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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06. 2024

내디딘 첫 발  

 장하다, 있는 힘껏 응원하마♡

 드디어 여섯 손주들 중 첫째, 첫 외손녀 J가 대입시험 첫발을 내딛는 날이다. 10월 6일, 오늘, 오전 10시로 예정되어 있었던 H대 논술시험 시간이 변경되어 오후 3시 40분부터 5시 40분까지 두 시간 동안 실시된다. 나도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도서관 카페로 왔다.


 지금은 4시 11분. 주어진 논술 문제의 주제를 읽어내고 첫 갈피를 잡아서 열심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고3, 열아홉 살이 어려운 경쟁 관문을 뚫기 위해 많은 경쟁자들 틈에서 두 시간 동안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은 아주 긴장되고 힘든 일일 것이다. 며칠 전에는 장염까지 앓았다.


 어쩌다 보니 사흘 전과 어제, 이틀간 큰 딸네 집엘 다녀왔다. 주로 큰애네 가족들이 우리 집에 다녀가고 나는 일 년에 서너 번 들르는 편인데 이번에는 우연히 사흘 동안 두 번이나 다녀오게 되었다. 내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닌 듯하다.


 가서 두세 시간 머무는 동안 J는 거실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 앞에서 우리를 등지고 앉아 꼼짝 않고 논술시험 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딸과 나, 둘째 손녀와 나는 부엌 식탁과 작은방 테이블에서 아무 생각 없이 담소를 나누었다. J는 주위 상황에 꿈쩍하지 않고 계속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귀마개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오랜 시간 긴장을 풀지 않고 혼자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는 의젓한 뒷모습을 보니 대견했다.


 집으로 출발할 때 인사 차 내 앞에 와서 선 손녀 J.

 "아이구 우리 J, 업어 주고 싶구나."   

 어깨를 넘는 긴 생머리에 나보다 키가 10cm 이상 더 큰 외손녀를 두 팔 벌려 있는 힘껏 안아 올렸다. 어설프게 내 품에 안겨 바닥으로부터 겨우 1cm 정도 발이 떨어진 J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약간은 멋쩍게 소리 내어 웃었다.


 나를 닮아 완전 문과 체질이라 수학 때문에 입시 준비에 너무 고생하는 두 손녀. 많이 읽고 독해력 좋고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손녀들. 어떤 과정을 거치든, 어디에서든 자기 몫을 충분히 잘해 낼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너무 심한 학업 경쟁에 시달리는 것이 안타깝다. 사회에 나가면 그 노고의 시간들이 순간 아무 의미 없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시험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문제 삼지 말라고 진심으로 말해 주고 싶다. 사흘 전과 어제 내가 보았던 손녀의 그 진지한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사회인으로서의 제 몫을 다 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그 자리에서 두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역할에 맞는 자격을 갖추고 합당한 평가 과정을 통과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잘 걸어온 것만으로도 족하다. 관성의 힘으로 앞으로 남은 모든 길도 성실히 잘 걸어가면 된다. 꽃길이든 아니든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그 길에서 많은 의미와 보람과 기쁨을 수확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녀들에게 주님 은총 가득 내려 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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