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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

by 노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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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이전 마지막 서울국제도서전이었다. 사실상 책 할인 행사로 독자들에게 각인되어 온 서울국제도서전은 그 해를 끝으로 어떤 식이든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할 운명이었다. 몇 번의 회의에서 서울국제도서전도 지금까지의 단순 독자 위주의 행사를 넘어, 세계 4대 도서전처럼 바이어 위주의 도서전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오갔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물음에는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그건 장기적인 과제였다. 어차피 나는 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내년 도서전은 내 일이 아닐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때 내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장관이 참석하는 개막식 의전을 잘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장관 행사를 맡아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개막식 전날부터 부스를 설치하는 통로를 비집고 다니며 사전 답사를 하고(처음이라 좀 오바했던 것 같다), 개막식 당일에도 새벽같이 코엑스에 도착해서 계속 동선을 체크했다. 그 날은 2014년 월드컵 조별 예선 한국의 경기가 열린 날이었는데, 삼성역으로 가는 내내 LTE가 제대로 터지지 않아 경기도 제대로 보지 못한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개막식 행사는 준비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별문제 없이 끝이 났다. 당시의 장관님이 의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소탈한 성품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은, 이후 수많은 장차관 행사를 치르면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개막식이 끝나고 관계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던가? 이후의 기억은 희미하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이후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다. 책 할인 행사의 기능이 끝나고 몇 년은 출판사들도 외면할 만큼 갈피를 찾지 못하다가, 2017년부터는 일반 대중을 위한 북 페스티벌로서의 위상을 강화하여 독자들을 끌어모았다. 물론 여전히 도서전의 원래 기능인 판권(저작권) 비즈니스 중심의 도서전으로 거듭나진 못했지만, 나름 새로운 길을 찾고 순항했다. 하지만 지난 정권에서 보조금 누락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기도 했고, 개별 출판사가 아닌 도서전 자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 끊기기도 했다. 그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최근엔 도서전 운영 주체의 주식회사화 문제를 두고 사유화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10년도 더 지난 옛 기억을 꺼낸 건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작가로서 참석하기 때문이다. 도서전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작가로서 도서전에 초대받는 경우는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내 삶도 지난 십여 년간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나도 도서전도 이제 예전과는 사뭇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오랜만에 마주할 익숙한 풍경이 낯설면서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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