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좋을 것 같은데 안 보고 아껴둔 작품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1순위가 바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이라는 작품이다. 영화 ost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으로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이 고전영화는 보는 내내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짙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이지만 너무 늦게 봤다는 생각보다는 알맞은 시기에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이 영화를 봤다면 돌아볼만한 인생의 갈림길이 없고, 꺼내봐야 하는 추억이 부재하는 탓에 지금만큼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 같아서다. 영화의 모든 씬이 좋았지만 역시 이 작품에서 가장 짜릿했던 시퀀스를 꼽으라면 엔딩이다. 엔딩의 짜릿함을 이야기하려면 어느 정도의 줄거리 설명이 필요하다.
시칠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어머니와, 갓난아기인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린 토토는 동네에 딱 하나 있는 극장, 시네마 파라디소의 영사실에서 일하는 노인 알프레도를 쫓아다닌다. 영화와 필름을 사랑하는 작은 아이는 영사실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고, 그런 그에게 알프레도는 우상이자 선생님이자 가장 좋은 친구다. 그 작고 어린아이는 필름이 타서 영사실과 영화관에 불이 번졌을 때, 아무도 영사실에 있는 알프레도를 향해 달려가지 않을 때 홀로 영사실로 달려가 알프레도를 구해낸다. 그 소년의 헌신적인 우정 덕분에 알프레도는 비록 눈을 잃었지만 목숨을 구하게 된다.
영화의 초반부를 제외하면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한 가장 많은 말들은 이 작은 섬을 떠나서 큰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는 진즉에 토토의 영민함을 알아보았을 것이고, 영사실에서 고독하게 다른 이들을 위해 영화를 틀어주는 일 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테다. 그는 언제나 토토에게 다른 꿈과 기회가 있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래서 토토는 고향을 떠날 수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절대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안되며 돌아오더라도 자신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매몰찬 당부를 남긴다.
영화를 보며 저런 알프레도가 없었다면 토토의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정든 고향, 혹시나 돌아올지도 모르는 첫사랑,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족 그 모든 것을 등진채 떠날 수 있었을까. 남는 것과 떠나는 것 중 어떤 것이 그에게 행복했을지는 모르지만, 토토의 삶에 알프레도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영화의 엔딩은 알프레도의 부단한 노력과 토토의 영민함이 만들어낸 중년의 토토. 어엿한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토토가 알프레도의 사망 소식을 듣는 첫 장면과 맞닿으며 시작된다. 고향을 떠난 뒤로 한 번도 돌아간 적이 없는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고향과 추억을 마주하고, 알프레도가 남긴 마지막 필름 선물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 필름 속에 키스신 검열 때문에 잘라놓은 수많은 영화 속 키스신들이 편집되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 필름을 보며 눈물 어린 웃음을 짓는 그의 미소에 어린 시절 토토의 웃음이 겹쳐 보일 때쯤, 영화가 막을 내린다.
내게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알프레도의 토토를 향한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다. 추억을 돌아보지 말고, 고향에 돌아오지 않고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알프레도는 마지막 선물로 아이러니하게도 토토의 유년시절을 상기시키는 필름을 남긴다. 나는 그 선물 속에서 토토가 이미 큰 사람이 되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알프레도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그런 믿음 없이 토토에게 추억을 되살리는 물건을 선물하지 않았을 테다.
영화 시네마 천국은 청춘과 사랑과 인생이 담겨 있는 보석함 같은 영화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꺼내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 영화를 사랑하던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의 토토와 그런 토토를 크고 작은 위기에서 구해주며 윙크를 하던 알프레도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없던 추억까지 그리워 눈물짓게 만드는 이 작품의 세 시간짜리 무삭제 버전도 궁금해진다. 조금 더 나이가 든 뒤에 극장에서 보는 볼 수 있는 행운이 있기를 바라본다.
+글의 포인트에서는 빠졌지만 시네마 천국은 영화라는 예술이, 그리고 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특히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국에서 사라져가는 영화관이라는 공간과 영화가 주는 가치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