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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디터 Jan 22. 2021

세상의 끝까지 21일, 영화를 보며 했던 생각들.

내일의 해가 뜨는 게 싫은 것보다 더 무서운 건 해가 뜨지 않는 것이다.

일주일 전, <세상의 끝까지 21일>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봤다. 스토리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준 작품이라 그런지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때 받은 느낌이 가시지 않고 남아있는 기분이다. 영화는 지구종말 로드무비라는 단어에 걸맞게 지구의 종말이 딱 3 주남은 시점부터 시작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지구 종말이라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미치는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탈을 경험하는 사람들, 불 지르고 폭도가 되는 사람들, 남들보다 먼저 비행기를 타서 어디론가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비교적 행동의 변화가 크지 않은 두 남녀가 만나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영화다.


1. 세상의 끝까지 삼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뭘 할까. 폭동이 일어나고 불이나고 각자의 순례지로 떠나기 위해 항공편이 마비되는 그 순간에 나는 뭘 하려고 할까. 영화를 보는 순간순간 그런 질문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러다 영화가 끝나고 알았다. 인생의 끝을 마주하고는 뭘 마지막으로 하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보다 위안이 되고 값진 마지막이 있을까. 꼭 지구의 종말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2. 더 많이 알거나 보거나 모으는 것에 방점을 찍는 삶이 가장 의미 없어지는 순간은 인생의 끝을 아는 순간일 테다. 물론 사람은 때때로 좌절을 겪고,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포기해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사람에게는 언젠가 회복이라는 걸 하려고 노력하는 어떤 관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의 끝을 아는 그 순간에야 말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없어지고, 온전한 텅 빈 시간을 맞이하지 않을까.


일이 너무 바빠서, 인생이 안 풀려서 등등 하루하루가 벅차다 보니 그런 강박증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비단 나만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바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기대감 없는 공허한 시간은 내일의 해가 뜨는 것이 싫고, 무서운 것보다 훨씬 최악인 일이 아닐까. 그래서 간혹 텅-빈 하루를 맞이할 때에 무언가 이상하고,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바쁜 인생에 만족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3. 영화를 보며 한 마지막 생각. 기술과 문명이 발전할 대로 발전해서 지구 종말의 순간을 예측했을 때, 그 순간에조차 ‘세상이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고 기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그게 터무니없고 어리석다고 할지라도, 내가 눈 감는 순간까지 그런 기대를 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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