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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n 04. 2024

토리야마 아키라를 추모하며

꼭 그만큼의 외로움.

2024. 3. 10.


  내 예상(예감, 예측, 짐작 등등)은 거의 틀리는 편이다. 하지만 틀린다고만 말하기에는 그 결과가 조금 기묘한 면이 있다. 미래의 결과가 예상의 범주를 자주 벗어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사건의 결과에 대한 경우의 수를 A, B(혹은 C, D, E, F 등등)로 예상하고 그중 A가 결과가 될 것이라고 다시 한번 예상했을 때, 정작 결과는 '알파카'나 '레모네이드'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이다. 책상 위에 경우의 수를 잔뜩 늘어놓고 예상해도 소용없다. 삶은 '이런 것도 있지~' 하며 굳이 닫혀 있는 서랍의 카드를 꺼내와 슬며시 보여준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납득할 수밖에. '아, 이런 것도 있었지.'


  인스타그램 해킹을 당한 후, 기존 에피소드를 다시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 달 남짓 예상되는 작업 기간 동안, 드로잉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드래곤볼 초화집』을 구입하여 따라 그리고 있다. 내가 그리고 있는 '다다다'는 기본적으로 만화지만 모든 컷이 일러스트처럼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초화집에 실린『드래곤볼』의 앞뒤 표지, 중간중간 삽입된 일러스트는 정말 귀중한 자료이다. 이 그림들을 따라 그리면서 연습을 하다보면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의 재능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게 천재구나'라고 생각하며 한편으로 감탄하고 한편으로 좌절하고 있던 어느 날, 예의 그 삶이 어디서 또 카드를 가져와 내게 디밀었다. 


'(…) 이상, '일러스트집을 낼 만한 그림은 아니지 않나~?' 하고 들켰을 때를 위한 변명이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공부하는 중이니 부디 용서해 주세요.'

                                                                                           - 『드래곤볼 초화집』작가 코멘트 중


  저 코멘트를 읽고 사람에 따라서는 '노력하는 천재라니!' 하며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결코 작지 않은 위안을 받았다. 혼자서 하는 그림 공부가 덜 외로워졌다. 외롭지만 않으면 모든 건 할만하다. 


  그 후, 매일 검색하는 단어 중에 '토리야마 아키라'가 추가되었고 그의 작품 속 일러스트, 피규어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특히 『닥터슬럼프』의 사라다 키노코 피규어에 대한 소식이 없는지 매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내 앞에 예상치 못했던 카드가 한 장 날아왔다. '아, 이건 아니지…'. 이번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드래곤볼』에 대한 마음은 내 유년기에 이미 정점에 도달했고 그 후에는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에 대한 마음은 최근에서야 생겨나고 이제 막 '정점'에 도달하였는데 거의 동시에 부고 소식을 접했다. 이런 경우의 수는 예상할 수 없었다. 삶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뾰족하다.


  '작가는 가도 작품은 남는다'라며 이 무력감을 달래고 의연함을 가장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나는 아주 큰 외로움을 느끼며 그림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 외로움의 크기만큼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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