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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 Aug 07. 2022

석파정 서울미술관 :  한국 현대미술의 쇼케이스

석파정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석파정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 <두려움일까 사랑일까>는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무려 1세기 동안의 한국 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대단한 전시였다.


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광 유니온 그룹 회장이 지금까지 수집한 그림들을 선보인 이번 전시회를 보며 이 작품이 여기 있네? 라며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고, 드디어 이분의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되는구나라며 감동하기도 했다.


미술관 가기를 좋아하지만 즐겨보는 작가와 작품은 모두 서양 미술이었다. 코로나 덕분에 강제 국내여행을 하며 방문한 박수근, 이응노 미술관 등을 통해 뒤늦게나마 매력적인 한국 현대 미술가들을 알게 되었다.


한국 현대 미술의 맥을 제대로 짚어주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그간의 서양미술에 대한 편식을 만회하기 좋은 기회였다.


박생광 <범과 모란> -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연작 중 <아기 예수의 탄생>- 김기창 <군마도>
한국 현대미술의 쇼케이스


이번 전시는 말 그대로 한국 현대미술의 쇼케이스였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이중섭의 <황소>,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132억이라는 최고가로 낙찰되며 이젠 가장 비싼 한국 화가로 더 잘 알려진 김환기의 <십만 개의 점>, 독특한 질감으로 서민들의 일상을 그려내며 우리에겐 '아기 업은 소녀' 그림으로 유명한 박수근의 <우물가(집)>까지 한국 현대 미술의 한 획을 그은 대표 작가들의 여러 작품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전시는 한국의 설화, 민화 등 전통적 소재를 추가하며 토속적 아름다움이 담겨있는 작품을 제작한 박생광의 <범과 모란>으로 강렬하게 시작되었다.


운보라는 호가 더 익숙한 김기창의 예수 그리스도의 연대기를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에선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특별한 예수와 제자들을 볼 수 있고, 방 한쪽에선 역동적인 군마도 또한 볼 수 있었다.


문자 추상의 대가이자 한국 현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준 이응노의 <문자추상>과 조선의 백자에 애착을 갖고 이를 소재로 한 정물화를 많이 남겼던 도상봉 등 다양한 한국의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유영국의 <산>
천경자 <청준>, <고(孤)> -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무엇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보게 된 천경자와 유영국의 작품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말로만 듣던 천경자의 작품들을 실제로 처음 보았다.

특히 아프리카 초원 속 자신의 49세 인생을 담은 대작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가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고개를 떨군 채 앉아있는 여성의 모습은 평화롭게 초원을 거니는 아프리카의 동물들과 대비되며 외로움과 아픔이 더욱 극대화된다.


살아생전 시작돼 사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길고 긴 위작 논쟁에 지쳐버렸을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면 알록달록 머리에 꽃을 달고 화면 밖을 응시하던 여인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싶어 진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넘어 여인의 한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유영국 <산>-<움직이는 산>-<Work>


전시 중 처음 보는 그림에 매료된 작가가 있었는데 유영국이었다. 멀리서 유영국의 <산>을 봤을 때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랜드캐니언을 본 듯 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 이런 멋진 작가가 있었구나 알게 되었다.


내게 추상화는 타인이 알아볼 수 없는 사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해당 작품을 그린 작가가 아닌 이상 도무지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불친절한 추상화들에 그들만의 언어를 굳이 내가 이해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유영국 그림들을 보며 한 작가의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여러 작품들을 들여다보고, 작가가 관심을 기울인 것에 나 또한 귀를 기울이면 추상화도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깨달았으니 놀라운 변화였다.


유영국의 그림에서 선과 면이 단순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기에 그냥 작품 하나만 스쳐보았다면 그저 원과 삼각형으로 보였을 테지만 그 흐름을 알고 나니 그림 속 한국의 자연과 산이 보였다.


본 전시를 통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유영국 전시회에도 방문하게 되었으니 꽤 의미 있는 전시였음이 분명하다.


박수근 <우물가(집)> - 이응노 <수탉>, <문자추상>, <구성>-이중섭<황소>


수집가의 문장


이번 전시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해당 작품을 수집하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를 각 작품 하단마다 "수집가의 문장" 코너를 두어 설명해준다.


IMF 시절 소장가가 경제적 어려움에 작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빌딩 두 채의 값을 주고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 모두를 다시 품게 되었다는 이야기,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갈망했다 만난 후의 감동 등 수집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그림 감상에 재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액자 가게 처마 밑으로 피했다 처음 보게 된 이중섭의 황소를 사진으로 구입하게 된 후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30년 뒤 진품 <황소>를 소장하게 된 이야기는 수집가의 인생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십만 개의 점>은 100억이 넘어가는 가격에 좌절했지만 작품이 외국으로 나가면 김환기 최고의 작품을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장품들을 팔아 구입했다고 한다.


보통 그림 앞에 가격이 나오면 불편해지기 마련이었지만, 여러 작품을 보며 수집가의 한국 현대화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느껴진 덕분에 혼자만의 기호와 취미로 작품을 보관하지 않고, 대중들에게도 기회를 선뜻 내어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컸다.


수집가의 문장들을 읽다 보니 다른 작가들보다 김환기에 대한 대단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 이유인지 전시회 출구를 나서기 전 전시 마지막 작품은 김환기의 <아침의 메아리>였다.

김환기 <십만 개의 점> - 김환기 <아침의 메아리>
그리고, 석파정


입장권을 구입하면 석파정과 서울미술관 전관 관람이 가능한데, 미술관을 지나면 석파정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석파정은 조선 후기 이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김흥근의 별장이었고, 고종 즉위 후 흥선대원군의 별서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1만 3천 평의 넓은 땅에 위치해 인왕산 기슭의 멋들어진 소나무들과 거대한 너럭바위, 울창한 숲 속의 산책로까지 이곳이 왜 조선시대 권력자들의 별장이 되었는지 절로 이해가 갈 만큼 훌륭한 풍광을 자랑한다.


자연스레 어떻게 이런 명당을 개인이 소유하고, 이렇게 멋진 미술관으로 함께 개발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들었다.


이곳에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미술관 설립자는 경매에 나온 석파정의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며 기다린 후 드디어 연이 닿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술관과 설립자의 수집 작품들만큼이나 훌륭했던 석파정을 산책하며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사업가로 성공해 자신이 사랑하는 미술 작품들을 모으고, 이런 아름다운 공간을 꾸밀 수 있다는 것에 먼저 부러움을 느꼈다. 또, 이를 자신만의 컬렉션으로 그치지 않고 대중들에게 공개해 한국 미술을 알리고자 하는 열정에선 감동이 느껴졌다.


한국 현대 미술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번 전시회에서 미술 애호가인 한 수집가의 지난 40여 년의 여정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관람 안내

- 석파정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 2022.04.08.~ 2022.09.18.            

- 수~일요일 (월, 화 휴관) 10:00~18:00 (석파정 11:00~17:00)            

- 석파정 서울미술관 통합 입장권 : 현장 발권제

- 성인 15,000원, 학생(초중고) 12,000원, 우대/어린이(36개월 이상) 9,000원            

- 석파정 서울미술관 홈페이지 : https://seoulmuseum.org/            

매월 휴관일을 별도 공지하고 있어 방문 전 휴관 여부를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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