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두부 Jan 15. 2021

지구에서 2.97kg도 잃을 수 없다는 마음

(외전) 고양이 임보일기


"아시다시피 고양이는 사람도 잘 못 알아보고 고마운 줄을 몰라서요. 수술을 해도 별로 의미가 없어요."


서울로 올라오기 전,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임시 보호 봉사를 자주 했다. 서울은 그나마 사람이 많고 고양이를 기르는 가구가 많아 임보처가 비교적 금방 구해지곤 하는데 지방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임보처가 구해지길 간절하게 바라며 새로 고침을 하지만 늘 며칠 만에 내 차례가 오곤 했었다.


 그렇게 학생들이 이미 실컷 만져봐서 어미에게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새끼 고양이를 수유하다 입양 보내고, 편의점에서 사람을 잘 따르던 엄마가 차에 치어 죽은 이후 갈 곳이 없는 새끼 고양이 삼 남매를 하나씩 좋은 곳에 입양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길고양이를 보호소에 보낸 것을 깊게 후회하며 다시 데려오고 싶으니 임보처를 찾고 있다는 글을 만났다. 괜히 신경 쓰여 몇 시간 동안 새로고침을 하다가 또 임시보호에 자원했다.



 한국에서 운영되는 동물 보호소는 대부분 상황이 열악하다. 본인과 봉사자를 갈아 넣고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며 몇십 마리 만을 위해 운영되는 사설 보호소와는 차원이 다르다. 멀쩡하던 고양이도 공고기간을 기다리는 동안 전염병에 걸려 순식간에 건강이 악화되고 자연사하는 곳이었다.


 동물을 '보호'한다는 이름과 다르게 보호소는 전혀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런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길에 있는 고양이가 불쌍하다며 전화해 동물 보호소에 보낸다. 보호소에서 잘 씻기고 치료해서 따뜻한 가정에 입양 보내주길 바라면서.


 보호소에 들어와서 입양에 성공하는 경우는 생각보다도 더 적은 비율이다. 포인핸드나 검역본부에서 정리한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들어오는 동물 중 약 절반 정도가 자연사나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강아지보다 고양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심지어 2018년 서울시에 등록된 유기동물 자연사 비율을 보면 강아지는 4%, 고양이는 45.3%다. 강아지에 비해 봉사자의 이해도가 떨어지기도 하고, 새끼 고양이가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란다.


 통계가 아니라 간단하게 생각해도 보호소처럼 바쁘고 열악하게 돌아가는 곳에서 고양이를 개별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아프거나 나이가 많거나 사나워서 입양 갈 확률이 낮아 보이면 안락사 1순위 대상이 된다. 교통사고가 난 고양이나 아직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새끼 고양이는 대부분 죽는다.


 차라리 안락하게 떠날 기회라도 주어지면 다행인지, 유기동물 보호 기간 동안 지급되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무의미한 고통만 받으며 공고 기간을 기다리다 자연사하는 고양이도 많았다. 보호소에 신고해 고양이를 보낸 사람은 친절하게 저승으로 안내해준 저승사자 역할만 하고 만 것이다.


 그 글을 올린 분도 그 사실을 잘 몰랐다고 한다. 치료해서 보낼 줄 알고 보내준 보호소가 그런 곳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당장이라도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오고 싶다고 임보처를 찾는 글을 썼다. 꾸질한 1.6kg의 회색 고양이. 고양이는 앞발을 사용하지 못해 아마도 골절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큰 병원비가 예상되는 고양이였다. 



애경 종이박스에 담겨 구조되어 애경이


 꼬질한 고양이를 변신시켜본 사람은 안다. 공고 사진을 보면 고양이가 잘 먹고 돌봄을 받아 얼마나 변할 수 있을지 겹쳐서 볼 수 있다. 꼬리가 동글동글 귀엽게 뭉쳐있었고 땟국을 벗고 새 털이 나면 예쁜 얼굴이 나올 것 같았다. 털이야 씻기면 되고 눈곱 등도 감기나 결막염 같은 가벼운 병 때문이지 치료 난이도는 어렵지 않았다. 양쪽 눈 색이 다른 오드아이라고도 했다.


