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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멘토 Jul 07. 2023

공기업 빌런 이야기 3화

계획 탈출 빌런

본 썰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실에 입각하였으나 등장하는 이름, 직위 등은 실제와 다를 수 있음.



"아니 성대리, 진짜 이럴 거야??"

"반말하지 마세요. 내가 차장님 친구예요?"


또 시작이다.


성대리는 일주일에 4일 이상 휴가, 외출, 돌봄 휴가 등으로 자리에 없다.

그녀는 오늘도 퇴근시간 즈음 자리에 돌아와 아침에 항공권을 찾던 여행사 홈페이지를 닫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대리, 오늘 국회에서 들어온 요구자료 보냈어요?"

"아 맞다. 깜빡했어요. 월요일엔 제가 휴가라 다음 주 화요일에 보낼게요 차장님."

"아니 그거 오늘까지 보내야 한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잖아요."


또 언성이 높아진다.


"이미 못 보낸 걸 어떡하라고요. 그리고 저 컴퓨터 껐어요. 차장님이 직접 보내시면 되잖아요."

"그거 성대리 업무잖아요. 대체 요즘 뭐 하시는 거예요?"

"담당 파트 차장이 부하 직원 뭐 하는지도 모르는 게 자랑이세요?"


요즘 들어 부쩍 대리님이 차장님 말꼬리를 잡는다.


"아니 성대리, 진짜 이럴 거야??"

"반말하지 마세요. 내가 차장님 친구예요?"


부장님은 오늘도 입꾹닫을 시전 한다. 다 들릴 텐데.


그렇게 성대리는 퇴근을 하고, 이제 곧 차장이 나에게 말을 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윤주임~ 미안한데 이거 좀 해줄 수 있을까? 자기가 그래도 이 부서에 제일 오래 있어서 잘 알잖아."


늘 이런 식이다. 부서에 오래 있는 게 죄라면 죄다.

인사이동을 하려면 대체자를 구해놓고 가라고 하는데, 이 부서는 기피 부서라 아무도 오려고 안 한다.

누군가를 여기 앉혀야만 나갈 수 있다는 이 회사의 문화는 내겐 너무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진짜 오늘까지 꼭 보내야 하는 중요한 자료야. 요즘 우리 분위기 알지? 부탁 좀 하자."


처음에 거절했어야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해주다 보니 어느새 내가 두 개 파트 일을 모두 떠맡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집에 올라가는 기차표 시간을 바꾼다. 금요일이라 표를 잡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 출발하는 티켓이다. 이번 주도 집에 가면 새벽일 것이다.


힘들지만 곧 있을 인사이동에서는 어떻게든 나갈 것이다. 아니 나가야 한다.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집 근처로 옮기고자 시도라도 해 봐야 한다. 다행히 이번에 이동이 가능한 사람은 우리 부서 내에서 나뿐이다. 부장님도 차장님도 신입사원이 오래 한 곳에 있었고 이번만큼은 대체자를 구하지 못해도 보내준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인사 발령이 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인사발령지에 내 이름이 없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성대리 이름은 왜 들어가 있는 것인가?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안고 집에 전화를 해야 한다. 

이번에도 못 옮기게 되었다고...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또 얼마나 속상해하실까...


계단에서 성대리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응응 나왔지~ 나 고충처리 했잖아. 아 그래? 너도 차장하고 싸워~ 노조 가서 고충상담하고 옮기는 거지~ 응?? 나 다음 주 파리 가잖아~ 갔다 와서 보자~깔깔깔"


새벽에 집에 도착해 보니 아버지가 며칠 전부터 체했는지 배가 아프다고 하셔서 응급실에 모시고 갔다.


급성 맹장염이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괜히 부모님께 큰소리를 내었다.


"아프면 병원 좀 가요. 제발 좀 참지 말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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