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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두부 Nov 27. 2020

1. 코숏에게 이 정도는 그냥 스웩이죠

고양이 일기 프롤로그


이게 고양이인지 돼지인지



 우리 집 고양이는 살쪘다. 집안에서 자라는 고양이 대부분이 살이 쪘지만 우리 집 고양이는 그중에서도 정말로 살이 쪘다. 많이 쪘다. 하지만 이게 나름대로 수년간 다이어트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파이와 스프가 3년 동안 뺀 몸무게를 합하면 약 7kg에 달한다. 다 자란 한국 고양이 평균이 3-5kg라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 집에서는 수년간 조금씩 고양이 두 마리 분량의 무게가 사라져 간 셈이다. 고양이 다이어트를 했다는 사람은 많아도 이 정도의 몸무게를 빼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애초에 그렇게 고양이 살을 찌워선 안 되는 것이었다는 걸 은근슬쩍 외면하며 쓸데없는 자부심을 안고 산다. 우리 집 고양이가 어떻게 왔고 어떻게 살이 찌고 어떻게 살을 뺐는지 꾸준히 육묘를 해온 내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한다.




 나는 고양이를 두 마리 기른다. 지금은 임시보호로 '홍시'라는 작은 삼색 고양이가 방 한 칸에 하숙을 살고 있지만 잠시 정식으로 입양된 파이, 스프 둘만 다뤄보려고 한다. 고등어 태비를 등에 업고 배가 희고 큰 고양이는 파이, 입가의 점이 매력적인 새카만 턱시도 고양이는 스프라는 이름을 가졌다. 컴퓨터가 부전공인 나는 처음 입양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컴퓨터가 전공인 친구에게 '제일 좋아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가 뭐야?'라고 물었고 친구는 잘 다루는 건 '파이썬'이고 잘 다루고 싶은 건 '리스프'라고 대답했다. 반려동물 이름을 먹을거리로 지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을 떠올리며 '파이'와 '스프'는 우리 집 고양이의 정식 이름이 되었다.



 가끔 다른 사람이 파이와 스프는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곤 한다. 구구절절하고 특별한 사연은 아니고, 현재 우리 집 고양이 주치의 선생님 표현에 따르면 '코숏에게 이 정도는 그냥 스웩'인 평범한 사연을 갖고 있다. 차가운 길바닥에 유기당하고 그걸 그대로 둘 수 없던 누군가의 관심으로 집을 찾게 된 고양이. 한국 고양이 중에서는 그럭저럭 운이 좋은 고양이였던 파이와 스프는 2015년 3월 16일과 17일 사이에 버려져 서울의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다. 이들을 지나치지 못했던 첫 구조자는 공원의 구석에서 고양이 밥을 챙겨주던 사람이었다. 




고등어 파이, 턱시도 스프




 골목에서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다 보면 많은 시비가 붙는다. 챙겨주는 사람이 주로 여성이 많아서 그랬을까. 사람들은 도둑고양이가 징그럽고 더럽다고, 울음소리가 거슬린다고, 쓰레기봉투를 뜯는다고 화를 낸다. TNR을 성실하게 하고 밥자리를 정돈하는 케어테이커는 오히려 저 단점을 없애주는 사람일 확률이 높은데도 언성을 높인다. '고양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항상 사람의 문제였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세하게 알아보거나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불필요한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참고 넘어갈 때가 종종 있었으니 첫 구조자님이 훤한 대로변이 아닌 공원 구석에서 고양이 밥을 주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인적이 드문 공원 안쪽에 고양이 급식소를 차려 몰래 밥을 주고 있었다고 생각하셨겠지만 누군가는 그분이 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 새끼 고등어 고양이가 수건으로 둘둘 말려서 고양이 급식소 주변에 버려진 것이다.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른 불쌍한 고양이도 잘 봐줄 것이라고 믿는 흔한 유기범의 행동이었다. 지금도 동물 보호소나 사설 쉼터 등은 주소지를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착한 사람에게 전달했으니까 이 고양이는 앞으로 괜찮은 삶을 살 수 있겠지? 나는 고양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학대하고 죽이는 동물학대범보다 다른 그나마 나은 사람이야.' 하는 놈이 무조건 꼬이기 때문에. 나쁜 새끼.




와기 파이, 그리고 파이를 보고 같이 울던 청소년 고양이




 고양이를 집으로 함부로 데려갈 수 없었던 구조자는 임시방편으로 박스에 고양이를 담아 급식소 주변에 두었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는 꼬물거리면서 어미를 찾아 우렁차게 울어댔다.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가던 다른 고양이도 불안해하며 덩달아 울었다. 칭얼대는 새끼 고양이와 이를 핥아주다 당황해서 함께 우는 청소년 고양이의 콜라보로 급식소는 다른 사람에게 들킬 위험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자리에서 연배가 동일해 보이는 턱시도 고양이가 또 발견되었다. 시간차를 두고 유기범이 한 마리를 또 버린 것인지, 처음부터 두 마리를 버렸는데 구조자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뒤늦게 발견된 스프는 혼자서 수건에 싸인 채 밤새도록 울며 차가운 봄비를 쫄딱 맞았다. 덕분에 감기에 걸려 오랜 시간 꼬질한 얼굴로 쓴 항생제를 삼키며 안약을 눈에 넣어야 했다. 나쁜 새끼2.



꼬질꼬질한 두 번째 고양이가 나타났다




  둘을 한 박스에 모아주니 함께 잠들어 울음소리는 조금 잦아들었지만 이제 이빨이 겨우 난 아주 작고 어린 고양이를 계속 박스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구조자는 인터넷에 입양 갈 때까지 잠시 고양이를 돌봐줄 임시보호처를 급히 찾기 시작했고 대학생인 나는 그 임시보호에 즉흥적으로 자원했다. 왜 즉흥적이라고 표현했냐면, 나는 용돈과 비정기적인 수입으로 원룸에서 혼자 자취하던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불안한 입양처였으며 경험이 많은 구조자라면 보내지 않았을 그런 점수 낮은 신청자였다. 내가 구조자였어도 방학이나 졸업 후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는 핑계로 고양이를 유기하고 가기 쉬운 대학생에게  입양을 보내는 건 오래 고민해봤을 것이다.


  당장 고양이를 입양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내게도 고양이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준다면 거절하지 않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양이 관련 게시판을 떠돌던 나는 파이스프가 임보처를 찾는 글을 오래도록 만지작거렸다. 이틀간 다른 입양처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글을 몇 번씩 새로고침 했고 결국 고등어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며 강의를 듣다 말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나를 원룸에서 혼자 사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며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우선순위로 해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그분은 내가 믿음직스러웠는지, 아니면 그런 조건을 재고 따지기엔 너무 급하고 안쓰러운 상황이었는지 흔쾌하게 내게 입양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그럼 턱시도 아이는요? 그분의 빠른 결정에 갑자기 나도 마음이 넓어지며 내 미래를 바꿀 즉흥적인 두 번째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럼 제가 둘 다 데리고 가서 입양 홍보를 진행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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