 너는 버려진 새끼 품종묘구나. 동물을 구조할 때 품종묘 특성을 확실하게 지닌 고양이에게 도움이 더 쏟아지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어쨌든 속으로 치료만 해내면 입양길은 문제없다는 생각을 하며 임시보호에 자원했었다. 


 지방에서도 조금 더 논두렁 한가운데로 멀리 나가야 있는 보호소. 자동차가 없는 구조자와 임보자인 나 사이에 이동봉사를 자원해주겠다는 사람까지 금방 나타났다. 어차피 나올 거라면 한시라도 더 빨리 나와야 하므로 서둘러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다.


 내일 안락사 예정인데 굳이? 보호소는 회의적이고 방어적이었다. 다른 건강한 고양이가 많은데 왜 굳이. 공고기간도 지나지 않았고 아프고 앞발도 못 쓰는 고양이를 왜 굳이 데려가냐는 질문에 나는 이유가 필요하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먼 길을 달려가 만난 보호소 소장도 툴툴거리며 그놈의 '왜 굳이'를 되풀이했다. 자기가 수의사라서 잘 아는데 고양이는 '아시다시피' 주인을 잘 몰라보고 고마운 줄도 모르는 동물이지 않느냐. 골절 수술을 해봤자 말을 듣지 않으니 맘대로 돌아다녀서 뼈가 잘 붙지 않을 것이다. 비싼 돈 주고 수술해도 계속 덧날 거라 무의미하다. 학생 지금 몇백만원이나 주고 수술할 돈 있어? 없으면 지금이라도 다른 애로 데려가도 돼. 젊은 여자 둘이 찾아왔다고 은근슬쩍 반말까지 섞여 나오는 중년 남자 소장은 모든 책임은 일체 내가 진다는 각서를 쓰게 하고 난 뒤에야 보호소 안쪽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보호소에서 막 나온 애경이



 보호소 봉사자는 오늘 안락사 예정이었는데 오신다길래 따로 빼두었다며 배변패드에 아주 작은 고양이를 싸서 데리고 왔다. 며칠밖에 안 지났을 뿐이었는데 그 사이 고양이는 공고 사진과 임보처 글에 나온 사진보다 훨씬 악화되어 있었다. 웅크린 채로 눈곱을 닦아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서 그대로 말라붙은 두 눈을 감은 상태였다.


 미지근하고 차가웠으며 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고양이는 얼굴을 드러내자마자 고개를 고정하지 못하고 위아래로 덜덜 떨기 시작했다. 쇼크라도 온 듯했다. 곧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고양이를 품에 안고 한달음에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었다.


 그래서 애경이는 공고 사진에 종료(안락사)라고 붙어있다. 안락사가 예정되어 이미 전산상으로 입력이 완료되었지만 바로 직전에 어디선가 나타난 두 사람이 데려가 집에서 자연사한 고양이. 애경이 이후 그 수많은 공고 속 국화꽃 중 누군가는 전산 입력이 끝난 이후 구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품었다. 천 마리, 아니면 만 마리 중 한 마리 정도는 그렇지 않을까 하고. 



스트레스 때문에 씻기지는 않고 쬐애애끔만 뽀얘진 애경이



 이후 이야기도 역시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골절만 치료하면 될 줄 알았던 고양이는 건식 전염성 복막염을 앓고 있었다. 오드아이인 줄 알았던 두 눈은 복막염 영향으로 생긴 포도막염이었다. 이 정도 포도막염은 복막염이 아니어도 고양이 백혈병 등 심각한 전신질환이 원인일 거라 어차피 예후가 불량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골절된 팔도 엑스레이상에서는 멀쩡했고 역시 복막염으로 생긴 신경손상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작은 체구에 어린 줄만 알았던 고양이는 의외로 제대로 된 송곳니를 가지고 있어 성묘라는 것도 밝혀졌다. 당시 겨우 한 살을 채운 파이스프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많을 수도 있었다. 배 안이 밥으로 꽉 들어찼지만 복막염으로 장이 영양소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그냥 빠져나가기만 하는 중이라 살이 찌지 않고 성장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안락사를 피해서 보호소를 빠져나왔는데 또다시 안락사 권유를 마주했다. 그때는 복막염 치료제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복막염 투병기는 결국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글과 실은 복막염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살아났다는 글 두 가지뿐이었다. 이대로 데리고 들어가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염되어 집에 있는 고양이에게 복막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0%가 아니라는 말까지 들었다.


