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Point로 소설을 쓰던 나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다시 펜을 들다-

by 니나

글을 써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문학소녀였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시를 배우기 시작하자, 운동장 흙냄새조차도 시의 재료처럼 느껴졌다.
친구가 던진 사소한 말 한마디, 창문 사이로 스며든 바람의 온도 하나에도 가슴이 쿵쾅거리던 시절.
세상은 글로 옮겨야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 덩어리 같았다.

글을 쓰고, 읽히고, 이해받고 싶었다.
대학도 철학, 심리학, 예술학 같은 길을 꿈꿨다.

그런데 나는, 정보학과에 진학했다.


현실을 선택했다. 그리고 살아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점, 나는 ‘살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실용적인 학문, 취업이 가능한 길, 안정적인 수입.
그렇게 나는 정보학과를 졸업했고, 자연스럽게 IT 컨설팅 회사에 입사했다.

야근은 기본, 주말은 선택이 아니었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마치며 고객에게 프레젠테이션을 올리던 어느 날, 동료가 농담처럼 말했다.
“야, 너는 진짜 PowerPoint로 소설 쓰는 사람 같아.”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이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정말 나는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
단지, 주인공이 ‘고객사’, 갈등이 ‘프로젝트’, 결말이 ‘성과보고서’일 뿐.


아이 둘을 키우며, 팀장이 되고, 나를 잃어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았다.
출산휴가는 너무 짧았고, 복직 후의 일상은 더 치열했다.
회의 중에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고, 밤새 아이가 아파도 다음 날 회의는 빠질 수 없었다.

팀장이 되었고, 프로젝트가 아닌 사람을 관리하게 되었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관계를 버티는 일이 더 힘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점점 무색무취해졌다.
기계처럼 적응하고, 버티고, 살아남는 게 일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다시 쓰고 싶어졌다.

슬며시 고개를 든 건, 오래된 기억이었다.
나도 모르게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잊고 있던 문학소녀의 감정이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그동안 잘 버텼어. 이젠 나를 좀 써보자.”


앞으로 쓰려는 이야기

나는 여전히 30년차 워킹맘이고, 여전히 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글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 싶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는
� 커리어와 육아 사이에서 생존하던 이야기,
� 팀장의 삶과 그 무게,
� 중년이 되며 맞이한 무기력과 회복,
� 그리고 다시 쓰기 시작한 나의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한 사람의 경험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괜찮아, 너도 쓸 수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할 것 같다.


긴 시간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다시 펜을 들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을 기대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