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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ug 23. 2023

내 '아지트'에 거미와 에일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Photo by Mike Benna on Unsplash



※ 해당 글은 첫 발을 떼기도 전부터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발행과 미발행의 여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음을 독자들께 미리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끝나지 않았고요. 내용은 평어체입니다.



그런 날이 있다. 



집 안에서 단 한 발짝도 꼼짝 하기 싫은 날



이른바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보다 더 격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말이다. 필시 그런 날은 "무기력"이란 녀석이 나와 레슬링 경기를 치르고, 그 와중에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지독하게 놓아주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런 날이 아니라면, 조그마한 정성과 부지런함만으로도 사계절을 오롯이 품을 수 있는… 예컨대 봄날에는 푸르름으로 옷을 입고, 여름엔 작열하는 태양을 향해 욕바가지를 퍼붓기도 하며, 가을녘엔 달큰한 바람으로 나를 한가득 채우니 결코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들며, 마침내 자신의 사명 마치고 헐벗은 본모습 드러내는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 있는 겨울에는, 왠지 “당신도 나처럼 그간의 발자취를 얼른 정리하라.”고 채근하는 듯한 광경이 펼쳐지는 그곳에 갈 수 있다. 난 그곳을 아지트로 삼았다. 



물론, 과거에는 그곳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산 날도 적지 않았다. 바로 직전에 기껏 '아지트'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래도 때로는 ‘여기만이 나 스스로 올 수 있고, 또 머물 수 있으며, 그리고 그렇게 꽤나 오랜 시간 머물러도 누군가는 나를 향한 걱정과 염려의 시선을 잠시나마 내려놓으실 수 있는 곳이 정녕 여기뿐인 건가.’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고민? 짜증? 혹은 염증? 아무튼 뭐라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 어려운 희뿌연 감정들이 뒤섞여있었다.



굳이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결은 많이 다르지만 왜 그렇지 않나. 아무리 좋아하는 반찬이라도 이틀 삼일 먹으면 질리는 게 인지상정이듯이… 그런 느낌이랄까.



(어쨌든) 그런 나만의 아지트는 풍문을 넘어 입소문까지 더해져, 몇 년 전부터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뭐, 원래도 진짜 내 건 아니었지만… 심지어는 지방에서조차 이곳에 들르려 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이곳엔 공연장도 마련되어 있어서 한여름 밤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게 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그리고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뮤지션들이 늦여름에 방문해 저마다의 실력과 퍼포먼스를 뽐낼 때면 귀 호강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단 두 번의 공연만을 대했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집 대문에서 그대로 엎어진 뒤 손과 발을 뻗어 온갖 몸부림을 쳐가며 쭉쭉 스트레칭을 해보면 정말 코가 닿을 법한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에누리 없이 딱 두 번뿐이다.



이왕지사 얘기가 나왔으니 그분들의 명단을 기억나는 대로 열거해 보고자 한다. (참고로 공연한 순서대로는 아니다.) 김범수 님, 윤종신 님, 정준일 님, 멜로망스 분들, 이승환 님, 김건모 님, 봄 여름 가을 겨울 밴드, 조덕배 님, 송창식 님, 김도향 님, 박혜경 님, 더 포지션 임재욱 님, 김창완 밴드, 그 외 내 조그만 기억력 탓에 잊힌 수많은 대단한 뮤지션 분들과 클래식 연주자 분들이 그간의 여름밤을 책임져 주셨다. 난 이 중 대부분을 놓친 셈이다. 기억을 더듬어 작성하다 보니 라인업 진짜 죽인다. 이렇게나 대단한 분들의 공연을 두 차례씩이나(?) 그것도 무료로 목도했으니 어쩌면 행운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함께한 공연보다도 이런저런 이유와 더불어 여러 구실로 인해 놓친 많은 공연들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많이 아깝다. 너무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특히나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은 지긋지긋한 코로나의 여파로 중단됐었는데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서 그끄제였던가…? 한여름 밤의 축제와도 같은 공연이 재개된 느낌이 들었다. 이는 단순히 나만의 촉이 아니었다. 지근거리에 있기도 하고 게다가 공연을 진행하면 늘 예외 없이 충만한 볼륨으로 진행되는 터라 늘 내 방 안 창문가 쪽으로 '쿵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하는데 그 소리는 분명 익숙한 공연의 풍경에서 비롯된 것이 확실했다. ‘어?, 다시 시작 됐나? 올해는 라인업이 어떻게 되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초록창에 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다른 분도 아니고 대체 불가의 가창력의 소유자인 거미 님과 또 에너지 넘치는 댄스 곡과 애절한 발라드를 넘나드는 뮤지션인 에일리 님이었다. 생각건대 필시 <어른 아이>,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You Are My Everything>, <기억 상실> 등의 노래와 또,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보여줄게>, <Heaven>, <Higher> 같은 곡들이 불렸을 텐데… 



