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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시 May 07. 2024

#1 방브의 뜀박질

낭만 가득한 유럽과 무계획 소녀들


여행의 설렘을 가득 안겨주었던 방브.



그곳은 시끌벅적한 파리의 중심지와는 달리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조로움이 주는 편안함이 마음에 들었고, 방브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내가 떠올렸던 여행과 닮아있었다



유럽에서는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찾는 것만큼이나 쉽게, 여러 가지의 그래피티를 볼 수 있었다. 벽에 새겨진 그림들은 자주 우리의 대화 소재가 되곤 했다. 작가 미상의 그림들을 보며 어떤 이가 어떤 시기에, 어떤 마음으로 붓을 들었을지 상상하는 것은 아주 즐거웠다. 우리가 예술과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으니. 




집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험난했다. 모르는 곳에 갑자기 떨어지기도 했고, 낯선 이와 부딪히기도 했다. 그때 난  생각했다. 이름 없는 이방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우리가 묵었던 방의 창가에서는 늘 커다란 시계탑이 보였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댕-하고 울리곤 했는데, 어떤 기준으로 소리를 내는 건지는 방브를 떠날 때까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거실에서 늦잠을 자는 집주인을 피해 방 안으로 들어와 시계탑을 보며 아침을 먹었다. 몰래 먹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요거트 하나로도 행복했던 방브의 아침 덕분이었다. 



우리는 매일 지하철역을 향해 30분을 걸어야 했다. 난 그 시간을 매우 좋아했다. 나와 동행했던 친구는 아주 좋은 리스너였기 때문에, 난 자주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그곳에 남겨둔 수많은 대화들을 언제 다시 주워 담을 수 있을지. ? 



방브는 가는 곳마다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늘 구글 지도에 나와있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동해야 했지만... 방브는 그럴 만큼 아주 예쁘고 아늑한 동네였다. 서영인 뒤에 나오는 분홍 지붕과 표지판의 조화가 좋아서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고 했었다



방브에서 제일 가고 싶었던 플리마켓. 난 가끔 예술가는 어떤 형태의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방브의 플리마켓에서는 분명히 모든 이가 예술가인 듯했다. 감성 없이 나이를 먹는 건 굉장히 지루할 거라는 확신이 든 것도 방브의 어르신들을 만났을 때였다. 나도 꼭 취향이 있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젊음은 없어도 낭만은 있는 할머니가 될 거야.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그림들일까? 난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




아마도 형제로 추정되는 귀여운 어르신들. 태극기를 보자마자 웃음이 나는 걸보니 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유럽과 꽤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도- 역시는 역시. 나의 본질과 정체성은 여전히 꼬레앙. 타지에서 받는 애정이 더 반가운 것은 기대하지 않은 친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기대하고 적당히 기대면서 살아야지.



낯선 곳에서 만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의 얼굴.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가끔 삶이 벅찰 때는 내가 얼마나 조그만 존재인지 감각하기.



아침엔 외투 하나를 걸치고 거리를 거닐었다. 꼬질꼬질한 상태의 아침 산책이 좋은 건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여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여행객이길 거부하는 걸 보면 역시 소속감이 내겐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한 동네에 더 조용한 시간들. 9시가 넘었었는데도 상점들은 전혀 문을 열지 않았고, 거리에도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주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느긋함과 여유를 배워야 하는 세상이라니. 서울은 너무 각박해. 벅차올랐던 방브의 아침을 그대로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다. 혼자만 알긴 너무 아깝거든.


서영인 저 노란 신발을 유럽의 어딘가에 버려야 했다. 신발이 낡고 해질 때까지 달렸기 때문에. 여행의 시작이었던 방브는 우리에게 그런 곳이었다. 숨이 찰 때까지 달려도 더 달리고 싶었던 곳. 시간이 많이 지나고, 다시 저곳에 갔을 때도 힘차게 뜀박질할 수 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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