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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um May 05. 2022

엄마 밥상

조건 없는 엄마밥상이 그리운 시간

1985년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과밀학급으로 오전. 오후 반으로 나뉘어 등하교를 하던 때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 모든 것이 즐겁기만 하던 코흘리개 국민학생이었던 나다.

나에겐 아름답고 다정하고 음식 잘하는 엄마가 있다.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 뛰기를 하다가도 오후 5시 넘어가면 "혜옥아! 들어와~  밥 먹자~" 아파트 4층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고 나는 볼멘소리를 하며 "아! 엄마 잠깐만~~~  이것만~" 하며 시간을 벌었다.

함께 놀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돌아설 때,   명의  친구를 아직도 기억한다.

부모님 맞벌이로 집에 아무도 없어 자길 불러주는 이 없는 그 친구는 나를 부럽게 쳐다본다.
어린 마음에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밥 먹을래?"  손을 잡고 이끌어본 적도 있다.
한사코 거절하는 그 아이, 세월이 지나도 기억이 난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집에 들어가면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이 나를 기다려준다. 언제나 그렇듯 삼 남매가 좋아하는 반찬들과 꼭 먹여야 하는 엄마 기준에 준하는 멸치볶음과 김치, 나물들은 필수 반찬으로 자리 잡았다.  
어린 시절부터 딱히 편식 없이 골고루 먹는 나에게 엄마 밥상은  늘 행복한 하루의 마침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년이 올라가고 늘 집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던  엄마가 집에 안 계시는 날들이 늘어났다.

아마.. 이맘때 맞벌이를 시작하셨던 것 같다. 저학년 때는  손이 많이 가니 집에서 나를 케어하느라 일을 안 다녔지만 2학년 2학기 즈음인가 일을 다니셨던 것 같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동네 친구들과  롤러스케이트도 타고 고무줄 뛰기도 하며 피구 놀이도 했다.
할 수 있는 놀이는 죄다 했는데 엄마는 4층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본인들을 부르는 소리에 하나 두울 각자의 집으로 사라지고 예전 내 눈길을 잡았던 그 친구랑 나만 남았다.

어색한 순간,  그 아이가 묻는다
 "너 엄마 언제 와?"  
나는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몰라, 금방 올 거야. 엄마 오는 방향으로 걸어가 볼래"  그렇게 터벅터벅 아파트 단지를 걸어 나아간다.  하릴없는 또래 친구도 내 뒤를 따라온다.

몇 분 걸었을까  저기 저 뽀글 머리에 양손 비닐봉지 가득 들고 걸어오는 익숙한 실루엣, 우리 엄마였다.
"엄마!"  한달음에 달려가 무거운 엄마 양손에 내 손까지 얹어 더 무겁게 매달려 애정을 쏟아낸다.

"아유.. 왜 나와 있어~  집에 가서 있지~  어서 가자. 집에 가서 밥 먹자"

나의 엄마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내 뒤를 쫓던 아이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생각나 서둘러 뒤돌아 보았다.  

그 아이는 진즉에 뒤돌아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왜 그때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먼저 와서 미안했던 걸까. 당시  나도 어렸지만 왠지 마음은 편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퇴근길 돌아온 엄마 손을 잡고 집에 들어선다.

엄마는 옷을 갈아입고 손을 정갈하게 씻은 후,

저녁밥상을 차린다.

푹 익은 김치를 반쪽 꺼내어 넓적한 냄비에 넣고 신맛을 잡기 위해 설탕 솔솔 뿌려 기름에 달달 볶다가 돼지고기도 넣고 파도 넣고 물을 넣어 푹~~  끓여 과장 조금 보태서 잇몸으로도 으깰 정도로 부드러운 김치찌개를 만들어내셨다.  달걀 세알 정도 탁 깨어서 촵촵촵 잘 섞어 잘게 썬 파를 넣고 물. 소금 적당히 배합해 계란찜도 한 냄비  준비하신다.
어디 그뿐이랴, 추억의 야채 소시지  ( 더 어릴 적엔 분홍 소시지 많이 먹었다) 숭덩숭덩 썰어 계란 옷 입혀 구워내 놓으면  밥 한 그릇은 뚝딱이였다.  이마저도 부족해 보인다 싶으면 생선이라도 먹이고 싶은 부모 마음이었을까 참치캔 하나 뚝! 따서 밥상 위에 보너스처럼 올려주시기도 했다.
마지막 최고의 반찬  엄마표 김구이!

짭조름 바삭한 김구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김 한 장 이면 밥한 그릇 우습게 먹어치울 수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지금은 맛보기 힘든 엄마표 김 은 정말  너무 맛있었다.
당시 한 장 한 장 기름 발라 소금 치고 차곡차곡 올려놓고 김을 굽는 엄마를 나는 곧잘 보았다.

그렇게 한 상 차려진 밥상에 둘러앉아 우리 가족은 비로소 완전체가 되어 밥상머리에 모여 밥숟가락을 부딪힌다.




나에게 어린 시절 엄마의 밥상은 따뜻함이고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 만화영화를 보고 "엄마는 어디 가면 안 돼~~"  울던 그 어린 꼬마 아이가 자라서 이제는 45살의 어른이 되어 나의 자녀들에게 따뜻한 저녁밥상을 차려주고 있다.

어린 시절 내 뒤를 따라 걷던.. 왠지  쓸쓸해 보이던 그 아이처럼.. 나의 아이들이 회사에 출근한 후 늦어지는 나를 기다리지 않도록  서둘러 귀가하려고 늘 바둥거리며 살고 있는 평범한 워킹맘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엄마의 밥상을 회상하며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고 생각만으로 침이 고임을 느끼며 가슴 깊숙이 친정엄마가 보고 싶어 지는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직장에 나가는 엄마가 왜 싫었는지,
나만 보고 집에만 있어주길 왜 바랐는지,
철없던 막내딸이 성인이 되어 워킹맘으로 어떤 것 하나 포기 못하고 전부 해내면서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여자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보니 퇴근 후 주방에 들어가 밥 차리고 정리하고 쉬운 일은 아니더라.  하루 이틀이지, 그런데 희한하게도 힘든 일이 분명하건만.. 내가  해준 밥. 국. 반찬.  투정 없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또 잊고 해 주게 된다.

어쩌면 나의 엄마도 이랬을까

나의 모습을 보고 나의 딸이 이렇게 살기를 바라진 않는다.
다만, 가족이 모여 숟가락  부딪혀가며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만을 기억하고 추억해주길 바랄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돌아가고 싶은 딱! 한 순간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저녁노을이 질 때 즈음 4층 창문을 열고 나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그 저녁 식사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혜옥아~  들어와 밥 먹자~"
"응~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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