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타트업> 3화를 조명하며
살면서 가장 처음 딥하게 좋아하게 된 예술이 드라마였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드라마만 약 500개의 작품을 봤는데, 영화는 한 편에 2시간 남짓인 반면 드라마는 한 작품에 거의 20시간정도가 소요된다. 돌이켜보니 결코 쉬운 취미는 아니었다.
저렇게 이야기하면 '드라마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시선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가장 친근한 방법으로 삶에 대해 알려준게 드라마였다. 주인공의 일상적인 장면을 보고 내 삶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연애나 가족에 관한 작품들을 보면서 '사람사는거 다 비슷하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흔히들 말하는 아하! 포인트가 가장 많았던 분야다.
그렇게 친근한 반면 리뷰하기에는 오히려 영화나 연극 등에 비해 어려워서 항상 미루다 넘어가기가 부지기수였다. 1화부터 16화까지 다 보고 한꺼번에 리뷰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서였다. 근데 꼭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매 회마다 좋았던 포인트가 다를 수 있는거잖아. 애초에 한 작품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데 그걸 어떻게 같은 분량으로 압축하나. 그래서 지금부터 한 회의 좋았던 장면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드라마 <스타트업> 3화가 그 첫 시작이다.
달미(수지)는 매출 천만원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하고도 정규직 전환의 자격이 안된다며 계약직으로 부릴려는 회사를 손쉽게 놓아버리지 못한다. 빨대꽂고 사는게 편하다는 그의 동료 사원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재계약조차 흔하지 않은 세상이니까 더욱이 쉽게 놓지 못했을테다. 그러다 <스타트업> 3화에 저 스틸컷 장면이 나온다. 서달미의 활짝 웃는 얼굴은 바로 계약직의 쳇바퀴를 끝내고, 창업을 시작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회사를 떠날 때 나온다.
달미는 어떤 사람이냐. 잘만하면 정규직 전환을 해주겠다는 팀장의 말에 속은게, 아니 어쩌면 속아보려고 한게 2년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지는 않을거지만 놓치기는 아까운 사람이라서 계약직 재고용을 제안하며 "열심히 하면 선배들 곁에서 배울 수 있고~" 라는 말로 또다시 자신을 현혹하려는 팀장 앞에서 "열심히 하면요?" "그렇게 옆에서 배우면요?" 라는 말로 되받아칠줄 아는 사람이다. 근데 세상 이치에 밝은 듯 하면서도 모질게 손절은 못하는 타입. 결국 팀장이 제안하는 재계약을 그자리에서 단칼로 거절하지는 않는다. 컴플레인 투성이일뻔 한 매장에서 일 매출 신기록을 달성한건 모두 본인의 덕이었음에도 대놓고 '빨대 꽂는' 동료사원의 팔짱을 뿌리치지도 못한다.
그런 달미가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은건 한 순간이었다. 대표이사실을 물어보는 우편배달원에게 '32층 대표이사실을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다고, 이 엘리베이터는 16층까지밖에 못가서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고 알려주는 동료의 옆에 있었던 순간. 달미는 재계약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다 그 말을 듣고 재계약을 하지 않고 나가기로 결심한다. 당연히 달미가 재계약을 해줄줄 알았던 팀장이 끝내 정규직의 '정'자도 안꺼내고 자신을 마구 만류할때도 당당하게 말한다. 자기가 가고싶은 건 16층도 사무실도 아니고 저 꼭대기라고.
오랫동안 그 건물에서 일했던 달미가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 다만 그 순간에 그 사실을 흘려보내는게 아니라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을테다. 인생을 바꾸는 건 저렇게 사소하게 맞닥뜨리는 한 장면일 때가 많은 것 같다. 내 인생에도 그런 장면들이 있었고, 그럴때 모든 걸 포기하고 방향을 틀어버리는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알 것 같아서 서달미라는 캐릭터에 애정이 간다.
+ 드라마의 매력포인트: 너무 훈훈한 투샷. 아직 4화까지 밖에 보지 못해서 러브라인 서사를 다룰 수가 없어서 나중에 리뷰해볼 생각이다. 한지평(김선호)씨가 서브남주일수가 없는 사연이 가득하던데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샌드박스의 창업자인 윤선학과 샌드박스 시스템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