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빠진 아이의 기분을 상상해 본 적은 없다.
그래도 가끔 내 기분이 우물에 빠진 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둠 속에서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지면 아래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 상태를 우울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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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냥 119에 연락하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은데?
구급 대원들 사이에선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 best 10’ 같은 책이 두루 읽히리라 믿고 싶다.
그래야 우물에 빠진 아이가 무사히 구출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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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는 뒤로하기로 하고.
일단 우물에 빠진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데는 다들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그중에 인간이 가장 소중한듯하고, 아이는 보통의 인간들보다도 조금 더 소중하니까.
그러니 다 같이 측은지심을 발휘해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자!
아이를 구하는 김에 아이 옆에서 동동 떠다니고 있을 내 기분도 좀 건져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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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음으로 요 며칠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을 다시 읽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 막연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미세하지만, 그런 욕구는 우울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물에 빠진 줄 알았던 아이가 알고 보니 반신욕 중이었고, 마음이 내키자 ‘벌떡’ 일어나 제 발로 우물을 빠져나오는 것처럼 극적이고 역동적이진 않지만.
시간과 인내를 들여 한 문장, 한 문장 책을 읽다, 졸다, 좀 전에 읽은 부분을 다시 읽다 보면,
잊고 있던 욕망의 잔재들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가 우울한 상태였음을 서서히 잊게 되는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책들이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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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이 책들에 대해 뭔가 쓰고 싶었는데,
밤도 늦었고 우물에 빠진 아이 때문에 서론이 길어져서 포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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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괜스레 애정을 담아 불러보는 제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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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들이 누군가한테 추천할 만큼 훌륭한 작품은 아니다. 그러니 굳이 꼭 지금 이 책에 대해 떠들지 않아도 상관없다. 단언컨대 이 책은 하루키의 최고작이 아니다. 후보에도 오르지 않는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 거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의 초기작의 한계에 대해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그냥 내가 좋아할 뿐이다.
그뿐이다.
사실, 그거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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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 빠진 아이가 무사히 구출돼서 다행이다.
잊지 않고 옆에 있던 내 기분도 같이 가지고 나와줘서 고맙다.
그래도, 어른 말을 듣지 않고 까불다 우물에 빠진 부분에 대해선 따끔한 훈육이 뒤따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