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지 말고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나 UI UX 디자인으로 취업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 중 하나가 “비전공자라서 경력이라고는 사이드 프로젝트밖에 없는데 취업할 수 있을까요?” ”사이드 프로젝트만으로는 취업이 어렵지 않나요? “라는 사이드 프로젝트 관련 질문입니다.
저도 비전공자입니다. 공간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운 것은 3d 툴이나 인테리어 디자인 같은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UX UI 디자인에 대한 수업이 전혀 없어서 관련 경력은커녕 UX에 대한 개념도 잘 몰랐어요. 관련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을 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비전공자로서 고군분투한 경험은 이전 글에 적어 두었습니다.
이전 이야기 : 비전공자가 대기업 ux ui 디자이너로 취업하기
이번 글에서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UX 디자이너로 취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이드 프로젝트 덕분입니다.
저의 첫 번째 사이드 프로젝트는 2013년 '넥스터즈(nexters)'라는 앱 개발 동아리에서 진행한 eting이라는 앱입니다. 벌써 10년 전이네요 ㅜ ㅜ 10년 전에도 스마트폰 있었고 앱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넥스터즈는 다른 동아리가 그렇듯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가 모여 방학 기간 동안 하나의 앱을 완성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던 동아리였습니다. 동아리 선배들이 실제 앱을 론칭한 경험이 있었고, 그 덕분에 나름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있었습니다.
넥스터즈 : https://nexters.co.kr/
처음 시작은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Rando라는 사진 공유 앱의 텍스트 버전이었습니다. Rando는 사용자가 사진을 찍으면 전 세계의 누군가 1명에게 랜덤으로 전송되는 앱입니다. 나도 다른 사람의 사진을 1개 받아올 수 있고 해당 사진이 어디서 왔는지 지도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SNS 피로감이 높았고, 한국에서는 익명 앱이 드물었던 시기라 저의 아이디어가 팀원들 사이에 반응이 좋았습니다. 해당 서비스를 구체화하기로 하였습니다. ‘누군가 1명에게 내 이야기를 보내는, 내가 받은 누군가의 이야기에는 답장을 보낼 수 있는’ 대나무숲 같은 익명 메시지 앱이었습니다. 저는 UX 설계를 담당했고, 팀에는 UI 디자이너, 개발자, 기획자가 함께 했습니다.
동아리였지만 선배들의 커리큘럼이 잘 갖춰져 있어서 두 달 동안 체계적으로 앱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동아리 내에서 사용성 테스트(UT)도 진행하며 실직적인 피드백을 얻었습니다. (2014년에도 UT 했다..) 사실 앱을 만들 당시에는 유저 경험을 생각한다기보다 론칭을 위해 고려되어야 할 것들ㅡ개발자 환경 세팅, 앱스토어에 등록할 이미지와 설명 작성, 개인정보 보호 방침 등 자잘한 것들도ㅡ을 생각하기 바빴어요.
2개월 후, 실제로 eting 앱을 런칭했습니다!!
텍스트를 주고받는 어렵지 않은 앱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주업도 아닌 사이드 프로젝트기 때문에 실제로 앱을 론칭까지 한 팀은 많지 않았습니다. 저희 팀에서도 일부 이탈하는 팀원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끌고 가고자 하는 나머지 팀원들의 열정, 정확한 타임라인, 현실적인 MVP (최소 기능 제품) 계획 덕분에 성공적으로 론칭할 수 있었어요. 결제도 되고 커뮤니티도 있고 사진도 올리고 다양한 기능이 있었다면 짧은 시간 안에 앱 개발하기에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하게도 아무도 다운로드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동아리 사람들이나 지인들만 다운로드해서 우리끼리 테스트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100명 다운로드했을 때만 해도 신기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운로드 수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늘어났을까 궁금해서 네이버와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몇 명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eting 사용법을 설명하면서 eting을 통해 힐링 메시지를 받았다는 내용을 써주셨습니다. 진짜로 우리가 의도한 대로 솔직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
(이렇게 메시지에 답변이 달리는데, 감동적인 답변을 달아줍니다. 이 화면으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앱의 사용자는 대부분 10대라는 것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자 의견을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메시지가 오면 우주선 모양의 아이콘이 뜨게 되는데, 관리자용 아이콘을 만들어서 사용자들에게 직접 말을 걸었습니다.
