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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May 06. 2022

두 번째 브레이크

액셀 같은 브레이크

나 휴직할까?


어디서부터 이 계획이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 나는 조금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의 육아는 당연하게도 엄마의 몫이었고, 아내는 그런 당연한 몫을 해 내고 있었다. 나의 몫은 아내의 육아를 돕는 것. 여전히 많은 부분은 아내가 움직여야 했고, 나는 아무리 열심히 정성 들여하더라도 조력자 이상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퇴근 후에 아이 잠을 재우는 것도 나에게는 휴식이 없는 가정사의 연장선이었지만, 밤잠도 설처가며 아이를 재우는 아내에게는 그저 육아의 일부를 돕는 것뿐이었다. 아이를 씻기는 일도, 똥기저귀를 가는 일도, 이유식을 먹이는 일도, 육아 전담 아내의 가정사 중 일부를 하는 것일 뿐. 절대로 내 전담이 될 수는 없었다. 내가 하는 육아가 그렇게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하는 부분은 육아에 있어서는 일부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고, 파트타임 수준의 내 육아는 풀타임을 소화하는 아내의 숙련도나 정보를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육아를 하지 못하는 업무 시간에 뒹굴며 노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나마 가정에 기여하는 정도는 서로 정량적 비교가 불가능했다. 자연히 육아에서 나의 조력자로서의 입지는 크게 위협받지 않았다.


아내가 복직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내가 육아를 하지 못하는 업무시간에 아내도 업무를 하며 퇴근 후 파트타임 육아로 전향을 하자, 가정의 기여도는 정량적 비교가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숙련도는 다년간 풀타임 육아를 했던 아내에 여전히 비할 바가 아니었으나, 문제는 육아에 대한 나의 관심도 자체가 이미 아내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었다. 퇴근 후 대화도 아내는 여전히 아이들 이야기로 가득했지만, 나는 식탁에 채워진 육아 주제들을 한쪽으로 스윽 밀어버리고 이해되지 않는 회사의 업무처리와 내 비전들로 반찬을 차렸다. 나의 출근 거리가 아내보다 멀었던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나의 출근은 항상 아내보다 빨랐고, 나의 퇴근도 역시 아내보다 결코 늦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 집을 거쳐 유치원으로 옮겨오는 동안 아이들 하원은 항상 아내 차지였다. 퇴근 후에도 아내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씨름을 해야 했고, 선생님들로 부터 받은 전달 사항을 잊지 않아야 했다. 집에 들어가 쉬기는커녕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아이들의 건강검진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으며 잔병치레를 피할 수 없는 아이들의 병원 진료도 모두 아내의 차지였다. 자기 의사나 감정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과의 실랑이는 언제나 함께였을 테고. 


나의 육아는 아내가 심지어 저녁까지 해 놓은 후에야 시작되었다. 저녁 식탁에 앉아서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훈계하고,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들으며 아내가 잘못한 부분을 지적했다. 글로 배운 높으신 명성의 박사, 의사, 상담사의 사례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해 보라는 둥 저렇게 해 보라는 둥 훈수 두기에 바빴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아이들과 잠깐 놀아주는 듯하다가 아이들의 행동거지를 보고 지적하고 나름의 훈육으로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한 시간 남짓한 놀이인지 훈육인지 모를 시간 후에는 아이들이 몸서리치는 목욕시간을 고성과 있지도 않은 도깨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가며 마치고 아이들을 침대로 몰아넣고는 도깨비 노래를 불러가며 아이들을 재웠다. 평일에 주어진 아이들과의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 그 마저도 훈육과 겁박으로만 가득한 것 같았다. 재미있게 놀아주는 아빠는 못 되었고, 아이들의 놀이에 끌려가듯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놀아주는 척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게 맞는 걸까.'


아마도 이때부터 였던 것 같다. 어느 날 내가 아이들과 아내와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이 이런 훈계질로만 가득하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아내와 다른 이야기들로만 가득 밥상머리를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다행히도 내 인지를 거치게 된 그 순간부터. 이 시간들을 다르게 채워놔야겠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 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왜?"


"그냥, 애들이랑 시간도 좀 보내고..."


당연한 질문에 별 시답잖은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아직 정말 휴직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자신 없는 대답으로 끝을 흐렸다. 아내는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알아서 해."


아마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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