 천 마리 중 세 마리의 지극히 낮은 확률이겠지만 굳이 처음 보는 고양이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냐며. 나는 추운 1월 안락사를 고민해보겠다며 병원 앞 벤치에 앉아 몇 시간을 떨었고,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냥 고양이를 데리고 가겠다며 팔이 떨어지도록 수액팩을 쳐들고 이동장을 들어 집으로 향했다.



 복막염이 오진이진 않을까 온갖 병원을 돌면서 복막염이 맞냐고 물어보고 다녔지만 어딜 가든 대부분 복막염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심지어 일부 병원은 얼마 전 구조된 애라고 하자 굳이 추운 겨울에 스트레스 주지 말라고 검사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약 처방은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고양이는 그냥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우리 집에서 밥을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근데 정말로 오독오독 맛있게 먹기는 했다.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되짚어보니 나의 행동이 순 의문투성이였다. 왜 굳이? 보호소에는 입양처를 기다리는 수많은 다른 고양이가 있고 어차피 임시보호를 한다면 최대한 입양 확률이 높은 건강한 고양이를 데려오는 것이 이치에 맞아 보였다. 그때 안락사를 당하든 우리 집에서 몇 개월을 지내다 가든 무언가 크게 바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 손길을 즐기지도 않고 나와 친하지도 않는 고양이의 삶이 몇 개월 더 연장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나는 그렇게 우겨서 고양이를 보내지 않고 지구에 붙들어놓았을까.



파이를 좋아하는 애경이



 1.6kg의 작은 애경이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우리 집 방 한켠에서 지구 여행을 마무리 짓고 떠났다. 왜 굳이? 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한동안 '착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대학 졸업반이자 취직을 앞둔 수험생이었다. 중요한 부분을 표시해놓은 포스트잇을 쏙쏙 뽑아내는 파이와 스프를 떨쳐내고 공부하면서 합격을 꿈꿨다.


 내가 바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 그 카르마가 좋은 영향으로 돌아오리라 무의식적으로 믿은 것은 아니었을까. 막연하게 추측해보곤 했었다. 그 이후 나는 임시보호를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수년 뒤 내게 홍시가 왔다. 부산에서 구조되어 전발치 수술을 받고 다른 임보처에서 지내다가 아주 먼 길을 돌아 서울에 사는 나에게까지 왔다. 또 나름의 사연을 품은 스웩 넘치는 코숏, 또 누군가가 차마 보내주지 못하고 기어이 일곱 자리는 할 발치 수술비를 들여 지구 위에 단단히 붙들어놓은 고양이였다.



까꿍!


 나는 이기적이지만 임시보호에 자원하기 전에 항상 막내로 눌러 앉히지 않을, 입양 확률이 높아 보이는 경우에만 자원한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있다. 그것도 같은 지역구의 아이들만 데려오기로 나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에는 너무나 많은 고양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한국 어딘가에서는 국가가 방관하는 사이 애완동물로 팔려나갈 새끼를 낳기 위해 고양이가 임신을 반복하고 있고, 어딘가에서는 학대당하거나 아픈 고양이가 구조되고 있다. 모든 고양이를 구조할 수 없는 내가 나와 파이스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선을 긋고 다짐한 두 약속이었다.


 홍시는 정말 솔직히 말하면 그 두 가지 약속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 고양이다. 아픔이 있고 순화가 되어 있지 않아 입양 난이도가 높았고 우리 집에서 가깝지도 않아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날아왔다. 지금 나는 딱히 바라는 목표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언가 '착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홍시를 돌보는 몇 개월 동안 나는 그때의 '왜 굳이?'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내 마음만 복잡했을 뿐 홍시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적극적으로 집을 탐색하고 쑥쑥 적응해나갔다. 격리한 첫 주부터 대뜸 캣타워나 책상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그루밍을 했고, 나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은근슬쩍 주변에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파이랑 스프를 무척이나 좋아해 마구 다가갔다가 하악질을 받고 쭈글쭈글 물러나도 포기할 줄을 몰랐다. 화장실도 골고루 사용하고 캣휠까지 맛보기로 건들더니 낚싯대를 보자 날아다니기까지 했다. 

