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는 너를 낳기로 결심했어. 아직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선물이 되어 찾아온다면,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글은 너를 만나기 전까지 엄마가 조금씩 공부한 기록들이야.
나는 너에게 어떤 엄마가 될까? 엄마로서 나는 어떤 강점과 관심사를 갖고 있을까? 그 모습을 그려보기 위해서는 엄마의 성격을 공부해야겠지? 성격이라는 것은 말이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기질과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들로 만들어지는 거야. 복잡하다고 생각된다면, 유전과 환경의 조합이라고 생각해도 돼. 기질은 유전적인 특성이 크고, 경험은 후천적이지. 각자의 기질과 경험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엄마들의 육아방식은 정말 다채로운 것이지. 나에게는 없는 모습이 네 친구의 엄마에게 있을 수도 있어. 양육방식은 엄마들의 성격이 양육이라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양육에는 완벽한 정답이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각자의 정답을 찾는 과정은 필요한 것 같아.
성격 = 기질 + 경험
정답을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엄마의 성격을 이해하면 되거든.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갖고 태어난 기질을 먼저 이해하고, 겪어 온 경험들을 들여다보면 돼.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너를 만나기 전에 엄마가 될 내 모습을 예상할 수 있는 거지.
엄마는 왜 성취-지향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아마 타고난 기질이 첫 번째로 영향을 주었겠지. 어릴 적부터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 예쁜 방이 있는 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레고를 조립하거나 혼자 포토샵을 공부해서 나름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고 그 결과물을 보고 있을 때 정말 즐거웠던 것 같아. 지금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언젠간 이루고 싶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업이라고나 할까.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뤄내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지. 이런 기질에 엄마의 경험이 더해져 성취-지향적인 완성체가 되었단다. (웃음)
물에 젖은 솜을 방에만 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아마 더 꿉꿉해지고, 곰팡이가 슬고, 악취가 나고,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질 거야. 엄마는 상처란 물에 젖은 솜 같다고 생각해. 상처 입은 마음은 무겁고 또 무겁지. 하지만 엄마는 그 솜을 방에서 끄집어냈어. 그리고 햇빛에 말려 가볍게 만들었지. 그래서 지금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웃으면서 ‘그땐 그랬지’라며 말할 수도 있어. 상처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아프지는 않으니 상처는 아니지만, 흉터는 남아있으니 흔적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은 용서했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치부를 들춰내야 한단다. 때로는 아주 가까운 사람일수록 남보다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엄마는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주고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가벼운 솜을 건네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싶어. 그러니 부디 무겁지 않게 들어주길 바래. 엄마는 어릴 적에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뭐든지 잘해야 칭찬을 받았어. 못하면 아주 심한 비난을 받았지. 아쉽게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기준은 엄마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어. 엄마는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비난을 받는 것이 더 무서웠어. 그래서 뭐든지 잘하고 싶었지. 잘해서 칭찬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어. 못해서 받는 비난을 피하고 싶었지. 못하면 사람들이 엄마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욕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뭐든지 열심히 했지. 그러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어. 성취를 하면 비난을 받지 않았고, 인정이라는 것이 함께 따라왔지.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지 달리고 달려 갈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마시는 시원한 물 같았다니까.
그래서 뭔가를 계속 이루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 네가 나중에 이 글을 읽었을 때 서운하겠지만, 이런 이유로 엄마는 ‘아이를 낳는 일’이나 ‘육아’가 삶의 우선순위는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엄마는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너를 낳지 않았고, 친구들보다 결혼도 늦게 했지. 가족을 꾸리거나 양육을 하는 것이 우선순위에 들어있지 않았어. 아주 많이 성취-지향적인 사람이지? 너에게 엄마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겠지만, 사실 밖에서 엄마는 아주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어. 아빠에게는 배우자의 역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딸의 역할, 직장에서는 임상심리사로서의 역할,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하지. 엄마의 역할에 충실한 만큼 다른 역할에도 충실하게 살고 싶어. 엄마는 말이야. 네가 성인이 되면 엄마의 품에서 곧바로 떠나보내고 다른 역할들을 계속해 나갈 거야. 엄마는 네가 엄마가 되었을 때에도 역할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이끌어 내주는 것은 엄마에겐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엄마의 입장이고 말이야. 네가 태어나면 지켜봐야겠지? 네가 관계-지향적인 기질을 타고났다면, 엄마의 생각은 강요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야.
이런 내가 엄마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마 너를 모든 방면에서 잘 키워내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를 완벽하게 성취하기 위해 애쓰는 엄마가 될지도 몰라. 그게 아니라면. 사실 가장 상상하기 싫은 엄마의 모습인데 말이지. 네가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성공을 이뤄내도록 부추기는 엄마가 되었을 것 같아. 엄마의 욕심 때문에 너를 들들 볶는 거야. 엄마가 스스로 이런 성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그랬을 거야. 심리학을 배우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지.
돌이켜보면 엄마도 성취나 성공이라는 결과에 매달렸을 뿐, 그 과정은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 사실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야 말로 가장 빨리 성취를 이뤄내는 방법인데 말이야.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강점이 자라나지. 그러니 실패해도 괜찮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면 말이야. 그걸로 충분하단다.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보완할 점이 있으면 보완하면 되는 거지. 잠깐 넘어져도 툴툴 털어내고 또다시 걸어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실패했다고 해서 너라는 존재가 실패한 것이 아니니 말이야.
엄마는 이걸 조금 늦게 알았어. 그래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미워하기도 했지. 그래서 매번 다짐했단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엄마처럼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돕겠다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단다.
엄마가 잘할 수 있을까? 이것도 어쩌면 하나의 목표니까 이뤄내려고 노력해 볼 수 있겠다. 엄마를 위해 그리고 너를 위해 말이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