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탁구를 처음 접한 건 군대에서였다. 군대 축구보다 더 재미있는 군대 탁구이야기.
대학교를 1년 마치고 난 뒤 2002년 6월, 히딩크 사단의 월드컵이 한창이던 그때 포르투갈 VS 대한민국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시내에 한 공원에서 소리 나지 않는 전광판을 보면서 목이 쉬어라 응원했다.
경기가 끝난 후 시내에는 자동차 경적소리, 밀가루 투척, 맥주파티로 하루 온종일 시끄러웠다. 그리고 다음 경기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응원의 피가 끓어올랐다. 붉은 악마 티셔츠도 어렵게 구했다. 하지만 다음 경기는 너무나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운명의 장난인가. 입영 날이었다.
"나도 군대 가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들어간 군대가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월드컵 기간 중 306 보충대에서 훈련을 했었는데 불행 중 다행인지 하늘의 뜻인지 훈련소에 각목으로 만든 선반 위에 작은 TV 하나로 나머지 월드컵 전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골을 넣었을 때는 남자끼리 껴안고 뛰다가 철모가 떨어져 머리가 깨질 뻔도 했었다. 국민도 그렇듯 군인도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4위를 하고 난 후 브라질 VS 독일 경기도 볼 수 있었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누구나 쓰는 눈물의 편지를 부모님께도 써보고 적응될 때쯤. 훈련소 훈련기간이 끝나갔다. 그때쯤 어두운 모자를 쓰고 군인 2명이 내무실로 들어왔다. 갑자기 질문을 날렸다. "부모님 건강한 사람?", "현재 병력 없는 사람?", "아픈 곳 없는 사람?" , "손 만들어라."
몇 가지 질문이 더 있었는데 나는 착실히 모두 손을 들었다. 딱히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그중 3명이 뽑혀 소문으로만 들었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와수리에 있는 부대. 사단 마크에 해골이 있는 3사단 백골부대로 끌려갔다.
그 3명 중 한 명이 나였다. 모르는 비포장길로 한없이 들어가는 거 같았다.처음으로 실미도가 생각났었다.
최전방이라서 그런지 지내다 보니 먹을 부식도 넉넉하게 매일 나오고 물품 지원도 부족함은 없었다. 집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불안한 느낌 말고는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나는 북한 군인과 북한 사람을 가까이서 봤다. 북한군인이 경계근무를 서는 모습, 북한 주민이 벼를 수확해서 트랙터에 싣고 가는 모습 등 북한과 그만큼 그곳과 가까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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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만남
--> 우리 부대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창고가 있다. 먼지가 가득하고 어두컴컴한 곳. 그곳에 낡은 탁구대가 하나 있었다. 그것이 탁구와 첫 번째 만남이었다. 그것도 일병까지는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군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없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기기로 했다.
군대에서 처음 탁구를 접했다.
군에서 60mm 박격포를 담당했었는데 박격포 넣어두는 창고가 탁구장 안에 조그만 공간이었다. 그래서 포반 훈련을 하고 정비를 하려면 탁구장으로 들고 들어와야 했고 정비를 할 때는 대부분 탁구대 위에 포를 올려놓았다. 그래서 우리가 즐겼던 탁구대는 많이 파였었고 파인 자국이 곰보빵 곰보 같았다. 하지만 탁구를 즐기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승부만 나면 즐거웠기 때문이다.
▶ 또 다른 전쟁
--> 훈련 복귀 후 짧은 휴식시간에 피 튀기는 또 다른 전쟁을 했었다. 기본기, 자세, 정상적인 서브 이런 것은 필요 없었다. 반칙 서브가 난무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방 테이블에 넣기만 하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때는 월급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냉동만두가 걸려있어서 돈도 아끼고 얻어먹기 위해서 전투적으로 게임을 했다. 승부가 불타오른 상태에서 냉동만두까지 걸려있었다. 냉동만두. 이건 그냥 전쟁이다. 돌격!!
마음은 국가대표다.
부대 내 px(음식 파는 곳)에서 탁구공도 팔았다. 그 오렌지색 탁구공으로 맛스타(맛이 나는 음료수), 만두, 냉동식품, 스낵 등등 수많은 내기를 했었다. 그때는 그것이 뭐가 그리 맛있는지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아직 냉동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종종 먹는다.
그렇게 먹어도 배가 고파서 근무 후 새벽에 일명 "봉지 라면"을 먹는 것은 기본이었다. 라면봉지에 뜨거운 물을 그대로 부어먹는 라면. 꼬들꼬들한 면에 약간 싱거운 국물 맛이긴 했다. 하지만 확실히 끓인 라면보다 맛있었다. 그때는.
▶ 뉴 라켓
--> 어느 날 대대장님이 웬일인지 새 라켓 2개를 사주셨다. 흥분의 도가니였다. 기존 라켓은 고대 유물같이 낡았었는데 대대장이 탁구 라켓을 사주 시다니. 새 라켓으로 군 생활 나머지 1년을 즐겁게 보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 사용했던 탁구공은 사회에서 동호인 대회에 쓰는 탁구공이 아닌 싼 연습공이었고, 대대장님이 사주셨던 라켓은 2개 2만 원짜리 완전 싸구려 라켓이었다. 이럴 땐 모르는 게 약이다. 그냥 누군가 탁구에 관심 있는 것 자체가 좋았고 그래도 서로 차지하려고 했던 새 라켓이었다. 그 시절의 탁구 분위기는 국제탁구 대회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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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목표
--> 하나의 목표는 있었다. "부대 내에서 제일 잘 치는 사람을 이기자."
부대 내에는 한정된 군인들만 생활하는지라 만나는 사람만 2년여 동안 만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제일 잘하는 사람과 계속 도전해서 게임하다 보면 언젠가는 한 번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선임병만 만나면 탁구 한 판을 쳤었다.
실력으로만 보면 사설 탁구장의 회원들 중 하수 중에서도 하수이지만 부대에서 만큼은 탁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게임을 할 때마다 조금씩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군대 최고 고수인 선임을 한 번만 이기면 되는 목표였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라 생각했다. 훈련 갔다 온 후 하늘의 반이 노을로 물들 때쯤 또 결전이 시작됐다.
전역하기 전에 승리하는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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