      



 이빨이 없는 것쯤이야 자연에서는 몰라도 집 안에서는 아무런 문제를 겪지 않는다. 음식을 먹는 데 지장이 없고 오히려 매일 귀찮은 양치를 안 해도 되며(...) 어려운 케어를 할 때 물릴 걱정을 덜 수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 구내염은 발치로 염증이 가라앉아도 언제 어떻게 재발할지 모르는 병이다. 실제로 홍시는 임보 도중 목 안쪽 염증이 다시 살아나 체중이 줄어들고 입가에 침 자국을 남겼다.


 고양이가 없거나 적은 초보 보호자에게 입양되기에는 돌봄 난이도가 조금 높았고, 돌봄 난이도를 해소할 수 있는 경력 많은 보호자 집은 대부분 포화상태이다. 큰 수술을 버틴 삼색이를 예뻐라 하는 집에는 이미 그런 식으로 하나둘 눌러앉은 고양이들이 가득해 막내 자리가 없을게 분명했다.


 설상가상으로 홍시는 중간에 간 문제도 터졌다. 고양이 구내염은 입에 염증이 생겨 음식 섭취를 어렵게 한다. 가뜩이나 먹을거리를 구하기 힘든 길에서 입 안 염증까지 겹치면 영양실조에 걸리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오랜 기간 굶은 이후에는 간 문제도 생기기 시작한다.


 홍시도 역시 지방간 병력이 있는 고양이로 밝혀졌다. 엑스레이상에서 보이는 간 크기도 상당히 비대해진 상태였고, 초음파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낭종이 발견되어 초음파를 아주 잘 본다는 용한 남수의사를 찾아가 보여주기까지 했다.


 간 보조제를 한 아름 처방받아오고 그제야 발치 수술 전 혈액 검사지를 꺼내 들고 홍시의 간 수치를 살폈다. 홍시는 이미 발치 수술을 받기 전부터 간 상태가 무척 안 좋은 고양이였다. 마취도 위험하다고 수술을 미뤘을 혈검지였지만 수술을 안 하고 못 먹다가 죽느냐, 수술을 버텨내고 간 관리를 해주느냐의 갈림길에서 병원은 어려운 수술을 감행하는 선택을 내렸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나서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르는 동안 홍시의 간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나빠진 상태로 내게 온 것이지만 괜스레 아픈 아이를 먼 길을 오게 하고 고생을 겪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다.





 나는 임보는 임종까지 보호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길에 살던 동물을 사람의 책임 영역으로 들어놓은 순간부터 누군가는 평생 그 고양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채무가 생긴다. 그런 말을 하는 자기들은 그런 책임을 지지 않을 거면서. 임시보호라도 하려고 나선 봉사자에게 네가 그 채무를 그냥 다 짊어지라고 하는 것은 아주 질 나쁜 농담이다. 어떻게든 입양을 보내려고 애써보다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임시보호에서 입양으로 전환되는 고양이를 보면 반가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입양길에 부정 탈까 봐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 입양 홍보 글에 홍시의 건강 상태를 적으며 홍시는 결국 우리 집 막내로 들어올 것이라고 스스로 직감했다. 기적이 일어나 사람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성격으로 바뀌면 모를까, 사람을 싫어하는 고양이를 입양 홍보하자니 의욕이 나지 않아 한동안은 글을 뜸하게 올렸다. 본격적인 입양 홍보를 하더라도 순화 이후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임시보호 전에 혈액 검사지를 꼭 읽어보고 결정할 거라며 서글픈 농담을 던지는 내게 구조 경력이 아주 굵은 두 언니는 그게 마음처럼 되는 일이 아니라며 농담을 받아주었다. 상태 좋은 고양이를 구조하는 것도 복이라고. 임시보호처를 찾는 중인데 혈검지가 있는 경우도 드물다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보통은 '여기 고양이가 있어요!' 하고 그 어떤 기본 건강검진도 해주지 않은 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도망가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제일 많지.



