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났다.
노트북에 흠집이 났다.
'흠집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생각이 들면서도 화면에 생긴 기다란 칼자국이 거슬린다. 어디 가서 고치자니 간편한 노트북 사는 것만큼의 가격이 든다. 돈이 아깝다. 내 피 같은 돈.
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따님이 칼로 화면을 긁어놓은 것이다.
"칼날이 나온 줄 몰랐어."라고 변명을 하셨다.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그래, 몰랐다는데... 화를 참으며 화면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검색했다. 심각한 표정에 따님은 옆에 와서 내 눈치를 살핀다. 궁금하면 저지르고 보는 성격은 누굴 닮은 걸까? 조심성은 왜 없는 걸까? 내가 뭔가 잘못 가르친 건 아닐까? 그나저나 노트북은 어쩌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한꺼번에 떠올랐다.
치약을 바르면 의외로 깨끗해진다는 정보를 얻었다.
실패했다.
아무리 바르고 문질러도 복구가 되지 않는다. 결국은 갈아버리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래서 노트북은 공유를 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런데 어쩌랴, 자기 것이 있어도 엄마가 쓰는 걸 공유하는 게 더 좋은 나이인 것을.
앞으로는 조심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는 화를 내지 못했다. 기계보다 중요한 게 사람인데, 고작 이것 가지고 화내면 내가 쪼잔해 보이는 거 같아서 관뒀다.
노트북은 여전히 칼집을 자랑하고 있다.
이 노트북에 관한 사연이 하나 추가되었다.
이런 사연을 가진 노트북은 세상에 내 것 하나뿐일 것이다. 희소하고 특별한 기억. 그래,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