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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l 31. 2024

기형도 문학관, 핸섬 가이즈.

 시와 영화로 행복했던 날

 이튿날 아침, 수영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개장 시간에 맞추어 수영장에 들어섰다. 9시 반. 새벽잠이 적은 할머니들은 생각했다.

 '젊은이들은 늦잠을 자겠지.'

 '이른 아침에는 수영장이 널럴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수영장 안은 이미 많은 젊은이들의 물속 데이트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로 부모를 따라온 몇몇 어린아이들이 얕은 물속을 첨벙 대며 오가고 있었다. 하긴 호텔 수영장 개장 시간이 9시 반인 것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대부분 아침 운동을 할 수 있는 7시경 문을 연다. 수영장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끝내었다.

 쨍한 햇빛 속으로 기형도 문학관을 찾아 나섰다. 걸어서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기형도, 왠지 짠해지는 이름.

 윤동주의 동화 속 같은 시세계와는 달리 개인의 가난과 사회의 억압 속에서 절박한 삶의 우울과 불안을 남겼다고 평해지는 시인. 황해도에서 교사생활을 했던 아버지가 6ㆍ25 동란 중 피난 온 연평도. 기형도는 1960년, 그곳에서 태어났다. 면사무소 공무원을 하던 아버지가 간척사업에 손을 대 크게 실패하고 1965년, 경기도 시흥, 현재 광명시로 이사를 하였다.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었고 안양천을 따라 뚝방길이 이어져 있었다. 안개가 자주 끼었고 안갯속을 뚫고 노동자들이 일터로 향했다.

 1969년, 그가 아홉 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 이후 어머니가 생계를 꾸려 갔다.

 1975년, 공장을 다니던 바로 위의 누나가 사망하였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큰 상처를 입은 그는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1979년 시를 쓰고 싶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전공보다는 연세 문학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1983년 스물세 살, 시 <수목제>로 연세춘추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 졸업 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일했다.

 1985년,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분에 <안개>가 당선되었다.  

 1989년,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심야 영화 관람 중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2년 후인 1991년, 그의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29세로 세상을 떠난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시인으로서의 착실한 행보를 남겼다. 하나의 새로운 고전으로 우리 문단에 자리 잡은 그의 수많은 작품들, 빈집, 엄마 걱정, 질투는 나의 힘, 식목제, 입 속의 검은 잎, 정거장에서의 충고ᆢ.

 기형도 전집에는 86편의 시와 8편의 단편소설, 4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학창 시절 받은 상장이 라면 박스 하나 가득이며 성적은 늘 최상위권을 유지했다고 한다.


 2017년 11월 10일 문을 연 기형도 문학관은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알찬 느낌을 주었다.

 잘 지어진 기념관과 잘 전시된 감동적인 작품들, 알차게 갖추어진 장서들을 차분히 둘러보고 나오는 마음은 시인 기형도의 짧고도 아팠던 삶, 섬세하고 따뜻한 심성과 탁월한 표현력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시들이 주는 쓸쓸하고 안타까운 정서들로 꽉 채워졌다.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어제저녁을 먹었던 식당에 들러 어제 메뉴와는 다른 메밀 막국수를 주문하였다. 기대했던 대로 맛있는 요리였다.


 오후에는 바로 옆에 있는 메가박스 영화관을 찾았다. 상영 시간과 내용을 고려한 결과 <핸섬 가이즈>를 보기로 했다. 코미디 공포, 블랙 코미디라고 불리는 장르, 한마디로 좀 정신없는 영화이긴 했다.

 차원이 다른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인물도 훤칠한' 두 그룹의 청춘 남녀들. 우연한 시간과 장소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이 두 그룹의 상반된 가치관과 행동들이 빚어내는 마찰과 갈등, 기상천외한 전개가 흥미로웠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과 안에 숨어 있는 것의 차이. 외모로 파악되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괜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확률 경험치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것이 결코 진실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 끈질긴 악의 세력은 인간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고 결국은 신의 심판으로만 가능하다는 것 등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위험해 보이는 온몸 연기에 뜨거운 열정을 쏟아 넣는 배우들의 뛰어난 프로 정신도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크게 한몫했다.


 1박 2일, 호캉스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 감상을 끝으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언젠가 다시 또 뭉쳐야지.

 모두들 수고했어.

 고마워.

 잘 가.

 안녕 ♡

 2024년 7월 1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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