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일기 2 고양이 두 마리가 집에 왔다
당시 나는 지방에 거주 중이었고 파이와 스프는 서울에서 구조되었기 때문에 구조자와 약속을 잡고 서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잠을 자는지 조용한 이동장을 사이에 두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우리는 카페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내게 커피를 사주셨고 나는 고양이도 보내시면서 커피까지 사주시다니 정말 감사하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또한 이후 임시보호와 입양 보내기를 반복하며 입양자에게 살 기회가 생기면 자발적으로 커피를 사주기 시작했다. 입양의 무게에 비하면 커피는 오히려 싸게 먹히는 방법이었다! 다른 분 표현대로 입양자는 임보자와 구조자의 '은인'이다. 우리는 굳이 길에서 누군가의 책임 아래에 두어야만 하는 생명을 건져 올렸고, 그 업보를 마지막까지 책임져주는 고마운 사람이 바로 입양자인 것이다.
발톱 관리가 어려운 길고양이를 돌보면서 강제로 흉악해진 양팔이 인상적이었던 그분은 계약서 한 장 없이 파이스프를 내게 안겨 보냈고, 나는 구조자의 이름도, 연락처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 흔한 책임비조차 없었다. 이 고양이를 구조해서 입양 보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주먹만 한 고양이를 대책 없이 살을 찌워놓았는데 그걸 옆에서 못마땅하게 지켜볼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카페에서 내내 조용히 있던 파이와 스프는 고속버스 이동 도중에 슬그머니 잠에서 깼는지 조금씩 울기 시작했다. 우렁찬 소리에 비하면 작은 소리였지만 워낙 조용한 고속버스라서 항의가 들어올까 불안했다.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서 안에 잡히는 아무 덩어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자 울음소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 중 누군가가 내 손가락을 열심히 빨았다. 누가 누군지 분간도 안 가는 두 덩어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그렇게 집으로 왔다.
밖에서 아무 안전장치도 없이 이동장 문을 열어서 손을 집어넣다니.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다. 고양이가 실수로 튀어 나갔다가 버스 안쪽으로 들어가 잡기 어렵게 되거나, 택시 운전사 발밑으로 들어가 사고를 냈을 수도 있었다. 고알못이 즉흥적으로 입양한 덕분에 우리 집 고양이는 정말 큰일 날 수도 있는 상황을 수없이 넘기고 살아남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예상보다도 더 작은 고양이 두 마리가 나를 반겼다. 한 마리는 입양이고 다른 한 마리는 임시보호라 입양 홍보 글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은 이동장 문을 열자마자 사라졌다. 첫날부터 가만히 앉아있는 내 품 안을 마구 비집고 들어와 골골거리며 잠든 철면피 파이와 다르게, 스프는 꼬질한 얼굴에 파이에게 치이면서 소심하게 다가오는 작은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못생기고 소심해서 입양 갈 수 있겠어? 그냥 내가 둘 다 기르지 뭐. 내가 귀찮고 그냥 고양이를 둘 기르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겠지만 당시에는 꼬질하니까 내가 품는다는 착각에 푹 빠져있었다. 잘 몰라도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입양하는 게 딱히 큰 문제는 없겠지. 인터넷을 보니 다들 몇 마리씩 많이 키우던데. 오히려 내가 덜 놀아줘도 둘이 잘 놀고 돌아다니고 같이 자니까 일손을 더는 게 아닐까?
그냥 너네 둘 다 우리 집 고양이 해라. 스스로가 불러온 행복한 재앙이었다.
"고양이 기르시는 분들은 어째 고양이가 점점 늘어나더라고요." 예전에 잠깐 다녔던 병원 수의사가 한 말이다. 2019년에 로얄캐닌 사에서 의뢰한 한국 반려동물 현황 및 건강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2묘 이상 기르는 '다묘 가정'의 비율이 4년 전보다 약 45%가 늘었다고 한다. 고양이가 또 다른 고양이를 부르는지 길 위의 생명을 내치지 못하고 데려오면서 슬그머니 둘째, 셋째가 추가되는 집이 한 둘이 아니다.
