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일기 3 고양이 사진은 원본 카메라로 찍으세요
고양이는 정말 순식간에 자란다. 한참 우다다하고 뛰어가다 멈춰서 재채기를 할지언정 깨발랄과 말썽을 멈추지 않고 쑥쑥 자라났다. 파이와 스프는 너그럽게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한 보호자의 손을 잘 견뎌주었다. 나는 수년간 각종 고양이 글을 눈팅하며 고양이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사람들이 인터넷에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구조한 고양이가 진동하듯 덜덜 떨고 있는데 추워하는 거냐고 걱정하듯 묻는 글을 보며 깔깔 웃었지만 어느샌가 나도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가 모래를 주워 먹을 때는 어떻게 해요? 파이가 스프를 집요하게 핥아주면 스프가 오줌을 싸는데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요? 코 주변에 뭐가 묻었는데 왜 이렇게 안 닦일까요?
뭔가 묻은 줄 알고 물티슈로 수시로 닦아주던 얼룩은 점이고 입술과 입안에 있는 얼룩도 점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고양이에 대해 조금씩 진짜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동물병원에서 처방해준 비싼 바이랄리스겔을 억지로 먹이다가 엘라이신이 고양이 감기(허피스)에 효과가 실제로 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는 자료를 몇 차례 보며 수의사가 하는 말을 듣고 제대로 판단을 내리려면 보호자가 공부해야 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서툴게 남겨진 옛날 사진을 보면 그때의 서툰 기억이 생각나 아직도 아쉬울 때가 있다. 심지어 콧물로 얼룩덜룩한 스프 얼굴을 기록으로 남기면 다른 사람에게 고양이 관리도 못 한다고 욕을 먹을까 봐 괜히 스프를 덜 찍기까지 했단 말이다. 스프가 본격적으로 사진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땟국을 벗고 감기가 점점 나아갈 무렵이다.
어느 날엔 하얘진 스프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자 댓글에서 보통 미묘가 아니라는 칭찬이 쏟아졌었다. 그제야 멀끔해진 스프 얼굴이 바로 보이고 스프 사진 기록에 자신감이 붙었다. 완전히 성장한 다음에 인간과 함께 살게 되어 유년시절의 기록이 없는 고양이들 앞에서 배부른 소리로 보일까 봐 조용히 이리저리 흔들린 사진을 수시로 꺼내 보며 한탄을 한다. 그리고 유행하는 필터는 대체 왜 넣었는지. 화질만 괜히 나빠지고. 이 육묘팁만큼은 자신 있게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 사진 찍는 것이 어려우면 영상으로 남겨서 캡처하세요!
정작 먼저 입양을 생각한 것은 파이였지만 나의 관심을 주로 차지한 건 늦게 발견되어 감기가 조금 더 심한 스프였다. 밥을 먹는 속도가 느려 자꾸만 간식을 빼앗기는 것도 스프였고, 수시로 재채기를 하며 내 얼굴에 미스트를 분사하는 것도 주로 스프였고, 뒤뚱거릴 때마다 꺾인 꼬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도 스프였고, 파이에게 쫓기며 등이라도 물린 날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도 스프였다.
지금도 스프는 파이보다 약 1kg 정도 더 작은 체중을 갖고 파이보다 덜 적극적으로 사는 고양이다. 그래서 파이가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등 뒤로 스프에게 몰래 간식 한알을 챙겨주곤 했다. 파이는 알아서 잘 챙겨 먹고 사랑도 잘 쟁취하니까 파이 모르게 스프에게 더 챙겨주는 게 균형을 맞추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그런 차별적인 태도가 불안감을 자극하여 더 밥을 빼앗아먹고 경쟁을 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후의 일이다.
다들 유리로 만들어진 듯한 고양이 장기를 보며 개탄하곤 하지만, 내가 아는 고양이는 생각보다 강인한 동물이다. 정말 가망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고비를 넘기고 삶을 유지해나갔다. 현대 의학으로 어쩔 수 없는 전신성 질병도 있지만 여전히 회복이 어려워 보이는 상처를 입어도 어느샌가 살아남아 과거의 일로 만드는 고양이가 많았다.
그렇게 중한 사고에서도 살아남는 고양이 사이에서 고양이 감기(여기서는 허피스)는 참 별것 아닌 병이다. 매번 노랗고 쓴 항생제 가루를 캔 국물에 개어 먹였지만 아마 항생제를 챙겨 먹이지 않았어도 실내에서 잘 먹고 잘 자는 파이와 스프는 건강하게 털고 일어났을 것이다. 서툴게 안약을 다 흘리며 넣어도 고양이 눈에 흐르는 눈곱은 점점 줄어들고 얼굴은 말끔해져 갔다.
강인해 보이던 길고양이가 별것 아닌 감기에 스러져가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영양공급이라도 잘 되었으면 몸이 맞서 싸워 그 정도로 심해지지 않았을 텐데. 누가 눈가를 살짝이라도 닦아줬더라면 눈곱이 말라붙어 눈을 뜰 수가 없고 앞을 보지 못 하는 사이에 안구가 녹아내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누가 콧물을 살짝이라도 닦아줬더라면 코가 막히고 후각과 미각을 상실해 입맛이 떨어져 밥을 못 먹고 영양실조로 병이 더 악화되지 않았을 텐데. 허피스 바이러스 외 역시 고양이 감기 바이러스인 칼리시 바이러스는 해당 증상과 동시에 입안 염증까지 번져 영양공급을 더욱 어렵게 했다. 열악한 도로 위에서는 작은 병도 방치하면 큰 위협이 되었다.
후에 감기에 걸려 목이 쉰 새끼 고양이를 보다 못해 어미 품에서 납치해서 구조하기도 했다. 어미가 한참을 맴돌며 새끼를 찾으며 구슬프게 울길래 지금은 저래 보여도 파이와 스프처럼 잘 이겨낼 수 있겠지 싶어 돌려보냈고, 며칠 뒤 죽은 새끼를 다산콜센터에 신고하며 오랜 시간 후회해본 적도 있었다. 그렇게 감기를 이겨낸 고양이와 살자 얼굴이 지저분하거나 콧물을 훌쩍이며 상부 호흡기 질환이 육안으로도 관찰되는 고양이 사진은 지나치지 못하고 잘 먹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댓글을 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함부로 책임지고 개입해 치료할 순 없겠지만 작은 관심 정도는 어떻게 안 될까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