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올라오는 K를 포함해 네 명의 여고동창 친구들이 하룻밤 호캉스를 계획했다. 여행리더라고 이름 붙여진 E가 총대를 메었다. 포레스트리솜제천을 비롯하여 몇 군데를 고려한 결과 테이크호텔서울광명이 최종 낙점되었다. 네 명이 한 방을 쓰는 것이 중요했다. 거리가 가깝고 교통편도 좋았다. E가 검색의 여왕답게 인터넷을 이용하여 반 값에 예약했다. 스마트 호텔예약.
각자 편리한 고통망을 이용하여 7호선 광명사거리역에서 만나 택시로 함께 움직였다. 전철역 입구에 있는 이마트에서 약간의 과일을 구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센스쟁이들. 체크인 시간 이전에 도착했다. 1층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무인 물품 보관함을 이용하여 짐을 맡기는 것도 척척.
가벼워진 행장으로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는 광명동굴로 출발했다. 조금 전에 타고 온 택시를 이용했다. 네 명이나 태워서 남는 게 없다고 농담 던지는 넉살스러운 기사분을 미리 대기 교섭해 놓았다. 택시에 네 명을 태워 본 것은 당신의 영업 시작 이후 처음이라나.
운전석 옆에 앉은 나는 전면 유리창 밑에 붙여져 있는 산악회 사진을 보고 말을 걸었다. 화려한 등산복 차림에다 스틱까지 갖추고 배낭을 멘 중년 남녀들이 활짝 웃고 있다. 30명 남녀 회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의 산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몽골 홉스골 호수 캠프파이어장에서 주위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마이크 소리 요란하게 떠들며 질펀하게 놀던 한국 남녀 산악회원들 모습이 떠올랐다.
"재밌나요?"
대답은 엉뚱했다.
"망가지는 거지요, 뭐."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동굴테마파크, 동굴예술의전당이라는 광명동굴. 1만 원 입장료를 경로우대 명목으로 4천 원으로 할인받았다. 입구로 들어서니 인공으로 쏘아대는 빛들이 요란하다. 양 옆 벽면을 이용한 갖가지 수족관들이 즐비하다. 동굴 아쿠아월드라고 적어 놓았다. 뭔가 조잡하다. 자연이 주는 신성함이 없다. 동굴 벽에 무더기 지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싸구려 철제 사랑의 열쇠들. 가장 도시에 가까이 있는 동굴이어서 그런 것일까? 꽤나 눈에 거슬렸다.
조금 넓은 터에 이르자 동굴 천장에 그려지는 3분짜리 레이저 쇼가 상영되니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다. 어린 왕자가 나오더니 토끼와 거북이 나오고 어설픈 빛의 영상이 어지럽게 이어지다 금세 끝났다. 하긴 3분이라고 했지. 도대체 뭘 이야기하자는 건지. 동굴벽에 설치되어 있는 160석짜리 의자 시설은 폐쇄시켜 놓았다. 20명 정도의 관람객들이 각자 적당한 위치에 서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올려다보다 싱겁게 자리를 뜬다.
외국 여행지에서 만났던 깊고 신비한 동굴들의 아름다움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주도 한림공원의 협재굴, 쌍용굴, 단양의 고수동굴, 고씨굴 등에서 느꼈던 자연의 신비를 인공이 온통 망쳐 버린 듯했다.
원래 탄광이었던 곳이라서인지 입구에서 얼마 가지 않아 계단이 나타났다. 깊고 가파른 계단이 눈 아래 쭉 펼쳐졌다. 자연경관의 아름다움보다는 볼거리 제공, 소위 말하는 사진 찍기 위한 장소인 포토존 제공에 더 비중을 둔 듯한 분위기다. 과연 SNS 대국의 면모를 보는 듯하다. 우리는 계단 내려가기를 포기했다. 입구에서 잠깐 걸어온 거리를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동굴 관람을 마무리했다. 입장료 만 원을 다 지불했으면 아까울 뻔했다고들 입을 모았다.
