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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초이 Apr 26. 2024

일을 안 해도 된다면 좋을까

파이어족 고찰

내 삶의 주도권을 찾기 위한 몸부림


우리는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낸다. 평균적으로 9 to 6로 근무한다고 해도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9시간이다. 여기에 플러스알파로 추가근무와 출퇴근 시간이 있다. 자는 시간을 빼면 내가 온전히 나로 살아 움직이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에다 할애하고 있다. 즉, 일은 나의 삶 그 자체이다.


그런데 만약 일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살아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지시아래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일로 만나는 사람은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억지로 일을 하며 채워지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일에만 내어주는 삶을 거부하고자 하였다. 이는 바로 이삼십년 전부터 서구권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파이어족'이란 운동이다. 파이어족은 경제적 독립,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앞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이들은 젊은 시절 빡세게 일하고 돈을 모은다. 이를 부동산, 배당주 등에 투자해 현금흐름을 창출한 뒤 빨리 은퇴하고자 한다.


내가 파이어족에 대해 처음 알았던 때는 2019년도 쯤으로 관련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조기은퇴의 이로움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 것이 얼마나 쿨한 아이디어인지 완전히 매료되었다. 미국 파이어족의 대멘토 Mr. Mustache의 블로그, 다양한 유튜브 등 관련 컨텐츠를 탐험하였다.  



한국의 파이어족 


머지않아 파이어족은 한국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전세계 유례없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기간, 각 종 금융자산들은 신고가를 연이어 갱신했다. 이 때 보다 일찍 투자에 눈 뜬 파이어족의 결과표는 얼마나 눈부신지 한국인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네이버에 파이어족 카페가 생겼고 나도 회원으로 가입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염탐하였다. 한국에서 파이어족에 성공한 사람들, 준비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니 서구권과 비교해 눈에 띄는 차이도 보였다.


첫째, 조기은퇴에 대한 시기가 늦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권은 조기 은퇴를 30대 초중반으로 본다면 한국인은 40대 후반 정도로 본다. 체감상 10년 이상의 갭이 느껴진다. 이는 한국의 노동시장 진입 시기가 늦은 이유가 크다. 서구권(미국,영국,독일 등)은 고교직업교육과 관련 사회시스템이 발달해 당장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인은 고교졸업자의 70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여기서 최소 4년은 늦어진다. 처음부터 좋은 회사에 입사해야한다는 인식에 취준생의 기간도 n년이 추가된다. 남성의 경우, 군대에 가느라 약 2년이 더 늦어진다. 돈을 늦게 벌기 시작하니 은퇴시기도 늦어질 수 밖에 없다.  


둘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크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조언으로 미국 주식 그리고 한국 부동산(특히 수도권)을 사라는 말을 들었다. 200% 동의한다. 그래서인지 미국 파이어족에겐 배당주가, 한국 파이어족에겐 부동산이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황금거위로 여겨지는 듯하다. 물론 코로나 종식(?) 후엔 시중에 풀린 돈을 다시 끌어오느라 금융자본의 가격과 함께 파이어족 인기도 꽤나 줄어든 것같다.



조기 은퇴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파이어족에 다다랐다면 그저 부럽다. 네이버 카페를 둘러보다보면 파이어족에 성공해서 이곳 저곳에서 한달살기를 하는 분도 계시고, 취미생활로 하루를 보내는 분도 계신다. 침 흘리며 구경하다가 참으로 재밌는 사실도 발견했다. 성공한 파이어족은 고민이 없을 것 같은데 그들에게도 사소한(혹은 중요한)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일이 없다는 것'.  매일 눈을 떠서 집을 나서야 할 곳. 싫지만 만나야 할 사람들. 내 이름에 놓여진 사회적 책임. 이런 것들이 없으니 점점 삶이 무료하게 느껴진다는 고백이다. 일에서 빨리 졸업하기 위해 경제적 독립을 겨우 이루었는데 또 일이 없어서 힘든 점도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는 그토록 힘들었던 첫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약 7개월동안 백수로 지냈던 경험이 있다(미래를 준비한다는 얄팍한 핑계 아래). 퇴사 후 3개월은 정말로 천국이었다. 가고 싶은 카페와 전시회를 낮시간동안 여유롭게 다녔고, 도서관에 틀여박혀 소설들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딱 4개월 차부터 불안해지고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로부터 이상하게 도태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때의 짧은 경험이 있어서 앞으로 내 삶에 일이 계속 없다면 어떤 기분일지 가늠할 수 있다.


일은 우리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결코 힘들게만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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