 막연하게 홍시의 몇 년을 함께할 각오를 하고 있던 내게 정말 예상할 수 없는 일이 터졌다. 몇 번의 구토 이후 활력이 저하되었길래 사료 알레르기나 배탈 정도를 의심하고 방문한 병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튀어나왔다. 홍시의 간이 혈액을 응고하게 만드는 인자를 충분히 생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추후에 혈액 응고계 검사를 해보니 혈액이 응고되는 속도가 정상보다 두배 넘게 느렸다.


 실제로 사람 만성 간 질환 환자의 약 20%가 지혈 장애로 생긴 출혈 때문에 사망한다고 한다. 홍시도 똑같이 간 질환을 앓다가 지혈 장애라는 합병증이 생겨 장기 어딘가에서 계속 피가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체온 올리는 중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33도라는 매우 낮은 체온, 혈압계로는 측정되지도 않는 낮은 혈압, 조금씩 찌고 있는 줄 알았지만 도로 빠져서 2.97kg라는 체중, 어딘가에서 출혈이 지속되어 그동안 배에 차오른 복수라며 주사기 가득 뽑힌 혈액. 지난밤까지만 해도 나에게 용맹하게 주먹을 날리던 홍시는 저혈량 쇼크로 고개조차 가누지 못해서 검사도 수시로 중단해야 했다.


 눈만 겨우 떴다가 감을 뿐 아무 반응 없는 홍시와 검사 기계 한계치인 1000을 새빨갛게 초과하여 측정되지 않는 간 수치를 들고 나는 또다시 선택지와 마주했다. 이대로 홍시를 편안하게 보내줄지, 아니면 무엇이라도 시도해볼지.


 막막했다. 병원에서는 체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배를 열어 어디서 출혈이 지속되는지 살피고 지혈하는 수술을 권했지만 어차피 간이 나빠서 혈액이 응고되지 않는 이상 언제든지 또 일어날 일이었다. 수술과 수혈 둘 다 회의적이었다. 입원비와 수혈비까지 합해서 대략 450만 원은 들 것이라는 수술 비용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병원은 이미 묻지도 않은 혈액형 검사를 마치고 마침 응급용으로 남겨둔 A형 피가 있다며 수혈을 대기하고 내게 의견을 물었다. 나는 대략 70-80만 원이나 들어가는 큰 금액을 감수하고 수혈을 하는 것에 회의적인 상태로 홍시를 처음 구조하신 분께 의견을 물었다. 그분은 고민하시더니 수혈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것이 홍시를 지구 상에 또다시 붙들어 놓은 두 번째 중력이었다.


      



 수혈로 겨우 고비를 넘기고 체온이 조금 올랐지만 홍시는 여전히 의식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매섭던 눈빛도 사라지고 입원실에 힘없이 누워 내가 만져도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공혈묘 문제도 심각하고 고양이 혈액은 구하기 힘든 귀중한 것인데 조금이라도 더 '살 확률'이 높은 고양이에게 가야 하는 것을 괜히 낭비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병원에서는 혈당도 심각하게 떨어졌으니 코와 위를 연결하는 관(비위관)을 꽂아 음식물을 주입하자는 의견을 냈다. 나는 이번에도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아닌지 고민을 해야 했다. 병원과 의사소통이 느려 병원에선 먼저 비위관을 달아주고 밥을 주고 있었고 그날 밤 나와 구조자님은 아주 많은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응급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할지도 모를 텐데 과연 어디까지 연명치료를 할 수 있을까? 수혈을 한다면 앞으로 몇 번? 심정지가 오면 심폐소생술을 할까? 홍시를 편안하게 보내줘야 한다면 그 시기는 언제일까? 많은 결정을 내리며 나는 이미 홍시를 보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홍시는 여전히 의식이 거의 없었다. 초음파에서 보이는 간 모양은 예전보다 더 나빠져 첫날 수술을 권했던 주치의마저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의견을 바꿨다. 이 정도면 출혈이 지속되는 간의 일부를 절제하고 지혈해도 다른 곳에서 출혈이 계속될 것이라며 의미가 없어졌다고 그랬다. 


 그러더니 오전에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홍시가 영양공급을 받고 난 이후에는 혈압도 정상이 되었고 혈당도 제법 좋아진 데다 체온도 돌아오고 테크니션 선생님께 하악질까지 했다며. 지난밤 안락사 얘기까지 오간 것을 잘 알지만 조금 더 다음 검사를 기다려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품은 전화였다. 세 번째 중력이 갑자기 홍시를 붙잡았다.


