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팀 버튼 특별전이 다시 열렸다.
2012년 12월에는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됐었는데, 이번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진행 중이다.
당시 서울시립미술관 입구로 들어가는 길과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까지 전시 공간을 마치 팀 버튼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분위기로 꾸며뒀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UFO 같은 DDP에서 열리는 올해 팀 버튼의 전시는 또 어떤 느낌일까 기대하며 오전 일찍 전시장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다기에 일요일 아침 10시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올해 초 같은 곳에서 열렸던 살바도르 달리 전시에 비하면 아주 쾌적하고 양호한 수준이었다.
팀 버튼 특별전은 총 9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 Influence(빈센트 프라이스 등 팀 버튼 활동에 영향을 미친 이들), 2) Holiday(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던 방), 3) The carnivalesque(코믹하면서도 괴기한 카니발레스크 테마), 4) Figurative Works(초기 드로잉과 페인팅), 5) The Misunderstood outcasts(팀 버튼이 만들어낸 아웃사이더들), 6) Film characters(팀 버튼 영화 속 캐릭터들), 7) Polaroids(팀 버튼이 촬영한 폴라로이드 시리즈), 8) Around the world(팀 버튼이 기록한 노트지, 식당 냅킨 속 그림들), 9) Unrealized projects(작품으로 나오지 않았던 팀 버튼의 프로젝트), 그리고 마지막엔 그의 작업실까지 꽤 알찬 전시였다.
10년 전 전시가 입체적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스케치와 드로잉 등이 풍성한 회화 전시였다.
특히 개인 작품 활동에서 나온 페인팅들과 여행지의 식당 냅킨 등에 즉흥적으로 그려낸 그림들은 처음 보는 작품들이 많아 가장 재미있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팀 버튼 작품을 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팀 버튼 영화는 1993년 MBC에서 방영해준 비틀쥬스(1988년작)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됐다.
그 시절 비틀쥬스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는데 너무 재미있지만 기괴했고, 신기하게 웃기면서도 따뜻했다.
비틀쥬스 역할을 했던 마이클 키튼, 리디아라는 고스족 소녀로 정말 아름다웠던 위노라 라이더, 그리고 지나 데이비스와 알렉 볼드윈까지 지금은 쟁쟁한 스타가 된 이들의 청춘 시절을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비틀쥬스를 본 이후론 로드쇼, 스크린, 그리고 프리미어까지 당시 영화잡지들을 열심히 보며 팀 버튼 감독에 대해 찾아봤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수작업으로 팀 버튼 필모그래피를 찾아 나섰는데, 가위손(1990), 배트맨(1989), 배트맨 리턴즈(1992), 크리스마스 악몽(1993), 에드우드(1994) 등등 팀 버튼 작품들을 비디오로 빌려보는 것은 사춘기 시절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당시 왜 그렇게 팀 버튼 영화에 열광했을까 생각해 보면, 동화 같지만 암울하고, 몽환적 분위기가 아름답기보단 독특했고, 기괴하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재기 발랄함에서 끝나지 않는 의외의 감동 코드가 있곤 했다.
그런 팀 버튼의 작품들이 내겐 현실 세계 같았다.
독특한 분장과 미장센은 마치 판타지 속 이야기인 듯 과장되어 표현되지만, 100%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완벽히 우울한 곳도 아닌 팀 버튼이 그린 이야기들은 현실 그 자체였다.
그래서 팀 버튼 영화 속 주인공들이 순수함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지 못한(되지 않은) 모습에 연민을 느꼈던 것 같다.
2000년이 넘어서면서 팀 버튼의 영화들은 더 이상 예전 같은 설렘을 주진 못했다.
슬리피할로우(1999), 빅피쉬(2003),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유령신부(2005), 스위니토드(2007) 까지는 팬심 하나로 쫓아갔지만 그 이후 팀 버튼 영화에선 예전에 느꼈던 특이한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 후 기억나는 작품은 빅 아이즈(2014) 정도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 또한 나이가 들며 어른이 되어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웃사이더를 주인공으로 삼던 팀 버튼 본인이 주류가 되면서부터 비주류에서 벗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겪게 된 숙명적 이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팀 버튼과 조금씩 멀어져 갈 때쯤 팀 버튼에 진심인 남편을 만나게 됐다.
남편은 두 번째 데이트에서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티셔츠를 입고 나왔고, 나이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그 티셔츠가 당시엔 귀여워 보였으니 결혼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우리 집 피규어 방 한편에는 팀 버튼 작품 속 캐릭터들이 가득하고, 크리스마스 때면 악몽 시리즈로 트리를 장식하곤 한다.
팀 버튼이 1958년생으로 벌써 60이 넘었다니, 나이만큼이나 많은 작품을 동시대에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기발하고 참신했던 팀 버튼의 작품세계는 이젠 노련함과 개성이 공존하는 하나의 장르가 됐고, 이를 지속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생각한다.
그리고, 아담스 패밀리의 눈 큰 여자아이였던 웬즈데이를 주인공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로 팀 버튼이 돌아온다고 하니 또 한 번 기대해 본다.
팀 버튼 특별 전 The World of Tim Burton
2022-04-30 ~ 2022-09-12 / 월~일요일 (휴관일 없음) 10:00~20:00
DDP 배움터 지하 2층 디자인 전시관 / 성인 20,000원, 청소년 15,000원, 어린이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