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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Jan 19. 2022

아, 애달프구나 그 찻집 서민의 삶

라오서, <찻집>



12월의 마지막 날 라오서의 <찻집>을 읽는다. 120쪽 남짓의 짧은 작품. 어젯밤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잠들어 아침 출근길에 읽는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소시민들 삶은 왜 이다지도 힘겨운가. 영하 10도 가까이의 이 추운 날에도 고단한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밥벌이를 위해 나서는 이들의 모습이 <찻집>의 인간군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 그래도 오늘 이 땅의 사람들은 조금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랏일’에 대해서는 마음껏 말할 자유가 있지 않은가? 허나 라오서의 <찻집> 속 유태찻집에는 찻집 곳곳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그것도 한두 해도 아니다 거의 50년 가까이 이 글귀는 찻집에서 떨어져 나갈 줄 모른다.

<찻집>은 1890년대 말부터 거의 50여 년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청나라 끝 무렵, 무술정변 시기부터 중화민국 초기와 항일 전쟁 승리 이후 중요한 세 역사 시기를 배경으로 중국의 격변하는 역사 흐름과 그로 말미암아 피폐해지는 민중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의 첫 시작 부분에는 등장인물들이 거의 4쪽 가까이에 소개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을 극이 진행되는 동안 잊거나 헷갈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유태찻집’ 주인이자 <찻집>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왕이발’을 비롯해 찻집 단골 송대인, 상대인, 아편쟁이 ‘당철취’, 중매쟁이 ‘유마’, 건달두목, 찻집 건물주 ‘진중의’, 환관 우두머리 ‘방태감’, 아편쟁이 ‘당철취’의 아들 ‘소철취’, 중매쟁이 ‘유마’의 아들 ‘소유마’ 등등 캐릭터가 생생하고 인물마다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 금세 극에 몰입할 수 있다.  

제국 열강의 침략으로 (청)나라의 앞날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 나라에서는 부국강병을 내세우며 개혁을 실시하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고 북경의 소시민들의 삶은 전과 다름없이 흘러간다. 찻집에 모여 차를 마시면서 별것도 아닌 일로 말다툼을 벌이다 패싸움을 하기도 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난한 농부는 딸을 팔려고 찻집을 기웃거리고, 환관인 방 태감은 가난한 농부의 딸을 사서 아내로 삼으려 하고, 그 중간에서 중매쟁이 ‘유마’는 잔뜩 이익을 챙기려고 한다. 2막과 3막의 배경도 여전히 찻집이다. 세월도 흐르고 찻집을 오가는 인간군상도 조금씩 달라지지만 격변하는 세상에 비해 그 찻집을 찾아오는 이들의 삶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아질 줄 모른다. 특히 세월이 흐를수록 유태찻집은 나날이 형편이 나빠지기만 한다.

왕이발은 자기 찻집을 시대에 맞게 ‘개량’하면 좀 더 나아지리라 생각하며 애를 쓰지만 그것은 그저 그의 소망일이다. 군벌 전쟁 속에서 찻집은 점점 기울어 가고 찻집을 찾아오는 이들은 예전에 비해 도덕적으로도 타락해 인신매매를 일삼거나 탈영병 둘이 한 여자를 아내로 삼으려는 수작도 거리낌 없이 의논한다. 그런 와중에 3막에 이르러서는 국민당 세력과 결탁한 외세(미군) 세력까지 들어오면서 세상은 점점 자본주의의 모순까지 뒤엉켜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찻집을 찾는 소시민들의 삶은 더욱 가열차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런 중에도 이 찻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란 구절이니, 정치색이 서로 달라 나랏일을 이야기하다 싸움이라도 날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섣불리 나랏일을 입에 담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목숨을 잃는 이들이 50년 내내, 제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계속 있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바, 그 한마디가 중국 사회의 경직성을 이 한마디로 알 수 있다.


 왕이발 : 난 평생 어린 백성으로 살았어요. 누구든 보면 예를 올리고, 절하고, 읍하고, 그저 애들이나 잘 커서, 얼지 않고 굶지 않고, 병 안 나고 살기를 바랐죠! 그런데, 일본 놈들이 있을 땐 둘째 녀석이 도망 다니느라, 마누라가 그렇게 아들 생각으로 애를 태우다 갔고! 어렵사리 일본 놈들이 물러가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웬걸요? (쓸쓸히 웃는다.) 허허, 허허, 허허!
 진중의 : 일본 놈들이 있을 땐 무슨 합작이니 하면서 내 공장을 먹어 치우더니, 우리 정부가 들어서자, 공장은 어느새 반동의 재산이 되었더군, 창고 속에 있던 그 많던 물건 다 없어졌지!
 왕이발 : 개량, 난 그래도 늘 개량하느라 애썼어요. 남에게 처지지는 않으려고요. 차만 팔아 안 되겠기에 하숙도 쳐보고 하숙이 없어지자 평서도 시켜 보고, (<찻집>, 111쪽)



잘 먹고 잘 살려는 욕심이 있기에 어느 정도 장삿속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기보다 형편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을 냉정하고 외면하지도 못하는 왕이발은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하고 선량한 인물이다. 그와 말이 잘 통하는 찻집 단골 송대인, 상대인도 비슷한 성품의 소유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그들이 젊은 시절부터 거의 일흔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그에 비해 환관이면서도 크게 위세를 부리는 방태감이나 아편쟁이 당철취와 그의 아들, 중매쟁이와 그의 아들 등 도덕적으로 타락하거나 그런 세력에 빌붙어 자기 몫을 챙기는 자들은 자자손손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독자는 인생의 모순과 비애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아편쟁이의 아들인 소철취가 ‘도교’ 사제로 교주에 오를 꿈을 꾸며 큰소리를 떵떵 치는 모습에서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이 떠올라 씁쓸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마냥 우울하고 암담한 것은 아니다.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이지만 나름 그 삶을 웃어넘기려 애쓰고, 그러다 보니 극은 희비극적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그토록 오랜 세월 무대 위에 올라 서민들의 사랑을 받은 게 아닐까.   

라오서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반동분자로 몰려 홍위병들에게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은 뒤 자살(타살 의혹도 있다)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노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라오서가 만일 좀 더 오래 살아서, 아니 문화대혁명 시기 이후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망명해 이 작품을 4막으로 늘려 문화대혁명 시기까지 다루었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까? 한결 더 비극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그때도 물론 유태찻집 곳곳에는 이 문장이 붙어있을 것이다.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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