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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an Apr 11. 2023

엄마의 카톡 프로필에는 누구의 사진이 있나요?

카카오톡 프로필은 아이들이 아니라 내 사진

얼마전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총화 참석 여부를 물었다. 임원을 뽑고, 학교의 이념이나 교육 방침 등에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임원이 될 생각도 학교일에 참견할 생각은 1도 없었지만, 2부에 진행하는 각 담임과의 면담 행사가 갑자기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내년에 한국을 떠나 해외로 가게 되면 한국에서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둘러볼 수 없으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아! 한국말로 소통하는게 이렇게 쉽고 여유롭게 느껴지다니!'


 해외에서 살면서 종종 면담이나 공개 수업같은 행사에 참여하곤 했는데,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과 통하는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 교류나, 상황에 맞는 제스쳐나 탄식, 자연스러운 표정은 이곳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꼼꼼하게 준비하신 선생님 말씀을 다 듣고는, 오고 가며 몇 번 마주쳤던 딸아이 같은 반 엄마와 며칠 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한국이나 해외에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주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인생 덕에나는 지난 10년간의 일정을 다시 되풀이해야 한다.


" 이곳에서는 얼마나 살았냐? 그럼 해외 어디서 살았냐? 몇 년을 살았냐? 어쩌다 나가게 되었냐? 아이들은 어디서 태어났냐? ......" 


다른 사람들이 같은 질문 공격을 퍼붓어대면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읊는다. 사실 가끔씩은 이게 너무 피곤해서 파일로 정리해서 만나기 전에 미리 알려줄까도 생각할 정도였다. 특히 술을 동반한 식사자리에서는 질문의 강도와 깊이가 더해지며 대하장편소설급으로 지난 10년을 각색해야만 했다. 


한참을 서로에 대한 관심과 생활에 대해 주고 받던 중에 친구 엄마가 물었다. 자기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통해서 대략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분위기를 보고 파악하고는 하는데 나는 너무 개성이 강하고 특이하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점이 나는 사진만으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건지 이유를 묻자

" 다른 엄마들 카톡 프로필에는 대부분 아이들 사진 뿐인데, 재인 엄마는 다 본인 사진밖에 없어서 자기애가 참 강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약간의 억울함을 토로하듯 대답했다.

"당연하죠. 내 카톡이니깐요. 내 프로필이니까 내 사진을 올려야죠. 아이들은 각자 사생활이 있고, 아이들 또한 본인 카카오톡이 있으니까 아이들 사진은 거기에 올리죠." 


내 대답을 듣은 친구 엄마는 잠시 먼가에 맞은 듯한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 


작년부터 한국에 들어와 몇몇 엄마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공통점이 대부분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나의 것은 사라지고 온통 아이에게 나의 모든 걸 내어준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면 사랑스럽고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기에 케어해주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는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내 나이의 나는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혹 분위기 좋은 카페나 멋진 풍경에 사진이라도 찍어주려 하면 열이면 아홉은 본인 사진을 찍는 거에 어색해하고 민망해하며 본인 사진은 됐다고 손사레를 친다. 결혼 전에는 셀카 장인이던 그들이, 엄마가 된 후로는 아이의 사진을 담고 또 담으며, 내 사진을 담을 공간마저 내어준다. 어떤 엄마는 본인 사진을 언제 마지막으로 찍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한다. 그럴수록 나는 억지로라도 세워서 최대한 이쁨을 담아 찍어주며 말한다. 


" 나중에 이 사진 보면 아마 지금이 제일 젊고 이뻤을 시기라고 생각할거야.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할껄? 

남는 건 사진 뿐이니까 많이 찍어둬. 애기 사진 말고 본인 사진도 찍어놔. 내 인생에 내 사진이 빠지면 서운하잖아." 


나는 오히려 아이를 낳고 나를 더 케어하게 되었다. 육아도 힘들었지만 출산 후 몸은 불어서 예전같지 않고 뼈까지 벌어져 거울 앞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우울함의 강도는 세졌다. 모든게 짜증나고 불안하고 힘들게만 느껴지는 와중에, 신랑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하루 종일 아이 돌보느라 힘들었을 거라며 밤중 수유를 나를 대신해줬고, 아이는 너무 순하고 이쁘기만 했다. 신랑도 아이도 각자 역할을 다하는데 거기에 대고 한탄하고 푸념할 수는 없었다. 


'아, 내가 내 몸과 정신을 제대로 가꾸고 돌보지 않으며, 우리 가족도 돌볼 수가 없겠구나. 신랑도 아이도 각자 자기 역할을 해내는 와중에 내가 누구의 원망도 할 수 없겠다.. 나부터 돌보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그날부터 아이가 낮잠을 잘 시간이나 신랑이 퇴근하고 나면 집에서는 요가나 전설의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를 틈날 때마다 따라하고 밤이면 치안이 안 좋았던 트리니다드 토바고 상황을 감안해 아파트 100평 정도 되는 아파트 로비 주차장을 200바퀴 넘도록 돌면서 살부터 뺐다. 살을 빼고 예전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되고, 어딜 나가든 예전처럼 깔끔하게 꾸미고 다녔다. 누구도 원망하기 싫었다. 그렇게 매일 노력했다. 


그저 순응하고 어쩔수 없다며 체념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소중하고 우리 가족 또한 소중했다. 오히려 난 출산 이후로 자기애가 더 강해지고 건강해졌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엄마, 자존감 높은 엄마가 내뿜는 건강한 에너지의 힘은 크다고 생각한다. 딸은 엄마를 통해, 아들은 아빠를 통해 앞으로 살아갈 롤모델을 배워간다고 한다. 나는 내 딸이 나중에 자라서 부모가 되도 본인의 삶을 우선으로 돌보고 가꾸며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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