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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니Tini Dec 02. 2022

미국 어학연수 일기 1

EP1. 나쵸와 도리토스에게 미안한 일이 있다.


EP1. 나쵸와 도리토스에게 미안한 일이 있다.

 

브루클린 다리

 어학연수를 이유로 미국에 온 지 어느덧 7개월. 5개월의 캘리포니아 생활을 지나 지금은 뉴욕주에 머물고 있다. 두 주의 가장 큰 다른 점은 단연코 날씨이다.

L.A의 하늘

 뉴욕을 너무 사랑하는지라 지역을 이동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온화하고 화창한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그리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예고 없이 찾아오는 비, 하루 이틀 차이로 10도 이내를 왔다 갔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전혀 반가운 손님은 아니기 때문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아는 지인들은 그러게 캘리포니아를 겨울에 가지 그랬냐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나는 시린 손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행복한 생활을 하는 중이다.



미국 어학연수 일기


뉴욕 상공

 저녁 11시에 샌디에이고 공항에서 이륙해 셀 수 없는 수많은 별의 반짝임을 멍하니 보다 단 하나의 해가 떠오를 때쯤 JFK 공항에 착륙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듯 정말 아름다운 비행이었다.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는 국내선이라 그저 싼 가격만을 고려한 선택이었는데 창가석 이라니 운이 꽤나 좋았다.


 비록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창문에 머리를 기대 하루의 끝과 시작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인천공항을 거쳐 샌디에이고로 그리고 뉴욕까지 함께 온 은색의 위탁수하물을 찾고 나오니 뉴욕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New york’, 이곳에서 5개월을 지내게 된다니, 스치는 공기마저 생경한 느낌이었다.

 

 조금 웃긴 비유일 수 있겠지만 도시 이름에 ‘NEW’를 가져다 쓰다니, 모든 걸 새로이 시작하기 충분한 도시일 것 같기도 하다. 샌디에이고에 있을 때는 ‘ego’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했다. 여기서 자아를 찾으려나 싶었고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해야 되나 싶은 중이다.


 해외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항상 가고 싶은 나라들을 메모장에 적어두곤 했는데 그중 미국은 여행 고려 대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유는 정말 모르겠지만 아마도 약간의 무서움과 물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꿈꿀 생각조차 못해 본 것 같다. 꾸지 않은 꿈도 이루어진다고 환율이 1500원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뉴욕에 도착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타임스퀘어, 주야장천 노래로만 들어왔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프랑스와 미국의 역사로만 알았던 자유의 여신상,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천정부지로 끝을 모르고 치솟는 물가, 뉴욕이다.


 오래된 대학교를 인수해서 만들었다는 캠퍼스는 지도가 필요할 정도로 꽤나 컸다. 4개의 기숙사 빌딩, 신호등을 건너야 나오는 스포츠센터, 카페테리아와 사무실 건물, 강연 홀 등 넓고 다양한 시설을 자랑했다.


 캠퍼스 메인센터에 도착하여 20달러의 꽤나 비싼 자가 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어디에 둔 지 몰라서 한참을 찾은 비자 서류를 제출하고 학생 카드를 만들었다. 이름을 바꿔야 되나 아니면 미국식 이름을 만들어야 되나 잠깐 고민했다. 매 과정마다 일을 처리해주는 직원이 달랐는데 받침이 어려운 지 제대로 이름을 발음할 수 있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등판 왼쪽 하단에 학교 로고가 적힌 분홍색 티를 입고 안경 낀 직원의 안내에 따라 5개월 동안 머물게 될 방에 도착했다. 캐리어가 두 개라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는데 살면서 문이 달린 엘리베이터는 처음 타보았다.


 검은색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망처럼 생긴 금색 테의 문이 하나 더 달려있었다. 100년 전 건물이라 그런가 너무나 진귀하여 영상을 찍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동생에게서 혹시 감옥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답변이 날아왔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는 이층 침대 두 개, 옷장 두 개, 문을 열 수 있는 옷장 두 개, 책상과 의자 등 4명이 살게 될 방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좁지는 않지만 마냥 넓지도 않은 방에 4명이라니 걱정부터 차올랐다.


 샌디에이고에서 5개월 지낸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룸메이트와 잘 지내는 방법은 룸메이트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모든 룸메이트들에게 방은 쉬는 공간이고 자는 공간이고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짐을 내려두고 둘러보니 이층 침대 중 한 침대 일층은 이미 한 명이 쓰는 중이라 일층 침대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었다. 자연스레 일층으로 다가가 짐을 풀려다가 각자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굉장히 긴 이름들이었고 왜인지 내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I want to use under bed.'

'Oh, maybe you can use it.'


 그것쯤은 문제가 아니라는 듯 순식간에 종이를 바꿔 붙인 직원이 내 짐을 1층으로 몰아두곤 잘 지내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당황스럽고 고맙고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Thank you, have a good one.'

 

나쵸와 도리스

 칠레에서 온 나쵸와 온두라스에서 온 도리토스에게 미안한 일이 하나 있다. 두 룸메이트들은 발바닥 지압에 좋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장과 가까운 2층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때 바꿔 붙인 이름이 누군지 몰라 미안한 일은 하나인데 미안한 사람을 둘이다. 1층을 쓰고 싶은 게으른 티니를 이해하기 바라며 5개월의 이층 침대의 생활이 아늑하기를 바라본다.


 참고로 나쵸와 도리토스는 나를 티니라고 부른다. 그리고 2달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서로를 'Mama'라고 부르고 있다. 서로를 너무나 챙기는 사이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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