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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훈 Dec 17. 2020

여행을 준비하며

0. 사전 준비

  여행은 대부분 꿈과 연결되어 있다.

항상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꿈꿔 온 것처럼...


  2017년이 들어서자 드디어 떠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사실 이전과 비교해 상황이 호전되었다던가 하는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십 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는데도 통장 잔고는 여전히 바닥이었고, 앞으로도 그다지 경제적 여건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자라고, 그만큼 나는 나이 들어갔다. 시간에 대한 조급함이 생겼고, 나지 못할 이유를 찾아봤다.

 시간에 비하면 모두 사소한 것이었다.

그 사소한 것 가운데 그나마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역시 돈이긴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인생에 있어서는 작은 부분일 뿐... 그래서 떠나보기로 마음먹었다.


  2017년 6월,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다.

딱히 의미 있는 시점은 아니었지만, 마흔이 되기 전에 떠나고 싶었다. 아내 쭈니에게 세계일주 계획을 말했더니, 역시나 흔쾌히 동의했다. 연애할 때부터 한 번씩 해왔던 이야기라, 언젠간 이 남자가 실행에 옮기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초2 둘째 들이는 세계일주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가족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좋아했다.

 예상외로 초6 첫째 세군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학교 빠지고 여행을 간다면 당연히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의 반응이었다. 지금도 편하고 좋은데, 몇 달이나 여행을 떠난다는 게 그냥 불안했던 모양이다.

 외국의 유명 여행지를 말하고, 가족끼리 몇 달을 함께 여행하는 것은 참으로 흔치 않은 좋은 기회라며 세군을 설득했다. 반대를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금방 찬성으로 돌아섰다.

가족들 모두의 동의를 얻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비행기 티켓 예매였다. 그때가 2017년 2월이었다.

  6월 24일 빠리로 떠나는 티켓을 예매했다.



 세계일주라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대학시절 혼자서 몇 번 배낭여행을 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그때처럼 무작정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대략적인 세계일주 정보를 찾아봤다.

몇 년 동안 세계일주를 한 대단한 경험들이 여럿 적혀있었으나, 딱히 감이 오지 않았다.

물론 몇 가지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긴 했다.

여섯 달이면 ‘유럽–아프리카–북미–남미-오세아니아’, 대충 지구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을 듯했다.

일단 대략적인 여행지를 적어봤다. 가보고 싶은 도시와 나라의 목록을 적고 그것을 이어 동선을 그렸다.

유럽은 군 제대 후 석 달간 둘러본 적이 있어서 코스를 짜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후 동선은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우선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선을 그려, 아내 쭈니에게 말해줬다. 퇴근하고 오면 쭈니가 그려놓은 그림을 숙제 검사하듯 확인했고, 준비가 더디다며 몇 번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쭈니는 그 희미하고 성긴 선을 훌륭하게 그림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모든 선을 처음부터 다 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유럽을 돌면서 다음 대륙 일정을 세우기로 했다.



회사에서 맡은 일을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에 휴직하기까지 몇 달 동안 계속 야근을 하고 휴일 없이 출근했다.

 몇 가지 변수가 생기긴 했으나, 무사히 주어진 업무를 끝마칠 수 있었다.

6월에 접어들고 이제 남은 문제는 딱 하나, 경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은행에 들러 난생처음 대출 상담을 받고, 내 신용으로 최대 6,1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확인한 정량화된 신용의 크기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신용의 크기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뭐라도 빠진 게 있진 않을까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었지만, 따져 묻는 동안 혹시라도 불량한 내 인생이 드러날까 싶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대출금이 계좌에 입금되자마자 휴직계를 냈다.

내 신용으로는 여섯 달 치 여행경비를 마련할 수 없었다. 항공비용을 제외하고, 하루에 1인당 10만 원 정도 쓴다고 가정하면 대략 넉 달을 다닐 수 있는 금액이다.

여섯 달이면 아이들 학교 유급 문제도 걸리고 해서 넉 달로 일정을 정했다.


 50리터 배낭, 2인용 전기밥솥, 코펠, 콘센트 변환기, 태블릿 PC를 구입했다. 배낭에는 당장 입을 옷과 최소한의 생필품을 넣었다. 혹시 몰라, 아이들을 위해 집주소와 연락처를 영어로 적은 명찰 목걸이를 만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남은 휴가를 쓰고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었다. 물론 아이들은 출국 전날까지 학교에 보냈다. 수업 일수도 채워야 했고, 수업을 빼고서까지 아이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휴가 기간 중 초등학교 2학년생 들이의 등교를 돕고, 하교 시간이 되면 아이를 데려왔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면, 저기서 똘래 똘래 가방을 메고 친구들과 조잘거리며 나오는 막내 들이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들이와 친구들을 데리고 학교 앞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 또한 휴직 기간 중 있었던 가장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첫날엔 세 명이던 친구가 일주일이 지나니 열 명 가까이 늘었다. 친구들 사이에 들이 아빠가 학교 끝나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는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던 사내 녀석들도 들이 옆에 붙어 교문을 빠져나왔다.

 녀석들 덕분에 나는 천 원짜리 몇 장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드디어 2017년 6월 24일 토요일이 다가왔다.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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