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게스트하우스는 숙소를 신청해 준 주민이 책임지고 청소와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 영업장이 아닌 배려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많지 않으니 따로 관리인이나 청소부가 없다.
사흘째, 보령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남아 있는 재료들로 아침상을 차렸다. 사과와 달걀이 빠지지 않은 제대로 된 식탁이 차려졌다. 깨끗이 접시들을 비웠다.
이제 대청소 시간이다. 셋이 각자 알아서 척척 움직인다. 넓은 바닥 전체를 말끔히 걸레질로 마무리하고 내친김에 쉬이 눈에 띄는 낮은 창문에까지 손을 뻗었다. 올여름 내내 잦은 비로 눅눅하게 젖어 있는 얼룩들이 쓰윽 한 번의 걸레질만으로 말갛게 닦인다. 청소맛이 솔솔하다. 온갖 편의를 성심껏 조용히 베풀어 준 S 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한데 어우러져 바쁘게 몸을 움직여 갔다. 구석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소화기까지 먼지를 벗고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적인 빨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마지막으로 청소에 사용한 모든 걸레들을 화장실 통돌이 세탁기 안으로 몰아넣었다. 청소 끝.
숙소로 내려온 S 씨가 환하게 웃었다. 윙윙거리는 세탁기 소리를 뒤로 하고 깔끔해진 실내를 한 번 더 돌아보며 게스트하우스 문을 닫았다. 탈수가 끝난 걸레들이 짱짱한 여름 햇볕 속에 보송보송 말라가고 있었으면 더 예뻤을 것을.
해발 700m, 산속 택지, 사방이 초록으로 우거진 숲이다. S 씨의 안내를 받으며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예쁜 마당들을 몇 집 더 구경했다. 안주인, 바깥양반들의 부지런한 발품과 손길, 퍼붓는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담스레 눈길을 끄는 정원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9시 50분, 이틀을 묵었던 이곳, S 씨 동네를 떠났다.
10시 30분, 오늘의 첫 방문지는 테마공원 죽도 상화원. 조화를 숭상한다는 尙和園. 광활함, 고요함, 기교, 고색창연함, 물의 흐름, 조망의 6가지 가치를 추구하며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조화로운 바다를 즐긴다는 한국식 전통정원. 한국의 이상향으로 불린다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고려 후기에 지어진 경기도 화성 관아의 정자를 2004년에 그대로 옮겨 왔다는 의국당 정자가 방문객 센터로 자리 잡고 있다. 입장권을 반납하면 커피를 포함한 음료와 떡을 선물한다. 낱개 포장된 영양떡이 쫄깃쫄깃 맛나다.
수령 200년이라는 팽나무 보호수가 넓게 풍성한 그늘을 드리운다. 섬 둘레에 서른세 개의 연못을 만들어 각각 테마 수중 식물들과 물고기를 키운다는 해변 연못도 시원스레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로 눈길을 끈다. 사라지는 한옥마을에서 옮겨왔다는 이대창씨 가옥은 주말에는 결혼식장으로 이용된다. 홍씨 가옥 문간채도 섬의 운치를 한결 돋운다.
섬 전체를 둘러싼 2km 구간의 지붕형 회랑은 모두 테크로 설치되어 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해변 일주 내내 비나 햇빛을 피할 수 있다. 시종일관 옆에 바다를 끼고 걷는 이 길은 섬 주인의 독특한 발상과 과감한 도전이 낳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4월부터 11월까지 금, 토, 일요일과 법정 공휴일에만 문을 연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9월 13일 금요일이다. 13일의 금요일에 우연한 행운을 잡은 셈이다. 게다가 이틀 후부터 시작되는 추석 연휴 직전이니 섬이 텅 비어 있다. 보통 때는 그야말로 앞사람의 뒤통수만을 바라보며 밀려다니기 일쑤라고 했다. 느릿느릿 감탄사를 연발하며 거대한 정원으로 탈바꿈한 섬 전체와 바로 옆에 펼쳐지는 끝없는 바다에 우리들의 오늘 이 마음을 담았다. 대천해수욕장과 용두해수욕장 사이의 남포방조제 중간, 서쪽에 있는 죽도. 섬이지만 육로로 이어져 있다. S 씨의 세심한 안내 덕분에 운수 좋게 대어를 낚은 셈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선 맛집 식당. 무조건 별미이다.
다시 핸들을 잡더니 산속으로 향한다. 산 중턱에 나타난 낡은 시멘트 건물. 갱스 카페. 장군봉 아래 산중턱에 자리한 이곳은 탄광지역 광부들이 목욕탕으로 쓰던 건물을 카페로 꾸민 곳이다. 카페 뒤쪽은 폐광 동굴을 이용한 보령 풍욕장 동굴이 있다지만 꽤나 더운 날씨라 냉방이 잘 된 카페로 직행했다. 2층 전시 공간도 잠깐 둘러보았다. 인물 사진들을 직접 기념 촬영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창 밖 앞산의 초록 전망이 넓게 펼쳐지는 통유리창 앞 탁자에 자리 잡았다. 영화, 드라마, 책, 전시회, 미술작품, 유명 도슨트 등에 대한 이야기가 무르익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포토존으로 딱 어울릴 것 같은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 실내에 남아 친구들 한 명 한 명이 지나가는 순간들을 석 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오후 4시 25분, 용산으로 출발하는 장항선 기차에 오르기 전 또 한 가지 남은 일이 있다. 역 앞 건어물 시장 방문이다. 새우 건더기만을 골라 푹푹 퍼담는 가게 아주머니의 큰손에 반해 새우젓을 한 통샀다. 나의 충동구매를 증명하는 새우젓이 몇 년째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별로 쓰지도 않는 새우젓 두 통이 냉동실 앞칸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