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나는 집에 혼자 있는데, 내 앞에서 사람이 말을 하는 것 같다.
우란문화재단 기획공연 '더블'은 그간 국내에는 없었던 독특한 공연이다.
2020 베니스 국제영화제 VR 부문에 초청되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영국의 이머시브 오디어 시어터 '다크필드' 극단의 작품이다. '더블'은 2020년 런칭한 다크필드 라디오 시리즈의 첫 작품, 우란문화재단의 기획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어 버전으로 12월 17일 바로 오늘부터 접할 수 있게됐다.
코로나로 인해 극장을 가지 못하더라도 관객이 집에서, 혹은 편한 공간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물도 간단하다. 애플리케이션과 이어폰만 있으면 된다.
공연을 관람하기로 선택한 시간에 애플리케이션을 들어가서 입장 코드를 입력하면, 예정된 시간에 공연이 흘러나온다. 눈을 감으라고 하면 눈을 감고, 뭘 집어서 옆에 두라고 하면 두고, 그저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면 된다. 오른편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있고, 내가 앉아있는 곳을 성큼성큼 지나친 어떤 사람이 내 왼쪽 귀에 불어넣는 소리들도 있다. 분명 나는 혼자 있는 걸 확인하고 이 공연에 참여했는데, 점점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내 집에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게 내가 이 공연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전부다. 실제로 저렇게 느꼈다.
https://ticket.melon.com/performance/index.htm?prodId=205703
예매 페이지에 간략한 소개글도 나와있다. 근데 뭐라고 줄거리를 더 설명하기 어려운 게, 온라인 공연임에도 어느 정도 체험이 동반되는 이머시브 형태의 공연인지라 직접 듣고 체험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시놉시스를 읽는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공연 시간은 20분이고 아주 순식간에 지나간다.
본래 다크필드 극단은 이런 작품들은 선박 컨테이너를 이용하여 완전한 암전 속에서 관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할 수 없지만, 직접 체험하는 공연과 온라인으로 집에서 체험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서 컨테이너에서 공연을 체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본 공연은 우선 소음이 없는 공간에서 볼륨을 크게 높이고(가장 중요), 카톡 알림 등으로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는 장치들이 필요하고(특히 재난 알림), 어두울수록 좋으며, 진짜 식탁에서 진행하면 재미가 배가될 작품이다. 객관적으로 무서움의 정도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무서움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에 속해서) '내 심장이 너무 약하다' 하시는 분들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 무서워도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너무 무서우면 볼륨을 줄이는 건 도움이 될 테지만 실제적인 음향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중간 이상의 볼륨은 필수다. 눈을 감고 들으면서 볼륨을 줄이기도 했는데, 음향이 너무 실제적이라 내 뒤, 앞, 옆에 뭐가 있다는 느낌은 지우기 어려웠다.
집에서도 이런 체험이 가능할 수 있구나. 무서워서 감고 있던 눈을 떴는데도 여전히 무서울 수 있구나. 소리를 이렇게 입체적으로 녹음할 수도 있구나.(실제로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와서 말하는 것 같고, 라디오 소리는 몇 뼘 먼 곳에서 나는 것 같다) 당신이 있는 모든 장소를 공연장으로 만들어줄, 다양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공연. 우란문화재단이 보여줄 다크필드 라디오의 다른 시리즈들도 기대가 된다.
+나는 부득이하게 식탁이 아닌 공간에서 체험했는데, 실제 식탁에서 체험하신 분들의 후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