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카 Sep 29. 2022

게으름 장인


게으름에 대한 주제로 게으르게 이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 글의 발행이 늦다고 게으르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확실히 일을 미루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그럴 것이다.


꾸준히 게으른 건 성실한 것과 좀 다를까? 어쨌든 꾸준한 건데.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같은 연기를 10년을 넘게 했으면 이제 인정을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연기 분야의 장인이라 생각한다면 그것도 대단하니까. 게으름을 감히 여기에 비해 본다. 나는 어릴 때부터 꽤 오래 게을렀다. 그럼 나는 게으름 장인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런 글도 쓸 수 있고. 게으름이란 말이지 엣헴, 하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자기 합리화의 고수가 되어간다. 그냥 게으르다로 끝나면 좋겠지만 게으른 자에게는 많은 공격이 들어오기 때문에 변명 준비가 늘 되어있어야 한다. 심지어 자기 내면의 공격자에게도 해명을 해야 한다. 나와의 싸움을 위한 답들이 습관처럼 따라붙는다.


피곤하다.


게으르면 참 힘들다. 그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 맞서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면 여간 에너지가 쓰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역효과로 다른 일에 힘을 내지 못하고 자주 쉬어야 한다. 나도 할 일이 있는데.


게으른 사람은 부지런히 자기 방어를 한다.


게으름과 부지런함이 동일한 선상에 놓인다. 웃기다. 부지런히 게으른 사람이라니.


나는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게으른 자들 세상에 넘친다고 믿는다. 다만 인정하는 사람이 적고 게으름을 지양하려고 발버둥 칠 뿐.

 

'인간이 게으를 리 없어, 게으르면 안 돼,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원인을 찾자.' 하면서 ADHD라든지, 내향인, 내성적이라는 말을 다 끌어온다.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어머 전부 내 얘기네, 인정. 그러니까 나와 다른 부지런쟁이들도 모두 인정 좀 해보세요. 그냥 그런 사람인 거예요.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왜 게으르면 안 되는 건가요? 부지런함이 오히려 독은 아닐까요? 그러니 부지런해지길 종용하지 맙시다. 


기왕 게으름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김에 부지런쟁이들이 게으르길 졸라 본다. 그렇게 부지런히 살다간 큰일 납니다. 건강 좀 챙기고 천천히 하세요. 급히 먹다 체하는 법이에요. 뛰다가 넘어져요.


아마 부지런이 미덕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먹히지 않겠지만.


게으른 나를 방어하기 위해 부지런을 탓해보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끝없이 게으른 나의 문제를 지적하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게으른 게 자랑이냐?


이런 생각이 수시로 들기 때문에 자책하지 않고 나를 인정해주려면 계속 토닥토닥해야 한다. 나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힘들다.


세상이 만든 성공 신화와 부지런함, 근면성실함이 멋져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 모든 부지런 찬양은 가시적인 것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뭔가 만들어 두는 것들이 많으니 역시 그게 옳은 길이라 믿어버린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내가 사회 부적응자처럼 느껴진다. 나는 원래 이렇게 살고 있고 부적응자가 아니며 단지 느리다. 저들처럼 빠르고 꽉 채워 살 수 없다. 그걸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나는 왜 게으를까? 이렇게 해서 뭐가 되겠어? 뭐라도 될 수는 있으려나?


하지만 돌아보면 나도 어찌어찌 살고는 있. 게으르다고 손가락질받으며 그래도 살고 있다.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랑 엇비슷하게는 사는 거 같다. 아, 이런 말 하면 노력한 사람들이 억울하려나?


게으르게 살면 사람들이 간섭하는 걸 무시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단지 그뿐이다. 나는 특별히 해악이 되지도 않고 느긋하고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름이란 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