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대가 좋았다. 물론 탁구를 만나게 해 준 곳이기도 하지만 내가 조금은 평범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곳이었다. 그 평범하지 않은 느낌이 사는데 어떤 영향을 끼치고 도움이 될지는 그때는 나도 몰랐다.
전방 부대에 가서도 지낼만했다. 내무반 생활에 불합리한 것은 있었지만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는 기술로 나름 견딜만했다. 유명한 부대라서 걱정했는데 역시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다. 부대 특성상 38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지키다 보니 위험 가능성은 높았지만 반면에 부식 같은 먹을거리는 풍족하게 나오는 편이었다.
나는 키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마른 체형이어서 사회에서부터 다이어트처럼 살을 찌워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야간근무 후 라면이나 부식을 안 먹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몸은 불었다. 그런데 한곳에 집중되었다. 배만 불었다.
신체검사인지 옷을 벗을 기회가 있었는데 배만 나온 나를 본 간부가 항아리배라고 불렀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나는 전체적으로 골고루 찔 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이 또 다른 사건의 발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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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부대 생활하면서 1년 동안 고민한 것이 있었다. "편입 VS 전과"였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던 터였다. 그런데 실천하지 못하고 이 고민만 1년 동안 지속되었다. 고민하는 사이 군생활 반이 지난 것이다. 1년 동안 고민에 대한 것을 수백 번 묻고 다녔던 결과가 무엇이었을까?
"그냥 운동이나 하자."
이것이 1년 동안 고민한 결과다. 처음에는 허무했다. 해볼 자신이 없었는지 아니면 의미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 같았다.
아무튼 1년 되던 때 막 상병을 달았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다. 대신 매일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탁구대가 놓여있던 체육관 구석에 역기와 덤벨 등이 있었는데 매일 운동을 하러 갔다. 운동시간이 없으면 화장실에서 푸쉬업이라도 했었다. 목표는 있었다. 우선 뽈록 나온 항아리배의 뱃살을 빼는 것.
마침 부대 내에 외국서적 중에 책 제목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ABS 프로그램" 정도만 기억난다. 책 한 권이 모두 복근 관련 글이었는데 꽤 두꺼웠다. 그것이 다 읽고 본격적으로 복근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이다. 3개월 만에 뱃살이 다 빠지고 "왕" 자를 만들었다. 그때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꾸준한 것,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처음에 체육관에 운동하던 사람은 많았다. 북적거렸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니 딱 3명만 꾸준히 하고 있었다. 원래 몸 좋은 사람, 몸은 변화 없는데 항상 운동하러 오는 사람, 그리고 나.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내무반에 몸이 엄청 좋은 선임이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엄청나게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는 걸 알았다. 모든 분야에 실력자들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존경하게 되었다. 아직도 탁구 한다고 하면 무시하는 듯 말하는 사람이 있다. 웃으며 넘기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면 군대에 다시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스포츠뿐 아니라 그 어떤 분야의 실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내 인생의 작지만 하나의 성공을 맛보았다. 그 좋은 기분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뭐라도 하기 시작했다.
아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다.
탁구도 영어도 독서도 장기도 자격증공부도 그중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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