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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혜 Aug 03. 2023

관계-지향적인 엄마

혹은 아빠


Beck은 인지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우울증의 인지치료 대가이기도 하지. Beck은 우울증의 취약성을 말하며 사람들이 우울해지는 이유를 두 가지로 구분했단다.


성취-지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나 무능력으로 인해 우울해진다.

관계-지향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거절로 인해 우울해진다.


인간이라는 복잡한 유기체를 두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는 것은 한계가 있어. MBTI를 비롯한 성격의 유형이론이 지닌 큰 한계점이기도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이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을 즐겨한단다. 성취와 관계 중 어떤 욕구가 우세한지 판단하는 거지. 심리학을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5단계로 이루어진 Maslow의 욕구 이론을 떠올릴 텐데, 사실 욕구needs라는 것은 말이야.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 ‘원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지. 어떤 사람은 사랑을, 어떤 사람은 인정을, 또 어떤 사람은 안전을 원하지. 욕구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갖게 해. 사람들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그리고 Beck이 말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욕구가 좌절될 때, 감정이 크게 동요한단다. 사람들의 욕구를 알아보면 그 사람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 그리고 되도록 취약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게 되지.




성취-지향적인 사람들의 반대편에는 관계-지향적인 사람들이 있단다. 어떤 것을 이뤄내는 일보다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친밀감을 느끼고, 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이야. 엄마가 관계-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어떤 엄마가 될지 상상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는데 마침 네 아빠가 떠오르지 뭐니.


네 아빠 말이야. 엄청나게 관계-지향적이거든. 엄마는 살 물건이 없으면 쇼핑을 하지 않거든? 필요한 것이 있어야만 가지. 그런데 아빠는 맨날 마트에 가자고 그래. 사야 할 물건이 없는데 왜 마트에 가려 하냐고 물어보니 엄마랑 꽁냥꽁냥거리면서 구경하는 그 시간이 좋다는 거야. 어쩐지 엄마랑 아빠랑 좀 바뀐 거 같지? (웃음) 그래서 네 아빠를 사랑한단다. 아빠는 참 다정하거든.


어떤 사람들은 말이야. 아빠에게 성공을 강요하기도 해. 곁에서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날 때가 많아. 아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그저 귀여운 아이들과 귀여운 동물들과 귀여운 엄마(?)와 함께 즐겁게 살고 싶어 하지. 알아주는 회사에 입사한다든지 정치인이 된다든지 승진을 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아빠에게 중요한 것들이 아니란다. 좋은 아빠로서, 좋은 아들로서, 또 좋은 친구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빠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네가 태어난다면 아빠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거야. 엄마처럼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내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아. 아빠는 역할보다는 너와 아빠 사이의 관계를 생각한다고 할까. 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고, 네가 집에서 편안히 보내길 바라겠지. 간혹 계-속 너랑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거나 귀찮게 할지도 몰라.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네 아빠의 최고 행복이거든. 또 어쩌면 말이야. 네가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무섭게 혼을 내지 못할지도 몰라. 엄마가 안된다고 했던 일을 아빠는 몰래 허락해 줄지도 모르지. 관계-지향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니까 말이야. 그것은 자녀에게도 똑같지. 자녀가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때로는 지나치게 허용해 주거나 너무 밀접하게 아이들과 지내려 하기도 하거든. 그렇게라도 좋은 관계가 계속 지속되길 바라는 거지.


그래서 관계-지향적인 부모들에게 가족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 같아. 가족이란 이름으로 뭐든지 함께 하길 바라지. 하지만 자칫 아이를 자신이 소유한 것처럼 여길 때도 있고, 정서적으로 분리가 잘 안 될 때도 있는 것 같아. 네가 사춘기만 돼도 엄마 아빠보다는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 질걸? 청소년기가 되면 친구를 넘어 이성친구까지 중요한 관계의 범위가 더 넓어지니까 말이야. 그런데 엄마랑 아빠가 맨날 가족끼리 뭘 하자고 해봐. 여기서 갈등이 생기는 거지. 엄마가 너를 20살이 되면 독립시키려고 하는 것과는 다르게 30살이 넘도록 흔히 하는 말로 옆에 끼고 살기를 바랄지도 모르지. 가끔 네 아빠도 태어나지도 않은 딸내미가 어른이 되어 떠날까 봐 미리 걱정할 때가 있었어. 하지만 걱정하지마. 아빠의 영원한 베스트 프렌드는 엄마거든. 엄마도 아빠도 언젠가 네가 너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건 서로이니까 둘이 재미지게 살아보자고 다짐한단다.


엄마가 느끼는 관계-지향적인 사람들은 사랑이 많은 것 같아. 물론 성취-지향적인 사람들도 마음속에 많은 사랑을 지니고 있지만, 관계-지향적인 사람들은 그 사랑을 좀 더 밖으로 표현하는 거지. 상대방이 느낄 수 있도록 말이야. 그들의 멋진 점이랄까.


네가 어떤 성격의 씨앗을 갖고 태어날지 궁금해. 사실 성취와 관계는 모두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이야. 나는 네가 엄마와 아빠의 장점만 쏙쏙 빼서 배웠으면 좋겠지만, 이것도 어쩌면 엄마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네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살아가길 바라면서도 너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갔으면 좋겠어. 전자가 너에게 스스로 멋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후자는 너에게 분명 따뜻함과 사랑을 줄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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