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리뷰
꽤나 직설적인 영화였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뉴스기사로 접한적이 있을, 탕비실에 혼자 덩그러니 놓인 책상. 근로자 스스로 버티지 못하고 사직을 하도록 만든다는 그 좌천의 방식부터, 지방의 전혀 관련 없는 업무의 작업장으로 발령을 내버리는 상황 모두 직설적이었다. 그렇게 그 직장을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고, 숨막히는 경쟁률을 뚫고, 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야근을 일삼았을 한 직원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그 직원이 정은(유다인)이다.
한편, 영화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직업을 통해 삶을 외줄타기처럼 영위해가는 하청업체 작업장 노동자들의 삶의 방식도 가감없이 담은 듯 보인다. 그들에게 서울의 본사에서 내려왔다는 정은은 어디서 툭 튀어나온 낙하산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일자리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여자다. 현장 일은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 본사에서 받고 내려왔다는 교육을 운운하는 말들은 그들에게 코웃음의 대상이다. 그 과정에서 남녀차별적 요소도 개입한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본사에서 정은에게 해준 교육은 없었고, 그 교육이라는 것은 아무도 없는 작업장에서 밤새 책을 읽으며 익힌 것이라는 걸.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무거운 장비를 들어 조립할 수 없고, 고소공포증이 있어 송전탑에 오를수가 없다는 것을. 그녀도 자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어거지로 버티고 있었으며,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절대 섞일 수가 없는 두 조합은 막내(오정세)가 내민 도움의 손길로 인해 변화의 국면을 맞는다. 영화에서 최고로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엔딩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만큼이나 막내가 정은의 두려움을 읽어내는 편의점 씬도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다른 이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끈을 놓지않는 사람들이 있다. 막내는 인생이 알바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두 어린 딸을 홀로 먹여 살려야만 하고, 누군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만큼의 여유는 당연히 없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그는 정은의 말을 유일하게 듣는만큼 반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감전사 추락사 등등 각종 죽음의 위기를 맞서고 송전탑을 올라야만하는 자신들만큼이나, 정은에게 해고라는 인생의 사망 선고가 버금가는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영화의 결말이 더욱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조금의 출구가 보일 것도 같았던 그들의 인생이 무참히 무너지는걸 고스란히 지켜보기만 해야하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무력한 만큼 관객들도 함께 무력해진다. 그런 상황속에서 마지막 장면의 정은이 올라가는 송전탑은 죽음과 가까워보였기에, 굳이 앞이 보이지도 않는 지금 그곳을 올라가려하는 모습이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기도했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해고될 지라도 나는 나를 해고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더이상 비현실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버려도 나만큼은 나를 버릴 수 없다. 정은에게도 누구에게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것이다.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말아야하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그려낸 영화. 담담하고 직설적이지만 친절하지는 않을 수 있다. 오정세, 유다인 배우를 비롯한 모든 출연진들의 연기가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송전탑을 담아낸 카메라와 음악의 시선이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