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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Sep 07. 2021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몸

캐럴라인 냅, <욕구들>




거울을 본다. 살을 좀 빼야겠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외모  검열이 이토록 심한 나라에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많은 여성이 오늘도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몸이  요구하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외면한 채 타인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자기를 통제할 것이다. 그때 우리의 욕구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억압당한 욕구는 뒤로 물러나지만 은폐된 채 똬리를 틀고 앉아 그 좌절된 욕구를 달래고자 다시 다른 욕망을 일으킨다. 식욕을 억눌렀으니 그 보상으로 쇼핑을 하고, 그러다 문득 또 이렇게 사들였다니, 한숨을 내쉰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은 이렇게 다른  욕망을 불러오고 또 그 욕구는 어느덧 자기를 갉아먹는 불쏘시개가 되고 만다. 삶이 행복할 리가 없다.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은 여성의 채워지지 않은 욕구에 주목한다. 거식증에 걸려 스물한 살에 키 162㎝, 몸무게 37㎏이었던 냅. 그는 3년 동안 매일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베이글 하나, 요거트 한 개, 사과 한 알과 작은 치즈 큐브로 버티면서 달리고 또  달리던 그 암담한 시절을 회상한다. 왜 그토록 굶기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는지, 그 강박은 어디서 생겨나 자신을 그토록 몰아댔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그 강박이 실은 여자들, 아니 인간의 모든 갈망이라는 더 큰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인식한다. 


냅의 일생은 이런 중독과 중독 끊기의 이어짐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섭식장애를 겪었고, 알코올 중독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다가 이겨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돌아보며 욕망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했다. 냅은 자신이 왜 굶기를  선택했는지 돌아보면서 식사장애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년기의 가족이 있음을 깨닫는다. 완벽하고 엄격한 부모에게 다른 형제보다 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끊임없이 자기를 ‘통제’하려는 욕망을 불러온다. 그토록 마른 몸임에도 음식을 거부하고 자신을 이만큼  통제했다는, 할 수 있다는 것을 행복이라 착각하며 서서히 그 세계에 침잠해간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기 파괴와도 같다. 냅은  그러한 자기 파괴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억압된 욕망이 돌보지 않고 방치해둔 다른 욕망들과 관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사유하면서 다른 여성들의 억압당한 욕망의 근원을 밝혀내고 당신의 욕망은 정당하다고 그들에게 해방을  선사한다. 


냅이 자신의 몸을 극도로 마르게 함으로써 욕구를 통제했다면 그와 달리 자기 몸을 비대하게 살찌움으로써 욕망을 제어하려고 애쓰던 여성이 있다.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의 작가 록산 게이는 가장 살이 쪘을 때, 261㎏이었다. 그는 왜 그렇게 자기 몸을 학대했을까. 이 또한 유년의 상처와 관련 있다.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한 그는 몸집이 커지면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질 것이라 믿어, 먹고 또 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거구가 되자 이제는 뚱뚱하다는 경멸과 혐오에 시달리고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며 자기혐오에 빠진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음식을 거부하거나, 과도하게 집착한 이 두 사람의 모습은 다른 듯하면서도 무척  닮았다. 


몸에 관한 기준과 잣대는 누가 만든 것일까. 이들을 양 극단으로 몰아간 것은 누구일까? 그저 개인의 선택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 있을까? 냅은 ‘욕구들’에서 르누아르 그림 속 여자들은 오늘의 우리와 큰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 풍만한 여성들은 육체와 영혼의 평화로운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에는 사회가 개인의 몸을 억압하고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를 말살한다. 자기 몸에 새겨진  상처의 흔적들을 사유하면서 여성의 몸을 평가하고 억압하며 통제하려는 모든 문화를 폭로하는 이 글들은 여성에게도 다양한 욕구가  있음을, 주체로서 자신의 몸을 해방할 권리가 있음을 용감하게 증언한다. 오래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로 자기만의 방과 고정적인 소득을 꼽았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오늘, 냅과 게이 두 여성은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자기의 몸에 해방을 선사할 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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