'다묘 가정'을 위한 전용 책이 나올 정도로 고양이를 여러 마리 기르는 분이 많지만, 사실 잘라 말하면 두 마리 이상의 고양이를 각자의 취향과 성격에 맞추어 개별적으로 관리해주려면 품이 아주 많이 든다. 그저 단순히 밥그릇을 하나 더 놓고, 화장실 감자를 몇 개 더 캐고, 같은 수준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늙어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관리를 요하는 미래를 상상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행복한 재앙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고양이를 두 마리 입양하려면 두 배의 책임감이 아닌 네 배의 책임감이 필요했다. 나는 그런 부분은 잘 모른 채 대뜸 두 마리를 업어와버렸다.
당시 내가 고알못이던 시절에도 인터넷엔 다묘 가정 그게 뭐가 좋은 거라고 찬양하고 있냐며 훈계를 늘어놓는 사람이 있었다. 동반 입양 함부로 부추기지 마라. 밥이랑 모래값이 정직하게 두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훨씬 많이 들며, 고양이 개별의 복지를 챙겨주기 어렵고 나중에 한꺼번에 아프면 고생할 거다. 기르는 비용이 몇 배나 훌쩍 늘어날 텐데 그냥 두배만 늘었다면 네가 고양이 잘못 키우고 있는 거니까 정신 차려라. 남초 사이트의 흔한 훈계조 어투와 비하 용어로 댓글에선 큰 싸움이 벌어졌던 것을 기억한다. 말투가 강하고 부적절해서 문제였지만 내용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면이 있었다.
지레 찔려서 수년이 흘러도 동반 입양을 권유할 때 일부러 밥값은 2배, 모래값은 3배, 말썽은 4배라는 농담을 슬쩍 붙이곤 했다. 내겐 비만 고양이를 부추긴 업보도 있지만 이걸 알면서도 단지 두 고양이가 어울리는 모습이 사람 보기에 귀엽다는 이유로 동반 입양을 긍정적으로 부추긴 업보도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은 동반 입양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할 단계가 오지 않았기도 하다. 성격과 입맛은 조금 달라도 덩치와 체질과 나이가 유사하니 관리 난이도가 상승하는 경우도 아니다. 워낙 비슷한 고양이가 두 마리 있는 게 당연한 일이라 늘 묶어서 생각하는 습관이 들어 병원 주치의 선생님께 둘은 다른 고양이니까 각각 따로 관리해야 한다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딱 한 번, 내가 동반 입양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파이와 스프가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은 이후 신부전에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일본 신약에 대해 알아볼 때 그랬다. 원래도 의료보험이 없어 사람에 비해 체감 가격이 비싼 게 동물 약이지만 정식 수입이 아니라 병원 수의사가 개인적으로 인맥을 통해 들여오는 약이라 더 비싸게 느껴졌다. 비싼 약값에 체중이 많이 나가는 고양이니까 몇 알을 더 곱하고 두 마리니까 둘을 더 곱하니 매달 25만원 정도 되는 약값이 나왔다. 무조건 지불해야 한다면 내는 게 불가능한 금액은 아닌 것 같아도 치료도 아닌 현상 유지를 위해 충분히 증명되지 않은 약에 그 정도의 비용을 평생 지불할 순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생각했다. 내가 그때 한 마리만 데려왔다면 한 달에 10만원 정도는 지불하겠다고 결정했을까? 수치로만 존재하는 질병과 투병 같지도 않은 투병을 하며 동반 입양의 무게를 처음으로 맛본 날이었다.
더 큰 투병을 준비하면서 가끔은 내가 동반 입양을 후회할 미래가 올까 두려워하곤 하지만 어쨌든 최대한 후회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동반 입양은 참 장단점이 명확한, 아주 무게감 있는 입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