어떻게 앱을 알게 되었는지, 어떤 기능이 불편하고 어떤 것이 좋은지,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등 직접 질문을 던져 답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UX 리서치라는 개념도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과정이 UX였습니다. 페북 계정도 만들어서 소통하고 수시로 우주선을 보내 의견을 들었습니다
유저들이 해준 답장 중 노란색을 보면 eting 너무 좋다고, 정말 힘이 된다고 해주시는 말들이 있어요. 정말 감격스러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유저들이 사랑해 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니! 이때는 힘든지도 모르고 학교 일보다 eting을 열심히 했었어요
유저 리서치를 통해 니즈들을 분석했고 하나씩 반영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메시지 데이터도 분석했습니다. 어떤 시간대에 메시지가 많이 가는지, 어떤 메시지들이 많고 어떤 답장이 오가는지 어떤 답장이 왔을 때 사람들이 삭제하지 않고 간직하는지. 가입 시 휴대폰 인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유저 데이터는 없지만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이대와 연령 등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내용으로 미팅을 발전시켰습니다. 일단 관리자가 메시지를 쉽게 보낼 수 있고 신고된 메시지도 확인할 수 있는 관리자 페이지도 만들었고, 불량 메시지와 불량 회원도 관리하였습니다.
사용자들이 메시지를 받을 때 실망하지 않도록 감성이 맞는 사람에게 메시지가 보내지도록 메시지 교환 로직도 만들었습니다. 몇 가지 로직을 소개하자면 메시지 중 쓸모없는 것들을 고르기 위한 로직을 만들어 의미 없는 메시지들은 아무에게도 보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특정 아이돌 이야기만 반복하는 유저는 비슷한 유저들에게 메시지가 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메시지 길이와 답글 길이도 유형화해서, 길게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길게 답장을 써주는 유저에게 메시지가 가게 해서 정성스러운 답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조금씩 화면 개선도 하고 기능도 추가하였습니다.
개선 전후를 비교하면 메시지 만족도가 올라갔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지표는 사람들의 답글 삭제 비율과 이야기 무시 비율로 측정했습니다. 답글 삭제는 31.5% > 24.6%으로 7% p 감소했고, 이야기 무시는 23.2% > 14.6%으로 9% p 감소하였습니다. (학생 때 진행한 거라 저는 지표설정 방법을 몰랐는데요, 데이터 관련은 전부 당시 개발자 오빠가 진행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8할은 함께한 열정 있는 팀원 덕분이에요 ㅠㅠ)
1년 동안 총 54번의 업데이트를 진행하며 지속적으로 앱을 발전시켰습니다. (거의 매주!) 이런 노력으로 안드로이드 iOS 합쳐서 50만 다운로드까지 갈 수 있었어요. 마케팅 비용은 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첫 번째 UX 포트폴리오를 완성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로 외부 활동이나 다른에 지원했고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비전공자가 경력 없이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사이드 프로젝트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국비 지원이나 부트 캠프 이런 것이 많지만 제가 했을 당시에는 체계적인 수업이 없었습니다. 정보도 없어서 직접 물어보고 맨날 검색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그냥 하면 안 됩니다. 대부분 포트폴리오를 보면 론칭까지만 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앱을 한 번도 론칭하지 않은 것보다는 좋습니다. 하지만 앱을 냈으니까 땡, 끝내는 거라면 프로덕트를 했다고 하기엔 부족합니다. 앱을 내는 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eting은 일 년 동안 54번의 업데이트를 했기 때문에 유저 반응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했는지입니다.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 UX를 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합니다. 론칭 후에도 유저의 얘기를 듣고 반응을 살피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앱은 모두가 직장인이 되고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은데요, 학생 때 했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경력 면접 때도 이 서비스에 대해서 면접관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는 영어도 부족하고 디자인 공모전 수상 같은 대단한 이력도 없었습니다. 자격증도 없었습니다. UX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졸업을 늦게 해서 나이도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첫 직장부터 대기업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내가 뽑은 건 아니지만) 회사에서 봤을 때 사이드 프로젝트를 정말로 운영했던 것이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충분히 UX UI 디자이너로 취업할 수 있습니다.
피그마스터
9년 차 프로덕트 디자이너
이력: 삼성, 네카라쿠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2023년 대기업 최종합격 3곳 4년째 포트폴리오 컨설팅,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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