 물론 홍시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여전히 안락사를 고려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빈혈 수치가 다시 떨어졌고 황달이 지속되고 있다며 병원은 두 번째 수혈을 권했다. 비용이 부담되면 배에서 뽑아낸 복수를 여과하고 처리하여 다시 수혈하는 자가수혈을 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런 제의를 모두 뿌리치고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눈빛이 돌아온 홍시를 보며 나는 네 번째로 홍시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홍시가 호흡곤란이나 쇼크가 오면 언제든지 평안하게 보내줄 수 있도록 팔에 혈관을 잡아놓은 것을 그대로 달아달라 부탁하고 홍시는 우리 집으로 퇴원했다.



      



 홍시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와 래포가 쌓인 내 고양이도 아니었다. 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나는 임시보호로 온 고양이와 담백하게 거리 유지를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자꾸 고양이를 보내주지 못하고 붙들게 되는 것일까.


 그동안 들인 병원비가 아까워서? 홍시의 이전 치료비 액수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 하지만 발치 수술과 구내염 치료, 이번의 수혈, 수없는 입원과 검사를 반복한 비용을 모두 합치면 아마도 오백만 원은 넘을 것이다. 오백만 원이라는 매몰 비용을 이대로 보내줄 수 없어서 이렇게 망설이는 걸까.



 고양이는 또 다른 고양이를 부른다. 나와 친분이 있는 수많은 고양이 보호자는 홍시를 보며 저마다의 이유로 가슴에 묻었던 저마다의 고양이를 떠올렸다. 홍시를 보면 홍시처럼 간이 아프고 순화가 되지 않았던 누구 생각이 났고, 홍시처럼 부산에서 구조된 누가 생각이 났고, 홍시처럼 발치 수술을 받은 누가 생각이 났다며 홍시를 응원해주었다.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며 홍시가 입원한 첫날 연락도 없이 동물병원에 대뜸 두 언니가 찾아와 곁에 있어 주기까지 했다. 나도 홍시 앞에서 자꾸만 안락사 제안을 받았던 애경이 생각이 났다. 홍시처럼 둥그렇게 말린 애경이 꼬리와 홍시처럼 엉덩이를 토닥거릴 때 뼈가 그대로 만져지던 애경이 엉덩이를 생각했다. 그렇게 다른 고양이를 거치며 쌓았던 미안함과 죄책감이 후회로 돌아와 홍시를 붙잡게 되는 걸까.



 여전히 고양이를 쉬이 보내주지 못하고 자꾸만 잡게 되는 힘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왜 하필 너희였을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한 고양이를 연명 치료할 몇백만 원이면 다른 건강한 고양이를 몇 마리나 중성화하고 접종비용을 지원해 입양 가도록 도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지 못하고 내 눈앞에 있는 고양이를 자꾸만 떠나보내지 못하는 걸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결국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답은 '그냥'이다. 대단한 뜻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눈앞에 고양이가 나타났고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돌아선 것도 아닌데. 통증이 심각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뱉고 이제 그만 보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저도 살겠다며 꾸역꾸역 밥을 먹고 깔끔하게 그루밍을 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이제 그만 가보라며 떠밀 수 있냐는 말이다. 살 수 있는 만큼은 살아보라며 고양이를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홍시를 끊임없이 붙잡고 지구에 남겨놓으려고 애쓰는 손길이 못해도 열 개가 넘었다. 응급상황이 오면 보내줄 마음으로 남겨놓았던 라인을 제거하며 형식적이나마 홍시를 정식으로 입양해 남은 짧은 기간을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새벽 한 시 코에 연결해놓은 비위관이 막혔다고 내가 허둥지둥할 때 한달음에 택시를 타고 날아와주는 그런 수많은 언니들의 손길이 홍시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다.


 지구에서 단 몇 킬로그램도 보내줄 수 없다는 마음. 고양이가 크게 아프지 않아도 고양이를 더 이상 기르기 싫다며 안락사를 요청하는 사람은 아마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마음이다. 


      

(2021.01.14. 홍시 입양)



작가의 이전글 7. 수의사 가라사대, 처방사료와 물을 먹이거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