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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Dec 09. 2020

Contemporary Art & Design

현대미술의 시선은 어디에서 오는가



제목을 Modern Art가 아닌 Contemporary Art라고 정한 이유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현대미술에 대한 시각적인 이슈에 대해 다뤄보고자 함이다. 현재 현대미술이라고 한다면 반감을 품는 사람이 많고 심지어 조롱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말은 현대미술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쓰이고, ‘본인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현대미술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이러한 무지한 예술적 시선을 비판해보고자 한다.


제품 디자인 전공 수업을 들으면 종종 특정 학생에게 "너 예술 쪽으로 갈꺼야? 예술할 거야?"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예술과 디자인은 출발점부터 갈림길로 나뉜 분야인가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곤 했다. 제품은 경제적, 물질적 측면이 중요하고 심미성, 실용성, 편리성으로 그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예술은 가치관, 감각, 정체성, 의미에 의해 가치가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이라고 해서 보편성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예술이라 해서 개인적, 독자성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중간중간 겹치는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다수의 사람을 무조건 비판하는 글이 아니며, 가령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에 비판하는 평을 달며 표현의 자유를 펼치는 사람이 아닌, 조롱하고 그 의미를 거부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다. 현대 미술에 가해지는 시선에 대한 나의 의견과 함께, 디자인을 하며 느낀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 공통점을 서술해보고자 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현대미술 작품은 대부분 추상화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누가 봐도 ‘잘 그린’ 극사실주의 작품은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적으로 ‘단순해 보이는’ 작품은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비판해버리겠다는 부정적 의견 뒤에 숨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깊고 옅음과 잘 그린, 단순함을 시각적으로만 판단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은 외적으로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본질을 보아야 한다. 어쩌면 본질은 현대 추상화 작품이 ‘더 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포토존 중심의 전시회가 많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가벼운 전시회들이 대중의 시선을 바꾸는 데에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위 인스타 감성의 전시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의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진을 전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전시회는 무겁고 엄숙해야 한다’는 꽉 막힌 사고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전시회는 전시하는 작가의 생애를 엿보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전시회의 특성은 온통 색감과 텍스쳐를 화려하게 도배해놓고 시각 혼란을 주기 급급한 것 같다고 생각했으며, 하나하나 지나칠 때마다 들리는 사진 셔터 소리는 정신이 아득하게 만들었다. 나는 리플렛을 읽으며, 혹은 음성 안내를 들으며 작품 하나하나 공감하고 감상하며 작품을 이해하는 편이다. 작가의 생애, 생각과 의미, 삶을 살며 지향하고자 하는 점을 중점적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어느 한 전시회에서 작품 설명을 보지도 않은 채 이건 별로 이건 예쁘네 하며 단순 평가하러 전시회를 온 것 같은 사람을 본 적 있다. 마치 상품을 고르듯 빠르게 지나가며 심사하는 듯한 행위는 작가에 대한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상승할 수 있는 만년필, 한정판을 제외한) 제품은 시간이 갈수록 기능이 떨어지고 뒤처져간다고 하지만 예술, 현대미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발휘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작품이 작가의 삶과 생애와 연관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 큰 호응을 얻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사소한 주제와 개인적인 시선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그의 작품은 꼭 나와 시선을 맞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시의 쓸쓸함, 솔직함을 표현했고 이러한 부분에서 대중들에게 공감을 받았다. 이처럼 작품에는 작가와 작가의 시선이 포함되어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이 느끼는 감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또한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도 작품 안에는 작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현대미술 작품의 가치는 상승한다고 생각한다. 


제품과 작품은 아름다워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 현재까지 과제로 남아있는 기분이 든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생각해보았을 주제일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서 빠질 수 없는 뒤샹의 ‘샘’은 예술은 아름다워야 하는 가에 대한 선입견을 깨부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술은 아름다워야 하는가? 의 대답으로 뒤샹의 샘을 예로 들며 정답은 엑스.”라고 딱 집어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개인이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기도 하다. 현대미술의 예는 아니지만 빅터 파파넥의 빈민국 사람들을 위한 물통을 보면 ‘예쁘’진 않지만 아름답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미적으로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고, 아름답지 않아도 작품일 수 있다"가 나의 의견이다.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흔히 ‘예쁘다’라는 단어로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디자인의 이유를 ‘예뻐서, 예쁘게’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을 종종 뵌 적이 있다. 이는 '예쁘다'는 말은 매우 주관적이며, 주장을 잘 담아낼 수 없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조형성, 예술성을 ‘예쁘다’는 관점에서 표현하기엔 이 단어는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든다. 

때문에 현대미술은 예쁘다, 예쁘지 않다고 표현해선 안 되며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대미술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각적 요소가 아닌 작가의 의도와 공감적 요소, 그 안에 숨겨진 어떠한 것에 초점을 맞춰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제품과 달리 대중성에 시선을 맞추지 않기 때문에 잘 팔리는 그림이라 해서 좋은 작품은 아니고 못 팔린 작품이 안 좋은 작품이 아니다. 다시 말해 모든 예술작품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볼 때, 무조건적인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2020.12.08

현대미술에 대한 이슈를 다뤄본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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