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색을 확인하느라 신경이 곤두선다. 하지만 그 색이 늘 바뀐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채, 나는 그 변화에 휩쓸려 흔들리곤 한다.나는 눈을 감고 걷는다.
내 발밑의 길이 얼마나 가파른지, 완만한지조차 모른 채로. 길은 늘 변한다. 붉은빛을 띠기도 하고, 때로는 푸른빛으로 변하기도 한다. 나는 그저 걸어갈 뿐, 그 색이 언제 변할지 미리 알 수는 없다. 이 길의 끝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그 길을 선택한 이도, 지금 이 순간 걷고 있는 이도 모두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붉은빛은 강렬하다. 자극적이다. 마치 지금 당장 나에게 이득을 줄 것만 같다. 높은 곳으로 나를 이끌 것이라는 환상을 준다. 빠르고 자극적인 붉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기대에 부푼다.
하지만 문득, 그 붉은빛이 어느새 푸르스름하게 변한 것을 알아차린다. 푸른 길은 처음엔 차가워 보이고, 얼어붙었고,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가라앉힌다. 이 길은 더디고 불안정하다.
그러나 그 길 또한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길은 그 자체로 변덕스럽다. 또한 길을 걸으며 색을 의식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나는 때때로 서서 내가 걷는 길의 색을 확인하곤 한다.
지금 이 길은 어떤 빛깔을 띠고 있는가?
이에 따라 내 걸음이 달라질 것 같아서다. 붉은 길에선 마음이 조급해지고, 푸른 길에선 불안이 커진다. 신경이 곤두선다. 눈에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좇는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실수를 반복한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이를 깨달았음에도 나는 변하지 못한다. 변화에 휩쓸릴 뿐이다.
길의 끝이 어떻게 바뀔지, 내가 그 끝에 닿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 없다. 달라질 때마다 마음은 흔들리지만, 그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빛깔은 그저 순간일 뿐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건 길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 길을 어떻게 걷고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붉은 길은 매혹적일 수 있지만, 언제나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푸른 길은 더디고 손해 같아 보여도, 그 끝에서 어떤 결과를 마주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길을 선택하는 순간, 그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남의 말을 듣고 걷기 시작했든, 스스로의 선택이었든,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결과로 돌아온다.
주변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붉은 길을 당연하게 여기며 빠르게 걷고, 또 어떤 이들은 푸른 길을 걸으며 발걸음을 조심스레 내딛는다. 그러나 그 길이 언제까지 그런 색깔을 유지할지는 그들조차 알지 못한다. 중요한 건, 이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이다. 길은 수없이 변할 수 있다. 붉었던 길이 갑자기 푸른 길로 변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가 생각한 시점에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찾아온다.
길 위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는 언제나 미지수다. 중요한 건, 길의 색이나 모양이 아니라 내가 그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느냐일 것이다. 결국, 모든 길은 내가 선택하고, 그 끝도 내가 받아들여야만 한다. 남이 대신 걸어줄 수 없고, 그 책임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여정이다. 붉든 푸르든, 가파르든 완만하든, 그 길은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나만의 길이다.
그렇기에 길의 찰나의 모습에 휘둘리기보다는 그저 걸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붉음에 들뜰 필요도, 푸름에 낙담할 이유도 없다. 길은 계속해서 변할 것이고, 나는 이를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나아갈 용기뿐이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길은 나를 시험하고, 그 끝에서 내가 마주할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길은 나를 시험하지만, 나는 그 길을 선택한 스스로를 책임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