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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NOWN Jun 09. 2024

영웅의 필수조건은 '타고난 용기'가 아니다

영웅, 잘해볼 기회가 오는 순간까지 견딘 이들

영웅서사는 인류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전해졌고, 변형돼 왔다. 길가메시에서 아이언맨까지, 애틀란타에서 원더우먼까지. 때로는 신화로, 어떤 때는 소설가의 상상으로, 그리고 어느 날에는 실제 인물의 기록으로 영웅은 만들어졌다.


다양한 영웅이 존재해 왔고 수 백가지의 영웅서사가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모든 영웅은 고난을 겪는다. 태어나서부터 부모에게 버림을 받거나, 강력한 적을 만나거나, 연인을 잃는 등 영웅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리고 모든 영웅은 고난을 이겨낼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혈통, 타고난 용기와 지혜, 끈끈한 우정과 동료애, 기개, 강한 힘 등 모두가 '영웅'하면 떠올리는 속성들이 여기 속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종종 영웅의 '필수조건'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런 속성들은 영웅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 준다. 하지만 이 속성들이 영웅의 필수조건 그 자체인 건 아니다. 영웅의 필수조건은 그 모든 것에 앞서 '단 한 번이라도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알쓸신잡 1>에서 김영하 작가는 이순신 장군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왜적과 맞서 싸우는 상황에 놓였다. 여기서 고난은 '훨씬 숫자가 많은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12척의 배'이다. 이순신 장군이 영웅으로 기록되려면 12척이라는 작은 기회라도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 조차도 없이 맨몸으로 맞서야 했다면 그는 그의 용기와 전략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영웅은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이상은 주어져야 탄생한다.


'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박탈시켜 버린 예시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전형적인 불행 서사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단 한 번도 기회를 얻지 못한다. 기회처럼 보이는 것조차 제대로 된 게 아니었고,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조차 기회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없게 된다. 관객들 역시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볼 수 없다. 만약 이 주인공에게 단 한 번이라도 기회가 있었다면 영화의 결말도, 주인공을 향한 관객들의 평가도 달라졌을 것이다.


영웅서사에서 고난과 함께 '잘해 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건 뻔한 서사구조 이론이다. 하지만 이걸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쩐지 위로가 된다. 고난은 분명하고, 영웅의 조건은 타고나지 못한 거 같아서 슬퍼지는 날에는 이걸 떠올려 본다. 어쩌면 단순히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가 아니라, 잘해 볼 기회가 없어서 '아직'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 속 수많은 영웅들이 그랬듯이, 고난에 지지 않고 견디다가 아주 작은 기회라도 잡게 되면 누구나 인생을 영웅서사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도 가져본다.


어쩌면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사람들이 영웅서사를 사랑한 이유는 영웅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대단하지 않은 순간을 잘 견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헤더 이미지: UnsplashAnh Henry Nguy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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