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산책길에 스며드는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고,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은 책장을 넘기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일상적으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더불어, 나는 오늘 라자스탄의 핑크 시티(Pink City), 자이푸르(Jaipur)라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라지스탄의 자이푸르는 1727년 마하라자 사와이 자이 싱 2세에 의해 건설된 인도 최초의 계획 도시다. 거리 전체가 테라코타(주황색이 약간 섞인 듯한 진흙빛) 색으로 칠해져 분홍색 도시, 핑크 시티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얻었다.
이 도시에는 힌두 양식과 이슬람 무굴 양식의 거대한 요새화된 궁전의 앰버 요새(Amer Fort), 왕가의 궁전인 시티 팰리스(City Palace), 그리고 바람이 통하는 섬세한 창문들의 궁전 하와 마할(Hawa Mahal)까지, 이 도시는 라지푸트 왕조의 화려했던 역사를 뽐낸다.
하지만 나에게는 웅장한 유적이 아닌, 그 그림자 속에 깃든 현지 보통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하와 마할 부근의 번잡한 시장(바자르)을 헤집고 다니다가 만난 한 노인 사진사의 모습은 흑백사진처럼 강렬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시간을 담는 낡은 상자, 아날로그의 영혼 -
내가 멈춰 선 곳은 번잡한 거리에서 살짝 비껴난 골목이었다. 그곳, 낡은 벤치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점퍼와 샌들 차림의 그의 얼굴에는 흰 수염만큼이나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은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앞에 놓인 장비는 더욱 비범했다. 투박한 나무 상자처럼 만들어져 나무 삼각대에 위태롭게 올려진 오래된 카메라였다. 마치 이동식 암실이나 작은 관측 기구처럼 보이는 이 장비는, 플라스틱과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홀로 아날로그 시대의 유산처럼 서 있었다. 카메라는 한쪽 면이 열려 있었고, 검은 천이 덮여 있어 이 낡은 상자가 필름 없이 현장에서 바로 인화하는 카메라 옵스큐라 방식의 즉석 사진 장비임을 짐작하게 했다.
사진사는 거친 벽과 검은 천을 배경 삼아 자이푸르 사람들의 초상을 시공간에 담고 있었다. 카메라의 낡은 질감과 노인의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그들 뒤의 거친 벽면은 완벽한 흑백사진의 구도였다. 나는 찰나의 순간, 낡고 커다란 상자 앞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사라져가는 예술을 묵묵히 지키는 마지막 장인처럼 보였다.
핑크 시티에서 흑백의 휴머니티를 찾다 -
자이푸르의 명소들을 뒤로하고, 나는 화려한 전통 복장과 터번을 쓴 사람들이 활보하는 재래시장(바자르)의 골목을 더 오래 걸었다. 그곳에는 라자스탄 사람들의 전통적인 휴머니티가 생생하게 숨 쉬고 있었다.
여행은 결국 '책장을 넘기는 것'이다. 화려한 궁전의 역사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한 조각을 읽어내는 것이다.
인도 음식에 지쳐있을 즈음에, 자이푸르에서 만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아자오 카페(AJAO CAFE)에서 만난 음식은 최고였다. 전 세계적인 여행자 가이드 북에도 잘 알려진 자이푸르 라씨(Lassi)의 달콤한 기억들까지 모두 이 책의 소중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이번 가을에 할 나의 인도 여행, 그 올드 카메라의 사진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의 낡은 카메라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기를, 그리고 또 다른 시간의 기록을 흑백의 사진 속에 담고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