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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 Jul 24. 2022

[벨기에 왕립미술관] 영화 올드보이 속 앙소르 그림

벨기에 여행을 준비하며 플랑드르 화가 관련 책을 읽던 중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었다.


화가 이름은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60~1949)였고, 가면을 쓴 사람들과 해골이 등장하는 비비드 한 컬러의 개성 있는 작품들이 플랑드르 화가들 중 단연 돋보였다.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만난 제임스 앙소르


벨기에 왕립 미술관은 고전 미술관(MUSÉE OLD MASTERS)과 근대 미술관(FIN-DE-SIÈCLE MUSEUM)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MUSÉE MAGRITTE MUSEUM)으로 구성된 대규모 미술관이다.


이중 19세기 회화로 구성된 근대 미술관에서는 제임스 앙소르의 일생에 걸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연실색한 가면들(The Scandalized Masks) -  이상한 가면들(The Strange Masks)

앙소르는 1883년작 아연실색한 가면들(The Scandalized Masks)에서 처음으로 가면 쓴 인물을 등장시켰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방 안으로 들어가려 문을 연 이가 어두운 방에서 자신처럼 가면을 쓴 사람을 발견하곤 서로 놀라는 그림이다.  


고독하게 홀로 술을 마시며 애써 가면으로 슬픔을 감춘 남자는 숨기고 싶은 마음을 들킨 듯 놀라고 있다. 반면 문을 연 이는 괴짜 같은 가면으로 오늘 하루만큼은 다른 건 좀 잊고 싶었는데 집구석에서  넌 왜 이러고 있냐며 핀잔을 주는 듯했다.


한편으론 애써 현실을 잊고 가면 뒤 숨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우울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 것에 당황하는 그림 같아 보이기도 했다. 


10년 뒤 작품인 1892년 이상한 가면들(The Strange Masks)에선 가면을 쓴 등장인물들이 더 늘어났다. 


창문 밖을 보니 축제가 한창이고, 날은 환한데 창가 옆 가면을 쓴 인물은 촛대를 들고 있다. 술병을 든 이의 얼굴은 붉은 가면을 쓴 것인지 취해서 벌게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닥에는 한 남성이 축 늘어져 있고, 선명한 색상은 축제로 한껏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며 밝은 빛이 그림 가득 퍼져 있다. 


뭔가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기이한 표정, 하지만 작가는 이를 심각하게 그리고 싶진 않다는 듯  밝은 색상들을 사용했고, 이로 인해 그림의 분위기는 더욱 독특해졌다.  


앙소르의 고향은 벨기에 해양 휴양지인 오스텐더로 어머니는 생계를 위한 기념품 가게를 운영했다. 이곳에선 가면들과 여러 물건들을 팔았고,  그런 이유인지 그의 그림엔 가면이 시그니처처럼 등장한다. 


훈제청어를 두고 싸우는 해골들(Skeletons Fighting for a Smoked Herring) - 나쁜 의사들(The Bad Doctors)


훈제 청어를 두고 싸우는 해골들(Skeletons Fighting for a Smoked Herring, 1891년)에선 그림의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진다. 해골 중 하나는 당시 경찰 모자를 쓰고 있는데, 두 개의 해골은 훈제 청어를 찢어 내려는 듯 이빨로 서로 잡아당기고 있다. 


프랑스어로 '훈제 청어' 발음이 '앙소르'라는 본인의 이름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앙소르는 해골 모습의 비평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먹잇감으로 물고 뜯는 것을 풍자한 그림을 그렸다.  


가면을 쓰는 이유


가면을 쓰는 이유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함이다.


축제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 표정도 드러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즐기기 위해  가면을 쓰기도 하고, 때론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가면을 방패 삼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선 많은 경우 속내를 감추고,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가면을 이용한다. 


앙소르의 그림 속엔 이런 엉큼한 속내를 숨기려 가면을 쓴 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어쩐지  그 기괴한 가면들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 불순한 의도가 있음을 더욱 분명히 하는 듯했다.  


가면의 기묘한 표정들은  독특하고 화려한 색상들과 대비되며 마치 찬란한 슬픔처럼 어두운 이야기가 더욱 극대화된다.

슬퍼하는 남자(Man of Sorrow) - 영화 올드보이 오대수
영화 올드보이 속 앙소르의 그림


영화 올드보이(2003)의 주인공 오대수는 술에 취해 자신의 이름을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고 풀이한다. 20년 전 영화 속 대사지만 당시 오대수라는 인물을 찰떡같이 표현한 이름이라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오대수는 술에 취해 걸어가는 길에 납치되는데, 남의 치부를 생각 없이 함부로 떠들어댄 죄로 중국집 군만두만 먹으며 15년간 감금당한다. 


이때 오대수의 방에 걸려 있는 그림이 핏물 혹은 눈물을 흘리는 예수를 그린  제임스 앙소르의 그림  '슬퍼하는 남자(Man of Sorrow, 1891)'다. 


핏물을 눈물처럼 흘리며 홀로 괴로워하는 그림 속 남성의 모습은 곧 괴로움에 고뇌할 영화 속 오대수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영화 속에선 그림 아래엔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 고독(Solitude)의 시구가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참으로 냉소적인 시인데, 그림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비정한 현실 같았지만 고독은 철저히 너 혼자만의 것이라는 슬픈 이야기 말이다. 


Scenery for the Ballet "La Gamme d'Amour", 2nd Scene: The Marketplace


환영받지 못했던 천재 예술가


천재성을 지닌 예술가들은 당대엔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다는 이유로 멸시받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 후대에 이르러  그것이 얼마나 진보한 작품이었는지 뒤늦게 평가받곤 한다.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는 언제나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면과 해골이 등장하는 불안과 공포, 냉소라는 이미지들이 앙소르가 활동하던 19세기엔 불편한 주제였을 거다.


제임스 앙소르 또한 차가운 시선과 비난 속에서 고독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시간이 흘러 예술적 업적을 인정받으며 그의 나이 70세에 벨기에 국왕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받는다. 

벨기에 왕립미술관
19세기의 팀 버튼, 앙소르의 그림이 좋았던 이유


기괴하지만 독창적이고, 동화 같지만 씁쓸하고, 그로테스크하나 아름답다 하긴 어려웠던 앙소르의 그림에서 팀 버튼의 영화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판타지 속 이야기인 듯 과장되어 표현되지만, 100%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완벽히 우울한 곳도 아닌 팀 버튼이 그린 이야기들이 현실 그 자체였듯 앙소르의 그림 속 이야기들도 내겐 현실 같았다.


가면 뒤 진실을 숨긴 사람들이나 영혼을 잃고, 해골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그려낸 앙소르에게서 팀 버튼 영화에서 느꼈듯 깊은 연민이 느껴졌다. 또 어쩐지 삐딱한 반항아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올해 벨기에 브뤼셀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앙소르라는 작가를 알게 되고, 그의 여러 작품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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