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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Dec 24. 2024

우리 이제 길을 잃으러 가요

혜리 님께 보내는 세 번째 교환일기

평이하고 익숙한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갑자기 낯설게 느껴져요. 그리고 생각하죠. 말들을 너무 적당히 알고 쓰며 살아왔다고요. 예전에 들려드린 적 있었던 시가 그런 우리를 살짝 꼬집어서 눈을 맑게 한 다음 꼭 들려주고 싶었던 말로 멋지게 마무리하죠. 기억나시나요?


「차가 막힌다고 함은」


김연신


차가 막힌다고 함은, 도로에 차가 많아서, 아니다. 도로의 수용능력보다 차의 대수가 많아서, 아니다. 도로의 표면적보다 차의 표면적이 많아서, 이제는 분명하다. 일정한 구간에서 차들의 표면적의 합이 도로의 표면적의 합에 가까이 도달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차들의 표면적의 합과 차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필수 여유 공간의 합이 도로의 표면적의 합을 초과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혜리 님의 두 번째 편지가 온지도 모른 채, 단순하게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었다가 우편함에 편지를 넣은 채로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그게 너무 미안해져 DM을 보냈더니 거기 혜리님은 이렇게 답을 줬어요.


"오히려 이제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길을 조금 잃었거든요."


길을 잃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난 길을 잃은 게 언제 일이지?'란 질문이 떠올랐어요. 생각이 잘 안나더라고요. 안그래도 길 잃을 일이 점점 사라지죠. 모르는 동네에 가도 어플만 열면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알려주고 지도 위에 가야 할 길을 표시해주니까요. 자랑 조금 보태면 길치는 아니라서 길을 잘 찾는 편이기도 해요.


그러다 사전에 '길'이란 단어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죠. 아마 혜리 님이 '우연찮다'를 검색하셨던 그 이미지가 제게 어떤 암시를 준 것인지도 몰라요.

한참 저 단어의 정의를 읽어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늘 길 위에서 길을 잃어요. 편안한 카페에 앉아있거나 내 방 침대 위에 누워서는 길을 잃지 않아요. 길을 나서지 않으면 아예 길을 잃을 일도 없죠.


말장난 같지만 길을 잃는다는 건 길 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 우리는 실제로 길을 잃어버릴 방법이 없어요. 조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길은 잃어버리지 않아요. 목적지를 잃어버릴 뿐이죠. 언제나 길 위에 있는 걸요.





생각이 여기 가서 닿자 제 앞에 오랫동안 닫혀있던 문 하나가 덜컹 하더니 열리는 기분이 들었어요. 다른 글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전 하얀 백지나 하얀 모니터를 마주하고 있으면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한참 우물쭈물거리고 있거든요. '왜 이러지? 왜 머릿속이 하얘지지?' 그런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이제 조금 알겠어요. 목적지가 없어서에요. 그저 '글을 쓰고 싶다.' '글이 잘 됐으면 좋겠다.' '글로 유명해지고 싶다.' '글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만 있지, 그 글 자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적지가 없는 거죠.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목적지를 글의 목적지로 삼을 수는 없는 거라서 글이 자꾸 길을 잃었어요.


이 글을 쓸 수 있는 건 이 글에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어서예요. 혜리 님이란 사람이요. 이 글이 혜리 님에게 작은 유자차 한 잔만큼의 따뜻함이라도 되기를 목적하고 있고, 기지개를 켠 다음 일어나 멋진 고양이 카뮈를 끌어안을 수 있는 움직임이 되기를 목적하고 있으니까 이 글은 길을 잃지 않아요. 맞아요. 이런 거였어요.




그리고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봐요. 길은 많은 순간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놓고 삶의 뒤편으로 물러나 앉아요.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목적지로 삼고 길에 나설 때면 우리는 하염없이 길 위에 있고만 싶어져요. 나를 목적지로 삼는 길이란 건 어쩌면 길을 잃는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아요.


산허리를 도는 오솔길을 걸으며, 발 아래서 무너지는 낙엽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 걸음씩 걷다보면 길은 길을 잃으러 온 우리를 환영하듯 안아줘요. 길은 언제고 우리를 받아줄 뿐 비웃지도 다그치지도 않아요. 길을 빨리 지나 어디론가에 닿고 싶은 건 우리의 욕심 탓이지 길이 우리를 밀고 재촉하기 때문이 아니죠.


그런 생각도 해봤죠. 혜리 님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면, 혜리 님을 안은 채 같이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은 그 순간 나름 행복해하고 있지 않을까? 속으로는 혜리 님이 자신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 왠지 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졌어요.




혜리 님이 어떤 마음으로 '길을 잃었다'라고 말했는지 다 안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섣부르게 도닥이고 달래줄 엄두도 나지 않아요. 혜리 님의 한숨과 저의 한숨은 환율이 달라서 쉽게 맞바꿀 수도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제가 혜리 님께 이 편지를 쓰면서 오랫동안 닫혀있던 마음의 문 하나를 열어낸 것처럼, 혜리 님이 길을 잃은 어느 한 날 제게 보내는 편지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길가의 벤치이기를 소원해요. 땀을 식히고 숨을 가다듬고 다시 길을 나설 잠깐의 쉼 같은 것이길요. 물론 저를 향한 그 편지도 혜리 님이 오래 쉬었다 가길 바라겠으나, 혜리 님에게는 혜리 님의 시간표가 있으니 오래 붙잡아 둘 수는 없겠죠. 그 친구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지네요. 거기서 모든 길은 끝나고 모든 길은 다시 시작되죠. 아무리 길을 잃었다 싶어도 바다에서 다시 방향을 잡아 시작하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길을 잃었다 싶으면, 길에서 헤매고 있다 싶으면, 혜리 님의 맑음과 화사함으로 잠깐동안 길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길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고요. 그 '길을 잃는 길' 끝에는 분명 더 너그러워지고 더 따뜻해진 혜리 님이 웃으면서 여기의 혜리 님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날이 춥다네요. 감기조심하고요. 매일매일 한 모금의 유자차처럼 더 따뜻하고 행복해지시기를.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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