 누가 어떤 기준으로 걸릴지 불명확한 경쟁이었다. 대학 입시 때 몇십대 일의 경쟁에 두려워하던 나는, 대기업 취업을 위한 몇백대 일의 경쟁 앞에서 또다시 작아졌다.


  그렇게 속아놓고 또 같은 속임수에 당해버렸다. 취업을 하면 모든 걱정 고민이 없으리라는 건 무지에서 온 순진함이었다. 유퀴즈에 나온 bts 여고생의 얘기를 웃고 흘릴 수만 없었다. 학점 4.5만 점에 4.5점을 받고 있다는 그는, 대학 생활의 즐거움을 포기하더라도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고 얘기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에너지로 가득 차 밝게 웃으며 얘기하는 얼굴을 보며, 정작 그가 바라는 위치에 서있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 또한 취업이 되고 나면 큰 걱정 없이 자연스레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름을 들어봄직한 회사에 다니며 섭섭지 않는 보수를 받고 있는데도, 그가 말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의 삶'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회사의 부품이 되어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질식할 지경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이 고민은 더 깊어진다.



직장인의 공통된 고민

  기계적으로 회사에 출근하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업무 상의 성취는 있지만, 회사 밖에서도 이 성과가 인정될지 장담할 수 없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나는 그대로 멈춰 서 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위기감에 취업 후 접어두었던 스펙 쌓기를 다시 시작한다. 외국어 학원, 파이썬, 코딩 학원 등을 전전하며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린다. 자격증을 한 두 개 따 보지만, 회사에서의 업무는 변하지 않는다. 고인 물이 된다는 두려움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


  하루는 점심을 먹으며 직장 동료와 고민을 나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인생의 무게가 달라진다고 그는 말한다. 인생의 무게와 함께 대출금의 무게 또한 무거워진다.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변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회사를 떠났을 때 당장의 월급이 아쉬워 섣불리 결정하지 못한다. 자투리 시간을 내어 온라인 코딩 강의를 들어보지만, 당장 업무에 적용하지 못하는 지식은 이내 흩어지게 된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중이라는 그 말에 약간의 위안을 얻으면서도,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밖에서의 내가 있어. 시간이 갈수록 후자의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야" 

고민을 응축한 한 마디에 동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회사에 쏟고, 퇴근 후에는 지쳐 잠드는 일상. 나의 성장은 회사로 귀속되고, 나의 실패 또한 회사에서 결정된다. 당장은 조직이라는 울타리가 든든하지만, 이 울타리의 안락함에 길들여져 바깥세상에 내던져졌을 때 말라죽게 될 것이 두렵다. 회사 밖에서의 나에게도 양분을 줘야 한다.



이직을 한 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

  '10년 후 본인 회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직장인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주식을 산다고 생각해보자. 당장 십 년 후를 장담할 수 없는 회사에 모든 자산을 투자할 수 있는가.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면 다양한 투자처에 자산을 고르게 분배해야 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한 회사에 나의 모든 자원을 투입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자원을 분배할 준비를 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본다. 두 종류의 회사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이직을 해 본 사람, 그리고 이직을 해보지 못한 사람. 이직을 해 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준비한다. 그들은 후자에 비해 본인 스스로의 상품 경쟁력에 자신이 있다. 회사 밖에서도 여전히 '나'라는 상품이 팔릴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있다.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시장에서 본인을 판매해 본 성공 경험이다. 전자는 성공 경험에 기반해 그다음 기회를 찾아 나설 수 있지만, 후자는 성공 경험이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체되어 있다. 물론 이직이 무조건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한 직장에서 본인의 발전과 성공을 꾸준히 꾀하는 것도 안정적인 답지일 수 있다. 다만, 정체되어있는 걸 두려워하며 회사 밖에서의 성장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이직이 무력감을 타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본인이라는 상품을 판매한 성공 경험. 그 경험은 또다른 성장을 준비하는 자양분이다. 초단위로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밑거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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