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첫날을 맞아 아침 일찍 서울 국립현대 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 전시에 다녀왔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전시는 관람일 기준 2주 전부터 예약이 가능한데 운 좋게 취소표가 있어 예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 전시는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에게 2021년 4월 기증받은 이중섭의 작품 9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중섭 기소장품 10점을 모아 총 100여 점으로 구성된 전시였다.
이중섭 작품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누어 소개했는데, 1940년대는 이중섭의 연필화와 엽서화가 전시됐고, 1950년대는 회화와 은지화, 편지화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1940년대 : 초기 드로잉 연필화와 엽서화
평안남도 출신 이중섭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월남하게 되면서 작품 대부분을 고향에 두고 왔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1940년대 남긴 몇 점의 연필화와 이중섭의 초기 작품인 엽서화들을 볼 수 있었다.
엽서화는 훗날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그림엽서로 총 40여 점의 작품들이 있었다.
초현실적 경향이 보이는 <상상의 동물과 여인>이나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이 눈에 띄었는데 하늘과 바다를 표현한 푸른색이 샤갈의 푸른빛만큼이나 아름다웠다.
1950년대 회화 : 아이들, 새와 닭, 소, 출판미술
이중섭은 1950년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와 부산과 제주도 등지에서 피란 생활을 하며 작품을 남겼다.
1950년대 작품들은 회화, 은지화, 편지화로 구분되어 전시되고 있었고, 이중 회화 작품들은 아이들, 새와 닭, 소, 출판미술이라는 소주제로 전시되고 있었다.
이중섭이 아이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의 첫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디프테리아로 사망한 이후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몸을 맞대고 끈으로 이어져 있고 아이들 사이엔 게와 물고기도 등장한다.
전시회 포스터에 있기도 한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는 두 아이가 위아래 자리하고 있고, 둘을 이은 긴 줄 가운데에는 큰 꽃게가, 양 끝에는 물고기가 매달려 있다.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 했던 제주도 피란 생활에서 바닷가에서 잡은 게를 주식으로 삼을 만큼 가난했지만 이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생각했기에 그림 속에 물고기와 게를 등장시켰다고 한다.
이중섭은 1940년 작품에 새를 등장시킨 이래 1950년대까지 새와 닭을 즐겨 그렸다. 닭을 직접 기르면서 관찰하고 그리기에 열중했는데, 두 마리의 닭을 부부로 의인화하거나 새와 인간을 같은 크기로 두어 구성원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두 마리의 닭을 그린 부부라는 그림은 붉은색과 푸른빛 배경이 마치 노을 지고 있는 바닷가 같았고, 두 마리 닭은 날아오른 사이좋은 봉황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소는 이중섭이 즐겨 그린 소재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주제인데 하루 종일 소를 관찰하며 연필 소묘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중섭의 대표작인 황소는 없었지만 소의 소묘가 전시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잡지의 표지나 삽화 등 이중섭이 참여한 출판 미술이 전시되어 있었고, 여러 잡지들의 표지화들을 볼 수 있었다.
은지화와 편지화
이중섭은 담배를 포장하는 알루미늄 속지에 못 등으로 윤곽선을 눌러 그린 후 검정 물감이나 먹물을 문질러 선을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했다.
은박지 종이 음각선에 묻혀 들어간 검정 선이 돋보이는 은지화들은 접히거나 구겨지고 찢어져 있지만 이를 그대로 살려 작품의 일부로 만들었다.
은지화 대부분은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이는 1952년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듯했다.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이중섭은 온 가족이 한 데 모여있는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하며 가족과 재회하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듯했다.
그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부인에게 보낸 글이 담긴 편지화였다.
이중섭은 아내에게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중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자신의 애칭이었던 아고리로 본인을, 아내는 천사라 칭하며 절절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 달리 이중섭의 건강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황폐해진 몸과 마음 때문인지 이후 그림들은 두터운 필치로 따뜻함보단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중섭의 쓸쓸한 죽음과 씁쓸한 위작 논란
1955년 이중섭은 그리워하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채 영양실조와 간경화 등 병고에 시달리다 1956년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이중섭은 침대 위에 쓸쓸하게 방치되어 있었고, 그의 곁엔 병원비 독촉장이 전부였다고 하니 무척이나 외로운 죽음이었다.
이중섭 사후 그가 유명해진 만큼 가족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2005년 그의 셋째 아들이 경매에 내놓은 그림이 가짜로 밝혀져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중섭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이 생겼고, 위작이 많은 작가가 되었는데 그 원인 제공자가 아들이라는 점이 너무나 씁쓸했다.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가득한 그림들을 봤던 터라 이런 논란에 대한 안타까움은 더 크게 다가왔다.
사후에야 그 진가를 인정받는 천재화가 이중섭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삶을 살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그러니 그의 작품 황소가 바로 이중섭 자신이 아니었나 싶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전 전시 정보
예약 방법 :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관람일 2주 전부터 예약 가능
기간 : 2022-08-12 ~ 2023-04-23
관람료 : 무료
관람시간 : 10시 ~ 18시, 수요일 및 토요일 야간 개장(10시 ~ 2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