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용인 백남준 아트센터에 다녀온 터라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볼 겸 휴일을 맞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아침 10시 개관시간에 맞춰 조금 일찍 나서서 서울에서 과천까지는 금방 갔지만 과천 서울대공원 캠핑장이 국립현대미술관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주차에는 조금 애를 먹었다.
다다익선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건립 당시 미술관 건물이 뉴욕의 구겐하임과 비슷하다는 지적에 따라 백남준에게 도움을 요청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기에 정부 입장에선 무척이나 다급했던 모양이다. 뉴욕 구겐하임과는 원통형 복도 구성이라는 것 외엔 비슷하단 생각이 들진 않는데 말이다.
당시 백남준은 대규모 영상설치작품을 논의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모니터 1,003대를 이용한 대규모 영상설치작품 다다익선을 완공했다.
1,003개의 숫자는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하고, 다보탑 모양의 다다익선이 이곳에 자리 잡음으로서 과천 현대미술관은 해외 미술관들과는 차별되는 독특한 한국의 색을 담은 건물이 되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 화~일 10:00~18:00(월요일 휴무), 전시 무료
현재는 <다다익선 : 즐거운 협연>이라는 제목으로 다다익선을 대대적으로 복원해 다시 켜게 된 것을 기념한 아카이브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다다익선의 역사와 수많은 조력자들이 어떻게 협업했는지 그 여정이 전시되어 있고, 그중 처음에는 TV를 일일이 켜야 했다는 모니터 담당자분의 인터뷰 등이 흥미로웠다.
기술의 발전으로 다다익선의 모니터들은 수명을 다했고, 모니터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화재 사건이 있기도 했었다.
백남준은 작품을 남기며 모니터를 전부 신형으로 교체하는 권한을 미술관에 모두 위임했다고 하나 브라운관이 아닌 매끈한 패널로 바뀐다면 다다익선만의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다다익선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2시에서 4시까지 2시간만 모니터가 모두 켜지며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1층에선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다다익선 : 즐거운 협연>과 옥상정원 등을 보고 내려오니 날씨 탓인지 이건희 컬렉션 현장 예매 발권기가 한산했다.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하려 했으나 매진이라 포기했는데, 1시간 단위로 진행되는 현장 예약은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이건희컬렉션에선 샤갈, 달리, 피사로, 모네, 고갱, 르누아르, 호안 미로 각각의 회화 1점씩 총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소박한 규모였기에 전시 관람 시간은 길지 않았고, 회화보단 피카소의 도자기가 대다수였다. 서울 용산에서 진행된 한국 화가들의 작품들로 채워졌던 이건희 컬렉션은 광주로 내려가 전시가 계속 진행 중인듯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공간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원형 정원을 둘러싼 휴게공간인 동그라미 쉼터였다.
안뜰을 둘러싼 원형 공간으로 안쪽은 내부 식물 정원을 보면서 쉴 수 있도록 통유리로 되어있었고, 바깥쪽은 중간중간 눈높이에 맞춰 미술관 밖을 볼 수 있도록 창이 나 있었다.
이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는데 창틀은 그림의 프레임이 된듯했고, 창 너머 보이는 자연경관은 말 그대로 풍경화 같았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80년대 후반 올림픽 등을 앞두고 국격을 한껏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기에 부지 또한 넓었다. 건물 밖 야외조각 공원에는 쿠사마 야요이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산책하기에도 무척 좋았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쾌적하고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며, 무엇보다 명물 백남준의 다다익선 실물을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문해 볼 만했다.
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