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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빛 May 18. 2021

나와 당신의 등대지기 #1

- 제10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연필’ 입선작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 그것은 등에 관한 이야기다.

 

#1. 동물의 세계

나는 동물을 좋아했다. 어렸을 적부터 즐겨보던 프로그램 중 하나는 ‘동물의 세계’였다. 밀림의 왕 사자가 가젤이나 임팔라 같은 초식동물을 쫓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약육강식, 그 장면은 ‘동물의 세계’ 자체를 담고 있다. 모두가 빛나는 송곳니로 전리품을 차지하게 된 사자를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것은 쫓기는 초식동물의 ‘등’이었다.

등. 다른 부위에 비해 노출 부위가 넓고 편평한 그곳은 상대방의 중심을 잃게 만들기 위한 최고의 약점이다. 팔팔한 임팔라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등을 노려야 한다. 등을 물려 몸통이 휘청하는 순간, 목 위로 펄떡이는 급소가 보인다. 혈류가 충분한 목동맥이 뚫리고, 허공에는 붉은 분수의 포물선이 그려진다. 사자는 여유롭게 뻣뻣해지는 녀석을 지켜본다. 오늘은 주린 배를 채우는 날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런 복잡한 사정을 생각하기 훨씬 이전에 동물의 세계를 보았다. 그렇지만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등은 그저 약점이다. 나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가장 넓은 부위를 차지하는 의문스러운 나의 약점. 어린 소녀에게 등은 감춰야 하는 곳이었다. 등을 보호해야 한다. 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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