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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슈슈 Oct 08. 2024

괜찮다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네.

만성신부전, 투석환자 가족 이야기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시인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고향에 가면 엄마를 언제든 볼 수 있지만, 때마다 걸리는 아이들의 자잘한 질병, 일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1년에 몇 번 뵙질 못한다. 한편으로는 네 식구를 끌고 친정에 가면 아무리 딸네 가족이지만 쇠약한 몸으로 손님을 치르게 해 드리는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무겁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우리 집 가풍에 따라 우리 가족은 별일 없으면 연락이 잦지 않고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내가 맘먹고 엄마에게 "이번 주에 내려갈게!"라고 하면 "바쁜데~뭣하러!"로 거절도 에둘러 여러 번이다. 그래서 친정집에 갈 때는 삼고초려가 필요하다. 부모님께 날짜와 목적을 설명 후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출발한다.


'오면 좋지만, 갈 때는 더 좋다.'라는 손주가 집에 놀러 오는 상황을 빗대는 어르신들의 말처럼 딸네 가족이 오는 게 좋기도 하면서도  며칠 부대끼다 보면 힘에 부쳐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니 백번 이해한다.


엄마는 만성신부전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마음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투석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까지 엄마는 몇 년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투석은 온몸에 있는 혈액을 인공투석기로 통과시켜 망가진 콩팥을 대신해 혈액 안의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엄마 말에 따르면 투석일에는 오전부터 네 시간씩 누워 티브이를 보며 투석을 한다. 드라마도 보고 트롯 가수들이 나오는 티비쇼도 보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참으로 지겹고 지겨운 시간이란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면 허리가 배기고 온몸이 쑤셔온다. 매번 굵은 수술용 바늘로 혈관을 찔러 투석을 하니 엄마의 팔은 바늘자국과 멍 투성이다. 지혈하는데만 이삼십분씩 걸리기도 하고 매 투석 때마다 찌르는 바늘 때문에 바늘만 보면 노이로제 걸릴 것 같다고 한다.


신장이 나빠지며 체중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해 55킬로였던 엄마는 지금 42킬로의 빼빼 할머니가 되었다.

생야채를 두 시간씩 물에 넣어 칼륨을 빼고, 양념과 조미료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심심한 엄마의 신부전 식단. 과일 한 조각과 커피 한 모금도 고민하게 되는 신부전 환자의 제한적인 식단이 일상이다 보니 맛있는 거 사주겠다며 선뜻 손을 끌기 힘들다. 투석을 시작한 후에는 한 여름에도 마른 몸과 바늘자국을 가리기 위해 품이 넉넉하고 소매가 제법 긴 옷이 엄마의 옷장을 채우게 되었다.


병은 사람을 외로움의 굴로 밀어 넣어 고립시킨다. 그리고 나올 수 있으면 스스로 나오라고 독촉한다. 가족들이 정서적 지지를 해서 사다리가 되어 줄 수도 있지만, 어느 지점까지는 내면에서 혼자 싸우며 버티는 시간이 분명히 있다.   


입버릇 같던 괜찮다는 말이 정말로 괜찮다는 말인 줄 알았다.

언젠가 엄마의 서운함이 서러움이 되고 외로움이 되었다. 엄마가 그 외로움을 슬며시 비쳤을 때 나는 자식으로 뭘 해야 될지 몰라 혈액투석과 관련된 물품을 사 친정으로 보내는 행동을 했었다. 옆에서 같이 있어주지 못하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엄마를 위로하려 했다.

"아프면 자식이고 남편이고 필요 없고, 아픈 사람만 불쌍한 거다. 누가 나를 이해겠냐"  


 퀴블리 로스의 암환자가 질병을 받아들이는 5단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과정은 만성 질환자가 된 엄마에게도 해당하는 단계였다. 술, 담배도 안 하는 나에게 왜 이런 병이 생겼냐는 분노는 과거의 시집살이를 한 시간으로 엄마를 자꾸 끌고 갔다. 삼십 년은 더 지난 얘기를 하며 마치 어제 일처럼 분통을 터뜨리는 엄마의 이야기를 나는 조용히 들었다.


투석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은 언젠가 엄마가 이런 얘기를 했다.

"투석실 가면 애기도 있고 젊은 아가씨, 총각도 있데이~ 나는 양반이다. 젊은 애들이 뭔 죄가 있어서 이런 병에 걸렸겠노!"

젊은 환자들을 보며 애처로워하는 엄마는 조금 더 살아본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시간이 흐르며 투석 생활이 힘들지 않냐는 말에 엄마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진절머리를 낸다.

"지겹지!! 지겹고 짜증난다야~! 그런데 어쩌겠노. 이래 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친정에 가면 엄마는 투석용 바늘을 꽂기 위해  동맥과 정맥을 이어 붙인 동정맥루를 손주들에게 보여주며 장난을 친다. 동정맥루는 손가락 두 마디를 합친 것 정도의 두께의 혈관으로 한 눈이 봐도 굵직히 돌출되어 있다.

"할머니는 팔에 뱀~있다! 자 봐봐라, 만져봐~!"라며 아이들의 손을 동정맥루에 갖다 댄다.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는듯한 느낌을 주는 동정맥루에 손에 닿자마자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엄마는 그런 손주들을 보며 깔깔 웃으신다.


만성질환은 삶과 함께하는 동반자라고 배웠다. 내 몸의 일부가 되고 생활의 부분이  되어 근원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질병을 관리하는 삶. 시간이 지나 투석을 받아들인 엄마의 표정은 좀 더 편안해졌지만 그 과정은 지치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먹고 싶은 것을 함부로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삶. 한참 여행 다닐 연세에 투석으로 해외여행은 힘들어졌다.    

한편으로는 만성질환이 삶과 함께하는 동반자라니, 진절머리 나고 미워서 얼마나 헤어지고 싶은 동반자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의 삶과 생활방식을 가차 없이 바꾸고 엄마의 몸을 볼품없이 망가뜨리는 질병이 찾아왔다. 자식 된 입장으로 마음의 부채는 사채업자의 고리대금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채봉 시인의 시를 읽자마자 내면에 있던 두려움이 불쑥 올라와 엄마 사진을 찾아본다. 이 시를 읽자마자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엄마의 괜찮다는 말을 믿으면 안 되는데 자꾸만 믿게 된다.

우리는 모두 필멸자(必滅者)라는 것을 기억하자. 죽음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속도로 삶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삶과 가족, 사랑의 소중함이 일상에서 희미해질 때마다 우리는 자꾸만 붙잡고 되뇌어야한다.


아무리 사진첩을 뒤져도 엄마와 둘이 최근에 찍은 사진이 없다. 고향에 간 날에도 친정집에서 놀고 있는 내 자식들 사진뿐이다. 가족들끼리 나들이 간 곳에서도 엄마는 없거나 단체 사진의 1인으로 아주 작게 남아 있을 뿐. 이번에 내려가면 엄마와 인생 네 컷도 찍고 동영상도 찍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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