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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an Jul 26. 2022

안녕, 캐리비안...

어느덧 2년 하고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가 바라던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곳, 

트리니다드 토바고. 

휴양지를 꿈꿨지만 불안한 치안과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총기 사고 소식, 동양인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탓에 밖에 나가는 순간 바로 눈에 띄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운 까닭에 내가 거리를 활보한 경험은 전무후무했다. 게다가 그곳의 태양은 뜨겁다 못해 후끈거릴 정도의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워 땡볕에 5분만 있어도 머리가 어질 거릴 정도였다. 유일한 산책은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입구까지 걷는 것이 전부였으나, 이마저도 사실 주변에 활보하는 구걸하는 사람들이나 마약에 취해있는 부랑자들을 피하느라 매번 내 가슴은 콩닥콩닥 불안했고, 저들이 나에게 와서 해코지라도 할까 싶은 마음에 항상 걸음을 빠르게 재촉하곤 했다. 


매일 밤, 콘도 야외 수영장 벤치에 걸터앉아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빛으로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를 보며 "자기야 우리는 언제쯤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라며 섬을 탈출하고픈 빠삐용 부부처럼 넔두리를 늘어놓으며 수많은 밤은 서로 위로하고 했던 우리였다. 


살다 보니 수많은 현자들이 수없이 말했던 인생의 지혜를 내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이 날이 내겐 그런 날이었다. 

<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영원한 건 없다. >

그렇게 언제나 우리가 떠날 수 있을까 싶던 날이 살다 보니 찾아오긴 오더라. 


근무지 이동을 앞두고 인생을 통틀어 고민하다 꿈꾸던 유럽 4개 도시를 지원했지만, 인사팀으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실망이었다. 참 세상일이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몇 번의 이동 끝에 내려놓게 된 나이다. 결국 마음에 안 드는 곳에 갈 바에야 여기 남아서 6개월 더 지내야겠다고 밤새 상의한 끝에 인사팀에 메일을 보내고는 잠들었는데 꿈결에 누군가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자기야! 자기야! 좀 일어나 봐. 응?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는데 핀란드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어때? 응? 좋아? 지금 빨리 결정 내려서 보고해야 한대. "
"으응?? 머? (아... 비몽사몽 잘 들리지는 않지만 핀란드는 잘 들린다) 아 몰라 마음대로 해"
"응, 그럼 내가 간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깨어보니 잠결에 들린 '핀란드'는 진짜였고 우리는 그렇게 핀란드로 떠나게 되었다. 

떠나기 전날, 그간 오고 가며 정든 내 친구들이 마지막 배웅을 하고자 우리 집에 왔는데 그날따라 태양에 비친 화려한 꽃이며 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를 잊지 말라는 듯이 더할 나위 없이 빛나고 또 빛났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신생아부터 3살까지 아이들까지 손에 손 잡고 찾아와 가는 우리 식구들 못내 아쉬워하는데 정말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이곳이 그날처럼 세상 아쉬움으로 남았던 적은 없었다. 그날 찾아온 친구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터키, 호주, 캐나다, 콜롬비아, 포르투갈, 브라질, 아랍에미레이츠에 온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불편하던 그 친구들이 왜 떠날 시기가 되니 한국 사람보다 더 편하고 한없이 다정하게 느껴지는지 내가 지난 2년 6개월 동안 이뤄낸 안락함을 사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대다수의 친구들이 따뜻한 기후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내가 핀란드로 옮긴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축하보다는 저마다 걱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떠나는 날,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즐기는 playdate @vivian


그렇다. 대부분의 서양사람들은 태양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안다. 선크림을 바르고 얼굴이 탈까 싶어 그늘을 찾아다니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기미, 주근깨 따위 걱정 할바에 타오르는 열기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듯 보였다. 그런 sun lover들에게 나의 핀란드행은 축하보다는 염려와 걱정을 먼저 전했다. 


"비비안, 너 이제 어쩌니? 거기 겨울에는 해가 3시부터 지는 거 알아? "
"비비안, 핀란드 오우, 춥겠다. 안 갈 수는 없는 거야? "
"거기서 대체 얼마 동안 지내야 하는 거야? 1년만 살다 나올 수도 있는 거야? "



'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다들. 안 그래도 갑자기 여기가 좋아져서 죽겠는데 핀란드라니, 아! 정말 가기 싫다. 가기 싫어. '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떠나기 전날, 태양과 화려한 꽃이 어우러진 아파트 정원에서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해맑게 뛰어놀고 있다. 


참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내 손에 쥐어있을 때는 당연시 여기며 매번 다른 것을 찾아다니다 손 밖으로 내보내려 할 때가 되어서야 잡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정말 매일매일 떠나고 싶었던 그저 할 것 없이 따분하고 위험하고 갈 곳 없는 이곳에 갑자기 의미 부여를 하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니 이곳은 나에게 많은 선물을 준 곳이다. 3개월 연애 끝에 결혼한 신랑과 진짜 가족이 될 수 있게 해 주었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출생 국가, 재인이와 원준이를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첫 해외 생활인 탓에 처음에는 외국 친구들과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느껴지는 차이와 불편함을 극복하게 해 준 앞으로 살아갈 큰 자산을 선물해준 곳이다. 


이날 이후로 나에게는 나름 인생의 철학이 생겼다. 


<내가 있는 이곳이, 살고 있는 이곳이 지금 나에게는 최고의 장소이다> 

안녕! 트리니다드 토바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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