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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1. 2024

최현우의  아판타시아

  마술 공연 나들이

 몰입도가 뛰어난 공연이었다. 2시간 남짓 이어지는 공연이 한순간도 흐트러지거나 끊기지 않고 완성도 높은 긴장감을 유지했다.

 마술사 최현우의 아판타시아.

 아판타시아는 눈으로 본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視覺失認 증상을 말한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공연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현우의 마술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인가 보다. 그는 마술사가 아니라 마법사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단순한 기교나 트릭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깊이 감추어진 인간 내면의 비밀을 끌어내어 공감하겠다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나를 경험하는 시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다.


 원반, 큐빅, 휴대폰, 타로점 카드, 싱잉볼, 이동 마이크 정도의 소도구가 쓰였다. 소리 없이 날렵하게 움직이는 네 명 보조 마술사들도 매끄러운 공연 연출에 한몫했다.

 관객과 함께 만드는 관객 참여형 공연, 이머시브 멘털 매직쇼. 무대에서는 최현우가 관객의 마음을 읽고 관객은 관객석을 벗어나 무대에 올라 공연에 참여하여 공연의 주체가 되는 쇼라고 소개했다. 심리, 최면, 상상 등의 인간 내면과 마술을 결합시킨 심리마술이라는 홍보 문구를 읽었다.


 2024년 7월 27일 오후 6시. 폭우를 뚫고 찾아간 성동구 왕십리의 소월 아트홀. 젊은 커플들이 주축을 이룬 관객들로 3층 소극장이 가득 찼다. 보이지 않는 생각과 내면의 심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경험하는 집단최면 경험이 무대 위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모든 관객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집단 최면을 거는 일로 시작되었다. 최현우의 거듭 반복되는 강력한 멘트로 두 손을 모으게 한 다음 합장한 두 손이 잘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만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이런 공연에 익숙한 듯 2,30명의 관객들이 우르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다시 한번 걸러지는 과정. 이번에는 한쪽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만 무대 위에 남았다. 12명 정도. 그들을 나란히 의자에 앉힌 다음 주문으로 잠 속에 빠져든 그들은 최현우가 지시하는 동작대로 반응했다. 오른팔을 들라든지, 고개를 기대라든지ᆢ. 마지막으로 악기 연주를 하라는 주문에 피아노, 바이올린, 트라이앵글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들을 보여 주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로.


 최면에서 풀려난 그들이 퇴장하고 관중석으로 원반을 날려 그 원반을 잡은 사람들이 하나, 둘 무대에 올랐다. 마술사가 엮어가는 이야기를 따라 마술사의 의도대로 반응하는 관객들과 관객들이 고른 타로 카드를 보지도 않고 다 알아맞추는 마술사를 보며 다들 탄성을 지를 뿐이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에게서는 그분의 모교 고등학교 이름과 남편과의 첫 만남 장소를 알아내었다. 싱잉볼을 울려가며 공명 파동 속에서 그 여자분과 무의식의 세계를 공유한다는 해설이었다. 모두들 입을 딱 벌렸지만 가장 많이 놀라워하는 사람은 불려 올라간 그 아주머니였다.

 '마술'하면 먼저 떠오르는 트릭 기술보다는 스토리텔링, 이야기 만들어 가기에 중점을 둔 연출이었다. 마술에 대한 일반적인 고정관념과 상식을 뛰어넘는 신선한 공연이었다.


 20여 년 전 보았던 마술사, 이은결의 공연과는 많이 달랐다. 출중한 체격과 잘 가꾼 외모에서 나오는 독특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하던 이은결. 신체의 어느 부분에선가 끊임없이 엉뚱한 것이 나타나고 사라지게 하는 손끝 재주와 관중을 사로잡는 연기력이 뛰어났고 무대 분위기가 아주 신비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1981년 생 이은결과 한국 마술계의 두 거장이라고 불리는 1978년 생 최현우. 그는 다정다감하게 끊임없이 말을 하며 관객들을 이야기 나라로 끌고 간다.

 마지막에는 말도 안 되는 숫자 놀음으로 현재의 시간을 분 단위까지 맞추고 익명의 전화 통화자와의 대화 끝에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한다는 영화배우 모자이크를 큐빅으로 완성하여 보여 주는 것으로 공연이 끝난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백조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수 위에 조용히 떠 다니는 한 마리 백조. 표면상으로는 우아하고 유유자적해 보이지만 물 밑에 잠겨 있는 물갈퀴는 잠시도 쉬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며 물을 젓고 있다고.

 무대 위에서는 범상한 듯 범상치 않은 공연이 펼쳐지고 있지만 무대 뒤에서는 긴박하게 돌아가는 스텝들의 활약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을 것 같았다. 한 치 어긋남이 없는 얼마나 치열한 물 밑 작업이 이 믿기 어려운 공연을 뒷받쳐 주고 있는 것일까?


 유난히 공연 감상을 즐기는 둘째 덕분에 보게 된 공연이다. 가수 서인국의 팬미팅에 찬조출연 나와서 보여 준 최현우의 몇 가지 마술에 완전 매료되어 오늘 나들이를 계획했고 나를 파트너로 초대한 것이다. 덕분에 젊은 메뉴로 저녁도 먹고 특별한 여름밤 나들이를 고마운 추억으로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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