아… 또 놓쳐 버렸네?! 이런!



사실은 공연 재개 소식도 늦게 알았을뿐더러,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의 상황…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파로 붐볐을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공연 재개 소식과 라인업을 진즉 파악했다 한들 성격상 내내 고민만 거듭하다가 결국엔 가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게다가 이건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올해부터는 무료가 아닌 유료 좌석 예약제로 전환되었다는 소식 역시 접했던 터라 더더욱 가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으리라 생각한다. 해서 비록 ‘또 놓쳤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지라도 후회는 없다.



많은 이들이 라이브와 음원의 차이를 비교하면 애초에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면서 차원이 다르다고 얘기하는 걸 일찍이 들은 바 있다. 나 또한 그 의견에 동의하며, 또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쉬워하는 측면도 분명 있으리라. 하지만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는 측면만 생각한다면 FLAC과 같은 무손실 음원을 통해 음악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무엇보다 이 글에서 그런 차원의 문제를 주제 삼아 얘기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이 글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작성하기까지는 어렵지 않았는데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솔직히 말하면 글의 업로드 자체를 거듭하여 망설였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기에도 정말 유치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부끄러운 모습과 세상에서 쉬이 찾을 수 없는 나약항 모습을 기록하면서까지 나누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비록 나는 먼지와도 같은 작은 일을 하나의 예로 들어 이야기를 꺼냈지만 솔직히 당신과 나… 우리는 지금 크고 작게 정말 많은 일을 해나가고 겪어가면서도 한편으론 또 수없이 놓치는 등… 얼마나 잦은 빈도로 후회와 한숨의 자국을 남기고 있나. 언젠가 한 번은 우연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후회란, 바보 멍청이가 하는 게 아니라 전심을 다해 살아온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이처럼 그럴싸하면서도 오글거리는 말은 누가 어디서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말과는 별개로 실제의 삶 가운데 후회를 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나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게 보이는지 모른다. 물론, 후회더러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으리라. 인정하기 싫지만 인생을 살아갈 때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 후회이기도 하니 말이다.



한데, 그렇게 후회할 땐 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꼭 해보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젊든, 혹은 늙어가는 중에 있든, 아님 이미 꼰대의 대열에 들어섰든 그 어떤 시간에 놓여 있든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번 일의 경우 나는 후회 대신에 혹여 있을 불안함의 불씨를 잘라냈다고 생각하는 중이긴 해도 (그리고 비록 내 나름의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는 하나) 불편한 몸을 가진 탓에 많은 경우의 내 모습처럼 소심하게 살지 말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부디, 오늘의 당신은 매일매일 결심의 한 발자국 걸어내기를… 혹여 남들은 다 무시해도 이런 말을 내뱉은 나만큼은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할 테니까. 본인도 어려워하는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것을 한켠에 진심 어린 미안함으로 간직한 채 글을 맺고자 한다.




Photo by Mike Benna on Unsplash

본문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기획 및 작성: 2023.08.19

1차 수정: 2023.08.19

2차 수정: 2023.08.19

3차 수정: 2023.08.20

4차 수정: 2023.08.21

5차 수정: 2023.08.22

최종 발행: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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