밖으로 나오니 신록의 키 큰 나무들이 더 아름답다. 옆으로 나 있는 숲길로 들어섰다. 얼마 걷지 않아 벤치와 탁자들이 편안하게 놓여 있는 넓은 데크 광장이 나타났다. 의외로 전경이 좋다. 멀리 눈 아래 아파트들로 빽빽한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고 빙 둘러 초록이 무성한 산들이 눈길 닿는 저 멀리까지 병풍처럼 이어져 달리고 있었다.
駕鶴山. 옛날 학의 서식처로 학들이 이 마을을 둘러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유료 입장인 동굴보다 자유로이 개방되어 있는 이곳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의 정취를 더 깊게 간직하고 있었다. 이른바 가학산스카이뷰가 저 멀리 시원하게 펼쳐졌다.
7월 중순이지만 아직 본격적인 더위는 시작되지 않았고 계속 이어지던 장마도 잠깐 멈춘 날씨라 야외 나들이에 딱 좋은 날씨였다. 동굴 입구에서 카카오택시를 불러 호텔로 향하는 길, 신도시답게 거리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잘 손질된 무성한 가로수들이 특히 아름다웠다.
다음에는 광명누리길을 걸어 보고 싶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표지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기형도 문학관.
"아, 우리 내일 저기 가 보자."
만장일치를 보았다.
호텔에 체크인하여 짐을 풀고 장 보아온 과일로 간단한 간식 시간을 가졌다.
호텔 안에 저녁 7시부터 개장된다는 수영장이 있다길래 다들 수영복을 챙겨 왔다. 깜빡한 나는 수영복을 두 개 가져온 K에게서 빌린 수영복과 근처 다이소에서 구입한 수영모와 물안경으로 장비를 갖추었다.
근처 쇼핑몰 건물 3층 식당가에서 특색 있는 불고기 요리, 연남 물갈비를 먹었다.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시간 맞추어 수영장으로 갔다. 엘리베이터에도 떡하니 적혀 있는 7층 스위밍 풀. 입구에서 나름 화려한 단체 남방을 걸친 젊고 발랄한 남녀 직원 너뎃 명이 우리를 맞이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영장이랄만 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있을 풀로 향하는 출입구를 찾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플로어 넓은 한쪽 면, 전면 유리창 앞에 물이 담긴 커다란 욕조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상체만을 드러낸 채 물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반신욕 자세다. 물에서 뛰노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 2,30대의 젊은 청춘 남녀 커플들이었다.
이른바 새로운 풍속도라는 것일까? 넓지 않은 공간에 젊은 남녀 쌍쌍이 물에 흠뻑 젖은 간편복들을 걸치고 물속에 앉아 다정한 포즈들을 취하고 있었다. 웃통을 벗고 맨살을 드러낸 청년들도 제법 있었다. 빈 공간이 없이 거의 옆 사람들이 닿을 만큼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우리 넷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눈앞의 풍경이었다.
그들이 스위밍 풀이라고 표현한 커다란 욕조 앞 넓은 공간은 시끄러운 음악을 울리며 음료를 파는 바이다.
'아,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곳에서 이렇게 돈을 쓰며 노는구나.'
민망해하는 우리들을 보더니 안내 청년이 겸연쩍게 말한다.
"오늘 이 시간은 디제잉 타임이라 복잡합니다."
하긴 오늘 이 시간은 금요일 오후 7시 30분, 불금 저녁이다.
50년대 출생인 할매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모양이다. 적어도 서너 개는 되는, 최소 20m 길이는 되는 레인에서 저녁 먹은 소화도 시킬 겸 한바탕 수영을 즐길 생각이었으니.
한적한 5층 로비를 찾아 창가에 놓인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손에는 수영복 손가방을 든 채 유리창 밖의 화려한 야경을 내려다보며 긴 시간 수다를 떠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